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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 개인전 《Imperfect Construction》CN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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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 개인전 《Imperfect Construction》, 불완전함을 쌓아 올린 도자 조각 겉으로는 단단해 보이는 건물도 시간이 지나면 균열이 생기고 표면이 닳습니다. 사람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아무리 안정돼 보이는 순간에도 마음속에는 흔들림과 취약함이 남아 있지요. 서울 북촌 CN갤러리 에서 열리는 김정현 개인전 《Imperfect Construction (불완전한 설계)》 은 바로 이 불완전함을 도자 조각으로 풀어냅니다. 건축물의 질감과 구조를 흙으로 옮기고, 균열과 마모의 흔적을 숨기지 않은 채 하나의 형태로 쌓아 올립니다. 단단한 건축에서 불완전함을 발견하다 도시는 질서와 안정의 상징처럼 보입니다. 반듯하게 세워진 벽과 구조물은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 같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작은 금과 마모, 풍화의 흔적이 보입니다. 김정현은 이런 건축의 표면에서 인간과 사회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완전함을 향해 끊임없이 자신을 세우지만 그 과정에서 오히려 부족함과 흔들림이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흙 위에 건축의 시간을 새기다 작업 과정도 흥미롭습니다. 작가는 얇게 편 흙판 위에 여러 건축 재료의 패턴과 질감을 찍은 뒤 잘라내고, 서로 다른 방향으로 이어 붙입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조각은 완벽하게 정돈된 구조가 아니라 긴장과 어긋남을 품은 채 쌓입니다. 이후 소성과 연마를 거치면서 표면에는 실제 오래된 건축물처럼 시간의 흔적이 남습니다. 저도 도자 작품을 볼 때 매끈하게 완성된 표면부터 보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요. 김정현의 작품은 오히려 거칠고 닳은 흔적을 오래 바라보게 만듭니다. 균열은 실패가 아니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균열을 바라보는 방식입니다. 금이 가고 표면이 마모됐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실패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작가는 불완전함을 제거해야 할 결함이 아니라 존재가 지나온 시간의 기록 으로 바라봅니다. 완벽하게 보이기 위해 흔적을 지우기보다 그대로 드러낼 때 오히려 형태의 개성이 분명해집니다. 여러분도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감...

연남동 《2026 아트 쇼케이스》, 초기 예술기업 10곳의 새로운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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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아트 쇼케이스, 예술이 제품·공연·기술로 확장되는 3일 예술은 반드시 캔버스나 조각으로만 존재할까요? 요즘은 작품을 감상하는 방식뿐 아니라 예술을 소비하고 경험하는 방식도 빠르게 넓어지고 있습니다. 서울 연남동 스몰타운스몰 에서 열리는 **《2026 아트 쇼케이스》**는 이런 변화를 한자리에서 보여주는 행사입니다. 초기 예술기업 10곳이 참여해 물감과 라이프스타일 제품부터 공연, 미식, 아트테크, XR까지 서로 다른 결과물을 선보입니다. 전시라기보다 ‘예술의 확장’을 보는 자리 이번 행사의 가장 큰 특징은 특정 장르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회화나 조각처럼 전통적인 미술 작품만 보여주는 방식에서 벗어나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제품과 서비스, 공연 콘텐츠, 기술 기반 경험까지 함께 소개합니다. 예술가의 아이디어가 하나의 작품에 머무르지 않고 상품과 서비스, 공간과 경험으로 어떻게 확장되는지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초기 예술기업 10곳이 한자리에 이번 쇼케이스에는 수이과슈, 럭키참스, 아트핏, 유연랩, 컴퍼니 우연, 파인다이닝 씨어터, 맨다도 컴퍼니, 콘알트, 유어네스트, 식스도파민 등 10개 기업이 참여합니다. 각 기업이 다루는 분야가 서로 달라 한 공간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현재 예술산업의 폭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저도 이런 쇼케이스를 볼 때는 작품 자체보다 “이 아이디어가 실제 생활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이어질까”를 함께 보는 편인데요. 이번 행사는 바로 그 연결 과정이 핵심입니다. 물감과 라이프스타일 제품도 예술이 된다 예술기업의 활동은 작품 판매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재료와 디자인을 활용한 제품을 만들고, 사람들이 일상에서 예술을 자연스럽게 경험하도록 새로운 상품을 제안하기도 합니다. 이런 접근은 미술관이나 갤러리를 찾아야만 예술을 만날 수 있다는 기존의 경계를 조금씩 허뭅니다. 평범한 생활용품 하나도 제작자의 감각과 아이디어가 더해지면 새로운 문화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 공연과 파인다이닝까지 이어지는 예술 이번 행사에서는 ...

제주갤러리 기획전 Ⅱ, 전기숙·정은혜가 묻는 생명과 공존의 방식《날개가 한 번 펄럭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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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개가 한 번 펄럭일 때》, 인간과 자연 사이의 관계를 다시 바라보다 우리는 자연을 설명하는 데 점점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식물의 이름을 알고, 새의 생태를 기록하고, 기후와 환경 변화를 수치로 분석합니다. 그런데 자연을 많이 안다는 것이 정말 자연을 깊이 이해한다는 뜻일까요? 서울 인사동 제주갤러리에서 열리는 **2026 제주갤러리 기획전 Ⅱ 《날개가 한 번 펄럭일 때》**는 이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전기숙, 정은혜 두 작가는 자연을 인간 바깥에 놓인 풍경이 아니라 여러 생명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관계의 세계로 바라봅니다. ‘날개 한 번’이 만드는 작은 변화 전시 제목은 아주 짧은 움직임을 떠올리게 합니다. 한 마리 새가 날개를 한 번 움직이는 일은 아주 사소해 보이지만, 그 주변의 공기와 공간에는 작은 변화가 생깁니다. 자연 안에서 어떤 존재도 완전히 고립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하지요. 이번 전시는 바로 이런 관계에 주목합니다. 하나의 생명이 움직이면 다른 생명과 환경에도 변화가 이어지고, 그 영향은 다시 또 다른 관계를 만들어냅니다. 자연은 바라보는 대상만이 아니다 우리는 흔히 자연을 ‘보는 대상’으로 생각합니다. 산과 바다를 감상하고, 꽃과 새를 관찰하며 자연을 인간의 시선 안에 놓습니다. 하지만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라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물과 공기, 먹거리와 공간 모두 다른 생명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저도 자연을 주제로 한 전시를 볼 때 아름다운 풍경부터 찾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번 전시는 그보다 한 걸음 더 들어가 “나는 자연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한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전기숙과 정은혜, 서로 다른 시선의 만남 전기숙과 정은혜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자연과 생명을 바라봅니다. 중요한 것은 두 작가가 자연을 하나의 고정된 이미지로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인간의 언어로 쉽게 이름 붙이거나 의미를 단정하기보다, 관찰하고 머물며 관계를 살펴봅니다. 그래서 작품은 자연을...

《1.5land : 새로운 섬으로의 여정》, 혼자와 함께 사이 새로운 삶을 상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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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land : 새로운 섬으로의 여정》, 혼자와 함께 사이 새로운 삶을 상상하다 혼자만의 공간은 필요하지만 완전히 고립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고 싶지만 지나친 간섭은 부담스럽죠. 요즘 우리의 관계와 생활방식은 ‘혼자’와 ‘함께’라는 두 단어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제5회 트렌디 페스타 전시 **《1.5land : 새로운 섬으로의 여정》**은 바로 그 사이에 주목합니다. 전시 제목에 등장하는 ‘1.5’는 1과 2 가운데 어딘가에 존재하는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떠올리게 합니다. 왜 ‘1.5’일까 1이라는 숫자를 완전한 개인, 2를 둘 이상의 관계라고 생각해보면 1.5는 흥미로운 위치에 있습니다.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을 지키면서 필요할 때 다른 사람과 연결되는 상태입니다. 예전에는 혼자 살거나 가족과 함께 사는 방식이 비교적 명확하게 구분됐다면 지금은 관계의 모습이 훨씬 다양해졌습니다. 전시 제목은 이런 변화에 ‘1.5’라는 이름을 붙이며 관람객에게 새로운 질문을 건넵니다. 섬은 고립이 아니라 연결의 공간 ‘land’와 ‘섬’이라는 이미지를 함께 생각해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섬은 육지와 떨어져 있기 때문에 독립적인 공간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바다와 배, 다리와 이동을 통해 다른 섬과 끊임없이 관계를 맺습니다. 사람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나만의 경계는 필요하지만 완전히 홀로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자신의 세계를 지키면서 다른 사람과 적당한 거리에서 연결될 때 오히려 편안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저도 바쁜 날에는 혼자 있는 시간이 꼭 필요하면서도, 막상 하루 종일 아무와도 대화하지 않으면 조금 허전할 때가 있는데요. ‘1.5’라는 숫자가 이런 모순된 마음을 꽤 잘 표현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익숙한 삶의 방식에서 출발하다 《1.5land》에서 ‘여정’이라는 단어도 중요합니다. 새로운 섬은 처음부터 완성되어 있는 장소가 아닙니다. 지금까지 익숙했던 생활방식에서 출발해 자신에게 맞는 관계와 공간을 찾아가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독립과 연결, 개인...

도지성 개인전, 《도시산책자-기억의 윤곽》으로 걷는 도시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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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문화예술회관 도지성 개인전, 도시의 흔적을 따라 걷는 회화 매일 걷던 길도 어느 날 다시 보면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오래된 건물이 사라지고 새로운 풍경이 들어서면서 우리가 기억하던 도시의 모습도 조금씩 변하기 때문입니다. 인천문화예술회관 대전시실에서 열리는 도지성 개인전 에서는 작가가 꾸준히 바라봐 온 도시와 기억의 관계를 만날 수 있습니다. 특히 2026년 작업 《도시산책자-기억의 윤곽》 연작을 중심으로, 변화하는 도시 속에서 무엇이 사라지고 무엇이 기억으로 남는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도시를 걷는 사람의 시선 ‘도시산책자’라는 말에는 단순히 거리를 걷는 사람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목적지를 향해 빠르게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골목과 건물, 사람들의 흔적을 바라보며 도시를 읽는 사람에 가깝습니다. 같은 장소라도 매일 조금씩 달라집니다. 간판이 바뀌고, 벽의 색이 흐려지고, 익숙했던 공간이 어느 순간 사라지기도 합니다. 도지성의 회화는 이런 변화 속에서 지나치기 쉬운 도시의 표정을 붙잡습니다. 기억은 정확한 사진처럼 남지 않는다 사람의 기억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오래된 장소를 떠올리면 정확한 건물 구조보다 그곳에서 느꼈던 공기나 색, 함께했던 사람이 먼저 생각날 때가 있습니다. 저도 예전에 자주 다녔던 골목을 다시 찾았을 때 실제 풍경보다 기억 속 모습이 훨씬 선명했던 경험이 있는데요. 도시를 바라보는 일은 결국 자신의 시간을 바라보는 일과도 닮아 있습니다. 《도시산책자-기억의 윤곽》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주요 작품들은 캔버스 위에 혼합재료 를 사용한 《도시산책자-기억의 윤곽》 연작입니다. 117×91cm부터 227×160cm에 이르는 큰 화면까지 다양한 규모의 작업이 소개됩니다.  ‘윤곽’이라는 단어도 흥미롭습니다. 기억은 모든 것을 선명하게 남기지 않습니다. 어떤 부분은 또렷하고 다른 부분은 흐려지면서 전체적인 윤곽만 남습니다. 작가는 그 불완전함을 지우기보다 회화 안에 그대로 받아들이며 도시의 시간과 개인의 기억...

정미경 개인전 《뻔한 FUN : 행복의 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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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갤러리 원 정미경 개인전, 색과 원으로 이어지는 행복의 순간 반복되는 하루는 언뜻 비슷해 보입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제와 오늘의 감정이 다르고, 같은 장소에서도 새로운 기억이 생깁니다. 아주 작은 기쁨 하나가 하루 전체의 분위기를 바꿔놓을 때도 있고요. 청주 갤러리 원 B관에서 열리는 **정미경 개인전 《뻔한 FUN : 행복의 순환》**은 이렇게 평범한 일상 속에서 이어지는 행복의 순간을 바라봅니다. 강렬한 표정과 색채를 보여주던 이전 작업에서 한 걸음 나아가, 이번에는 시간과 기억, 감정이 연결되고 순환하는 모습을 화면에 담았습니다. ‘뻔한’ 하루에서 찾은 FUN 전시 제목부터 재미있습니다. ‘뻔한’과 영어 FUN 을 연결하면서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하루 안에도 충분한 즐거움이 숨어 있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행복은 늘 큰 사건으로 찾아오지 않습니다. 좋아하는 사람과 나눈 짧은 대화, 맛있는 음식 한 끼, 익숙한 길에서 만난 햇빛처럼 작은 순간들이 오히려 오래 기억에 남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오늘 하루에서 어떤 작은 즐거움을 발견하셨나요? 강렬한 초상에서 행복의 흐름으로 정미경의 이전 작업에서는 과장된 표정과 보색의 대비를 통해 순간적인 감정을 강하게 드러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시선이 조금 달라집니다. 한순간 폭발하는 감정보다는 일상에 이어지는 행복의 온기와 그것이 반복되는 과정 에 집중합니다.  저도 하루를 돌아보면 특별한 사건보다 별것 아니었던 순간이 더 따뜻하게 남을 때가 있는데요. 그런 기억들이 하나둘 쌓이면서 결국 삶 전체의 분위기를 만든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간이 쌓이면 색이 된다 작가에게 반복되는 하루는 단순한 반복이 아닙니다. 하루가 겹치면 시간이 되고, 그 시간마다 서로 다른 기억과 감정이 생깁니다. 작품 속 다양한 색은 바로 이렇게 축적된 순간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기쁜 날과 힘든 날, 평온했던 날이 모두 다른 색으로 존재하다가 결국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됩니다. 그래서 이번 작업에서 색은 단순한 장식보다 시간과 ...

2026 인천국제현대사진전 《자각몽, 도시의 꿈꿀 권리》, 인천 전체가 사진미술관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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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 인천국제현대사진전 《자각몽, 도시의 꿈꿀 권리》 도시도 꿈을 꿀 수 있을까요? 오래된 항구의 기억과 지금의 삶, 아직 오지 않은 미래가 한 도시 안에 동시에 존재한다면 사진은 그 시간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요? 2026 인천국제현대사진전 《자각몽, 도시의 꿈꿀 권리》 는 인천을 하나의 거대한 사진미술관으로 바라보는 국제 현대사진 프로젝트입니다. 9월 26일부터 30일까지 구월동과 송도국제도시, 만석부두를 연결하며 도시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사진으로 펼쳐 보입니다. ‘자각몽’으로 바라본 인천 자각몽은 꿈을 꾸면서도 자신이 꿈속에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번 전시는 이 개념을 도시로 확장합니다. 산업화와 개항의 시간이 남아 있는 만석부두, 현재의 문화예술 공간이 자리한 구월동, 미래도시의 이미지를 지닌 송도가 하나의 서사 안에서 연결됩니다. 인천이 지나온 시간만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어떤 도시를 꿈꿀 수 있는가까지 묻는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클로드 카엉, 정체성의 경계를 흔들다 국제관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작가는 초현실주의 사진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클로드 카엉(Claude Cahun) 입니다. 카엉은 자화상과 연출사진을 통해 성과 정체성, 자아의 경계를 끊임없이 흔들었습니다. 한 사람이 하나의 고정된 모습으로만 설명될 수 있는지 질문했던 작업은 ‘자각몽’이라는 이번 전시 주제와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저도 카엉의 작업을 볼 때면 사진이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기록물이라는 생각이 금세 흔들리는데요. 카메라 앞에서 만들어진 또 다른 ‘나’ 역시 하나의 진실일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SATA와 하선영, 현실을 다시 보는 사진 한국 사진가들의 작업도 함께 만날 수 있습니다. 초현실적인 이미지로 잘 알려진 SATA 와 프랑스 아를에서 사진을 공부한 하선영 등이 참여해 현실과 환상, 도시와 개인의 기억을 서로 다른 시선으로 풀어냅니다. 사진은 눈앞의 풍경을 그대로 복제하는 것 같지만 작가가 어디에 서고 무엇을 선택...

원주 갤러리 원 한국수묵캘리협회전, 《글씨가 위로가 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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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가 위로가 되는 순간》, 먹과 여백으로 건네는 따뜻한 마음 좋은 문장 하나가 오래 마음에 남을 때가 있습니다. 복잡한 설명이 없어도 짧은 글씨 몇 자가 지금의 마음을 정확히 알아주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요. 원주 갤러리 원에서 열리는 한국수묵캘리협회전 **《글씨가 위로가 되는 순간》**은 글씨와 그림, 먹과 여백을 통해 이런 조용한 위로를 건네는 전시입니다. 전통적인 수묵의 감성과 현대적인 캘리그라피가 만나 글자가 단순히 읽는 문자를 넘어 하나의 이미지이자 감정으로 확장됩니다. 수묵과 캘리그라피가 만나다 수묵캘리그라피의 매력은 글씨와 그림의 경계가 선명하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먹의 진하고 옅은 농담, 자연스럽게 퍼지는 번짐, 붓끝의 흔들림까지 모두 작품을 이루는 요소가 됩니다. 같은 글자도 붓의 속도와 힘에 따라 전혀 다른 감정을 보여주지요. 그래서 작품을 볼 때는 문장의 뜻만 읽기보다 획의 움직임과 주변의 빈 공간까지 함께 보는 것이 좋습니다. 여백도 하나의 언어가 된다 한국 수묵 작업에서 여백은 비어 있는 공간이 아닙니다. 화면을 가득 채우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한 획과 한 문장에 시선이 더 오래 머뭅니다. 관람객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채울 공간도 자연스럽게 생깁니다. 저도 수묵 작품을 볼 때는 빽빽한 화면보다 넓은 여백 속에 놓인 짧은 글씨가 더 오래 기억될 때가 있는데요. 이번 전시는 그런 ‘비어 있음의 힘’을 느끼기에 잘 어울립니다. 좋아하는 것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시간 참여 작가들의 작업에는 거창한 사건보다 일상에서 발견한 작은 감정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 좋아하는 풍경을 바라보고, 자연의 움직임을 느끼고, 마음에 남은 문장을 붓으로 다시 써 내려갑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식물이나 지나가는 계절처럼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순간도 작가의 손을 거치면 하나의 기록이 됩니다. 창작은 특별한 영감에서만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하루를 오래 바라보는 데서 출발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글씨가 그림이 되고 그림이 마음이 되다 이번 전시에서는 문자...

부산문화회관 《미셸 앙리》, 프랑스 구상회화의 색채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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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앙리 : 위대한 컬러리스트》, 꽃과 빛으로 완성한 색의 세계 꽃을 그린 그림은 많지만, 어떤 화가의 꽃은 실제보다 더 강렬하게 기억됩니다. 붉은 장미와 튤립, 초록의 잎과 푸른 풍경이 한 화면에서 부딪히면서 현실보다 더 선명한 감정을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부산문화회관에서 열리는 **《미셸 앙리 : 위대한 컬러리스트》**는 프랑스 구상회화의 대표 작가 미셸 앙리(Michel-Henry, 1928-2016) 의 색채 세계를 집중적으로 보여주는 특별전입니다. 2026년 한불수교 140주년을 기념해 마련됐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습니다. 꽃을 그렸지만 사실은 빛을 그린 화가 미셸 앙리는 프랑스 랑그르에서 태어나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에서 공부했습니다. 그는 꽃과 정물, 풍경을 즐겨 그렸지만 대상의 형태를 정확하게 재현하는 데만 관심을 두지는 않았습니다. 꽃병 속 장미나 창가의 꽃, 여행지의 풍경도 그의 화면에서는 강렬한 빛과 색의 덩어리로 다시 태어납니다. 그래서 작품을 멀리서 보면 먼저 색이 들어오고, 가까이 다가가면 두껍게 올라간 물감과 붓질이 눈에 들어옵니다. 왜 ‘위대한 컬러리스트’일까 미셸 앙리의 작품에서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역시 색입니다. 붉은색은 더 붉고, 초록은 더욱 깊습니다. 파란색과 노란색, 분홍색도 서로 부딪히면서 화면에 강한 생명력을 만듭니다. 저도 이런 색채 회화를 볼 때는 작품 제목을 읽기 전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색을 잠시 바라보는 편인데요. 미셸 앙리의 경우에는 색 자체가 작품의 분위기를 결정한다는 점이 특히 선명합니다. 단순히 화려한 것이 아니라 빛을 색으로 번역한 듯한 화면 이 그의 매력입니다. 꽃은 가장 익숙하면서도 가장 강렬한 소재 미셸 앙리가 오랫동안 꽃을 그린 이유도 흥미롭습니다. 꽃은 누구에게나 익숙하지만 계절과 빛에 따라 끊임없이 달라집니다. 같은 장미라도 아침과 저녁의 색이 다르고, 시들어가는 순간까지도 서로 다른 표정을 보여줍니다. 미셸 앙리는 이런 순간을 붙잡아 꽃을 단순한 정물이 아니라 하나의 강렬한 색채 ...

서귀포예술의전당 《원더랜드》, 기억과 상상 속 나만의 행복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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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더랜드_당신의 원더랜드를 찾아서》, 다섯 작가가 펼치는 현실 너머의 세계 누구에게나 마음속에 하나쯤은 ‘원더랜드’가 있습니다. 어린 시절 가장 행복했던 장소일 수도 있고, 언젠가 도착하고 싶은 미래일 수도 있습니다. 바쁜 하루 중 잠깐 찾아오는 작지만 특별한 순간 역시 누군가에게는 원더랜드가 됩니다. 서귀포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원더랜드_당신의 원더랜드를 찾아서》**는 구성연, 노동식, 아트놈, 유영운, 한호 다섯 작가가 각자의 방식으로 만들어낸 이상적인 세계를 보여주는 전시입니다. 사진과 회화, 조형 등 서로 다른 매체가 한자리에서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넘나듭니다.  누구에게나 원더랜드는 다르다 원더랜드라고 하면 동화 속 신비로운 나라부터 떠올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정해진 이상향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기억과 경험, 욕망과 상상이 사람마다 다른 만큼 원더랜드 역시 하나의 모습으로 설명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가족과 함께했던 어린 시절이, 또 누군가에게는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이 가장 이상적인 세계가 될 수 있습니다. 구성연, 사탕으로 피어난 환상의 꽃 전시장에서는 익숙한 재료가 예상하지 못한 이미지로 변합니다. 구성연의 작업에서는 사탕으로 만들어진 꽃 이 등장합니다. 달콤하고 화려한 이미지는 한눈에 시선을 끌지만, 오래 바라보면 욕망과 환상이라는 또 다른 의미가 떠오릅니다. 사탕은 달콤하지만 결국 녹아 사라집니다. 아름다운 순간 역시 영원히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까지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합니다. 노동식, 솜으로 불러낸 유년의 기억 솜이라는 재료는 부드럽고 따뜻합니다. 노동식의 작업에서 솜으로 채워진 공간은 어린 시절의 기억과 가족의 온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저도 어릴 적 살았던 동네나 집을 떠올릴 때 정확한 구조보다 햇빛이나 냄새, 촉감 같은 감각부터 기억날 때가 있는데요. 유년의 기억은 사실보다 이런 감각으로 오래 남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드러운 솜은 ‘기억의 재료’처럼 다가옵니다. 아트놈, 밝은...

덕성여대 프로젝트 HI5 《그대로, 안녕》, 일상 속에서 서로의 안부를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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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대로, 안녕》, 나의 안녕에서 우리의 안녕으로 “안녕?”이라는 말은 참 익숙합니다. 누군가를 만날 때도, 헤어질 때도 쓰지만 원래 의미를 들여다보면 ‘아무 탈 없이 편안한 상태’를 묻는 말이기도 합니다. 덕성여자대학교 미술사학전공 프로젝트 HI5가 기획한 《그대로, 안녕》 은 이 짧은 인사에서 시작합니다. 나의 상태를 돌아보고, 타인의 안녕을 묻고, 마지막에는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안녕까지 생각하게 하는 전시입니다. 다섯 명의 학생 기획자가 만든 전시 이번 전시는 송새린, 이은영, 전민주, 전유현, 황경민 다섯 명의 덕성여대 미술사학전공 학부생 및 졸업생이 직접 기획했습니다. 작품을 고르는 일부터 전시 구성과 공간 연출, 스토리텔링, 교육과 홍보, 현장 운영까지 전 과정에 참여했습니다. 전시는 완성된 결과만 보는 자리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수많은 조사와 선택, 협업이 쌓여 하나의 공간이 만들어집니다. 《그대로, 안녕》은 그런 ‘전시를 만드는 과정’까지 함께 품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첫 번째 챕터 ‘나에게 안녕’ 첫 번째 장은 ‘나에게 안녕’ 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안부는 자주 묻지만 정작 자신의 상태를 살펴보는 일에는 익숙하지 않습니다. 잠시 멈춰 요즘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무엇 때문에 지쳤는지, 무엇이 나를 편안하게 하는지 돌아보는 시간입니다. 저도 바쁠 때는 “잘 지내고 있다”고 습관처럼 말하다가 어느 순간 내가 정말 괜찮은지 생각하게 될 때가 있는데요. 이 첫 번째 챕터는 그런 질문을 조용히 꺼내게 합니다. 두 번째 챕터 ‘그대에게 안녕’ 두 번째 장에서는 시선이 자신에게서 다른 사람으로 이동합니다. ‘그대에게 안녕’ 은 타인의 삶과 감정에 관심을 갖고 안부를 묻는 단계입니다. 같은 공간에서 살아도 사람마다 처한 상황과 감정은 다릅니다. 누군가는 즐거울 수 있고, 다른 누군가는 같은 날을 힘겹게 지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최근 누군가에게 의례적인 인사가 아니라 정말 마음을 담아 “잘 지...

《Will You Be My Penpal?》, 부산과 라이프치히가 작품으로 주고받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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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이터와 회화가 만나는 전시, 《Will You Be My Penpal?》 예전의 펜팔은 멀리 떨어진 사람에게 편지를 보내고 답장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일이었습니다. 지금은 메시지 하나가 몇 초 만에 지구 반대편으로 이동하지만, 서로의 생각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시간까지 짧아진 것은 아닙니다. 부산 사상구 일산수지 2층 에서 열리는 《Will You Be My Penpal?》은 독일 라이프치히와 부산을 연결하는 국제 교류 프로젝트입니다. 라이프치히 시각예술아카데미(HGB)와 동아대학교 현대미술학과 작가들이 직접 만나기 전에, 먼저 작품을 통해 서로에게 말을 건넵니다. 직접 만나기 전에 작품이 먼저 도착하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교류의 순서입니다. 참여 작가들이 실제로 만나는 시점은 내년 7월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작품의 데이터가 라이프치히에서 부산으로 이동합니다. 사람보다 작품이 먼저 여행을 시작하는 셈입니다. 그래서 이번 전시는 완성된 국제교류의 결과라기보다 앞으로 이어질 만남을 미리 보여주는 프리뷰 전시 에 가깝습니다. 편지 대신 디지털 신호를 주고받다 전시 제목은 그대로 해석하면 “내 펜팔이 되어줄래?”라는 질문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오가는 것은 종이에 쓴 문장이 아닙니다. 코드와 3D 스캐닝, AI 생성 비디오, 신체 데이터, 디지털 재구성처럼 동시대 미술에서 활용되는 다양한 시각 언어가 라이프치히에서 부산으로 전송됩니다. 파일과 명령어, 렌더링 데이터가 하나의 편지가 되는 것입니다. 저도 이 부분이 상당히 흥미롭게 느껴집니다. 예전에는 작품을 해외로 보내려면 실제 물체를 포장해야 했다면, 이제는 작품의 핵심 데이터가 먼저 이동하고 도착한 장소에서 다시 형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데이터는 부산에서 다시 ‘작품’이 된다 컴퓨터 안의 파일은 손으로 만질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부산에 도착한 데이터가 일산수지 공간에 설치되는 순간 상황이 달라집니다. 영상이 화면에 나타나고, 데이터가 구조물...

이선희 《우리가 과정에서 배울 수 있다면》, 멈춤과 실패도 결국 나의 시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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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동문화발전소 이선희 개인전, 결과보다 ‘과정’을 바라보는 전시 우리는 결과를 중심으로 시간을 기억하는 데 익숙합니다.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 완성했는지 포기했는지로 지난 일을 정리하곤 합니다. 세종 연동문화발전소 에서 열리는 이선희 개인전 **《우리가 과정에서 배울 수 있다면》**은 그 사이에 놓여 있던 시간을 다시 바라봅니다. 작업을 이어오며 반복해서 마주한 멈춤과 실패, 의심과 포기, 그리고 그럼에도 다시 나아가려 했던 순간들을 작품으로 풀어냅니다. 결과보다 그 사이의 시간을 보다 작업은 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잘 풀리지 않아 멈추기도 하고, 자신이 없어 의심하기도 합니다. 어떤 작업은 끝내 완성하지 못한 채 남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선희는 이런 시간을 실패로만 보지 않습니다. 멈추고 망설였던 순간까지 포함해 오늘의 자신을 만든 하나의 과정으로 바라봅니다. 저도 어떤 일을 돌아볼 때 잘된 결과보다 중간에 포기하고 싶었던 시간이 더 오래 기억날 때가 있는데요. 시간이 지나고 보면 바로 그 구간에서 가장 많은 것을 배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15년의 시간과 하루의 시간이 한자리에 이번 전시에는 서로 다른 시간 속에서 만들어진 작품들이 함께 놓입니다. 길게는 약 15년에 걸쳐 이어진 시간에서 나온 작업도 있고, 짧게는 하루 동안 만들어진 작품도 있습니다. 제작 기간이 다르다는 것은 작품의 깊이가 다르다는 뜻은 아닙니다. 어떤 작업은 오랜 시간 고민이 쌓여야 형태를 얻고, 어떤 작업은 짧은 순간의 감각이 빠르게 작품이 되기도 합니다. 전시는 이 서로 다른 속도를 한 공간 안에 놓으며 ‘과정’이라는 말이 얼마나 다양한 시간을 품는지 보여줍니다. 멈춤도 과정이 될 수 있을까 우리는 멈춰 있는 시간을 쉽게 낭비라고 생각합니다. 작업이 진전되지 않거나 생각이 정리되지 않으면 불안해집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듯한 시간에도 마음속에서는 계속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을 수 있습니다. 생각이 바뀌고, 이전 작업을 다시 바라보며, 포기했던 방향을 ...

노주련 《주련의 딱지: 시간을 접다》, 작은 딱지에 쌓인 기억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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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주련 《주련의 딱지: 시간을 접다》 어린 시절 종이를 네모나게 접어 친구들과 딱지치기를 했던 기억이 있으신가요. 그때는 손바닥만 한 놀이도구였지만 시간이 지나 다시 바라보면 유년의 친구와 골목, 그 시절의 감정까지 함께 떠오릅니다. 경남 양산 스페이스 나무 오로라 갤러리에서 열리는 **노주련 개인전 《주련의 딱지: 시간을 접다》**는 이 익숙한 딱지에서 시작합니다. 작가는 어린 시절의 ‘딱지 접기’를 하나의 조형언어로 확장하고, 접고 포개고 연결하는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기억과 시간의 흔적을 화면에 쌓아갑니다. 어린 시절의 놀이가 예술이 되다 딱지는 복잡한 재료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종이 한 장을 여러 번 접으면 작은 사각형이 완성됩니다. 하지만 노주련에게 중요한 것은 완성된 딱지 하나보다 접는 과정 입니다. 종이를 접고 다시 포개는 동작이 반복될수록 그 안에는 실제 시간이 축적됩니다. 어릴 적 무심코 했던 놀이가 성인이 된 작가의 손에서는 기억을 저장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바뀝니다. 저도 오래된 물건을 다시 발견했을 때 사물 자체보다 그때 함께했던 사람이 먼저 떠오르는 경우가 있는데요. 딱지 역시 작은 종이 안에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품을 수 있습니다. 접는다는 것은 시간을 겹치는 일 종이를 한 번 접으면 보이던 면 일부가 안으로 들어갑니다. 또 접으면 다른 부분이 겹쳐지고 처음 펼쳐져 있던 모습은 더 이상 그대로 보이지 않습니다. 기억도 비슷합니다. 모든 일을 처음 모습 그대로 기억하지는 못합니다. 어떤 장면은 선명하게 남고, 다른 부분은 사라지거나 새로운 경험과 겹쳐집니다. 그래서 이번 전시에서 ‘접기’는 단순한 제작기법이 아니라 시간이 기억을 변화시키는 방식 으로도 읽힙니다. 비단 딱지로 완성한 대작 《그린 그리움》 이번 전시에서 특히 주목할 작품은 **《그린 그리움》**입니다. 약 190×1,000cm 에 이르는 대형 화면에 수많은 비단 딱지를 하나씩 접어 연결한 작품입니다. 작은 딱지 하나를 기억과 시간의 단위처럼 반복하고 쌓으...

《닿지 않는 것들에 대하여》, 완전히 이해할 수 없기에 다시 바라보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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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신·노민지·우형빈 《닿지 않는 것들에 대하여》, 기억과 세계 사이의 거리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것에 닿으려 합니다. 지나간 시간을 기억하고 싶고, 눈앞의 풍경을 이해하고 싶으며, 가까운 사람의 마음까지 알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갈수록 오히려 완전히 닿을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부산 스페이스167 에서 열리는 《닿지 않는 것들에 대하여》는 바로 그 ‘거리’를 바라보는 전시입니다. 김명신, 노민지, 우형빈 세 작가는 서로 다른 회화적 언어를 통해 경험과 기억, 나와 타인, 인간과 세계 사이에 남겨지는 틈을 살펴봅니다. 보는 것과 경험하는 것은 같을까 눈앞의 장면을 본다고 해서 그것을 모두 이해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같은 풍경도 직접 그곳에 있었던 사람과 사진으로 본 사람에게는 전혀 다르게 남습니다. 한 사람이 느낀 온도나 냄새, 당시의 감정까지 다른 사람에게 완벽하게 전달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번 전시는 바로 이런 ‘본 것’과 ‘경험한 것’ 사이의 거리 에서 시작합니다. 기억은 언제나 조금씩 변한다 과거의 기억도 그대로 머물지는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떤 부분은 흐려지고, 아주 작은 장면이 오히려 더 선명해지기도 합니다. 지금의 감정이 과거의 기억을 다시 바꾸기도 하지요. 저도 오래된 장소를 다시 찾아갔을 때 실제 풍경보다 기억 속 모습이 더 익숙하게 느껴졌던 적이 있는데요. 그 순간 ‘내가 기억했던 장소와 지금 보고 있는 장소 중 어느 것이 진짜일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세 작가의 작업 역시 이런 기억의 불완전함을 하나의 가능성으로 바라봅니다. 김명신·노민지·우형빈, 서로 다른 세 개의 거리 세 작가의 회화는 같은 결론을 향하지 않습니다. 각자는 자신이 바라보는 대상과 경험 사이의 간격을 서로 다른 방법으로 드러냅니다. 어떤 작업에서는 장면의 흔적이 중요하고, 또 다른 화면에서는 기억이나 감각의 변화가 더 크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세 작가를 따로 보는 것보다 작품 사이의 간격까지 함께 살펴보는 ...

한강뮤지엄 《쉼표》, 최목운·이지이·이영애·정현순이 건네는 느림의 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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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쉼표: 슬로우 리추얼》, 빠른 일상에서 나만의 속도를 다시 찾는 시간 아침에 눈을 뜨고 창문을 열고, 커피를 마시고 길을 걷습니다. 특별한 사건이 없어도 비슷한 행동은 매일 반복됩니다. 너무 익숙하다 보니 우리는 이런 시간이 삶의 대부분이라는 사실을 쉽게 잊곤 합니다. 한강뮤지엄에서 열리는 **《쉼표: 슬로우 리추얼》**은 최목운, 이지이, 이영애, 정현순 네 작가의 작품을 통해 이렇게 지나쳐온 일상의 시간을 다시 바라보게 합니다. 더 빨리 움직이는 방법보다 자신에게 맞는 삶의 리듬을 발견하는 것 에 초점을 맞춘 전시입니다. ‘리추얼’은 거창한 의식이 아니다 리추얼(Ritual)은 흔히 종교적인 의식을 떠올리게 하지만 이번 전시에서 의미하는 것은 훨씬 가까운 일상의 행동입니다. 아침에 물을 한 잔 마시는 일, 천천히 걷는 시간, 식물을 돌보거나 책장을 넘기는 일도 하나의 리추얼이 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하느냐보다 그 행동을 어떤 감각으로 경험하느냐 입니다. 빠름이 당연해진 시대 우리는 일을 빨리 처리하는 것을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메시지는 바로 답하고, 식사와 이동 시간까지 줄이면서 다음 일을 준비합니다. 그러다 보니 아무 목적 없이 머무는 시간은 어느 순간 낭비처럼 느껴집니다. 저도 바쁜 날에는 일을 하나 끝내기도 전에 다음 할 일을 생각할 때가 있는데요. 막상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무엇을 했는지는 기억나도 그날 어떤 기분이었는지는 잘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쉼표》는 바로 그 잃어버린 감각을 다시 불러냅니다. 반복되는 일상은 정말 지루할까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한다고 해서 모든 순간이 같은 것은 아닙니다. 어제의 햇빛과 오늘의 햇빛이 다르고, 같은 길을 걸어도 기분과 계절에 따라 풍경이 달라집니다. 네 작가는 서로 다른 재료와 방식으로 시간의 흔적, 반복, 몸의 감각, 자연의 리듬과 일상의 풍경 을 바라봅니다. 빠르게 작품의 의미를 찾기보다 오래 머물수록 작은 차이가 보이는 이유입니다. 작품 앞에 오래 머무르는 것도 ...

이원호 《얄궂게 파란》, 파란 이삿짐 박스에 쌓인 가치와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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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갤러리 인터페이스 이원호 개인전, 익숙한 사물을 다시 보는 법 이삿짐을 옮길 때 흔히 보는 파란색 플라스틱 박스가 전시장에 놓이면 어떻게 달라질까요. 평소에는 물건을 담고 나르는 도구일 뿐이지만, 어디에서 누가 사용하는지에 따라 의미는 크게 달라집니다. 부산 갤러리 인터페이스 에서 열리는 이원호 개인전 **《얄궂게 파란》**은 이런 일상의 사물에서 시작합니다. 작가는 파란 이삿짐 박스와 고방유리를 통해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가치와 규칙, 장소와 기억을 다시 바라봅니다. 파란 이삿짐 박스가 작품이 된 이유 파란 플라스틱 박스는 특별한 물건이 아닙니다. 이사 현장에서는 짐을 옮기는 용기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일을 위한 도구가 됩니다. 사적인 물건과 기록을 외부로 이동시키는 상황에서도 사용될 수 있습니다. 같은 물건인데 역할은 계속 달라집니다. 이원호는 바로 이 지점에 주목합니다. 사물의 가치는 그 자체에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놓인 장소와 관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는 것입니다. 보호하면서 동시에 밖으로 옮기는 사물 박스는 물건을 안전하게 보호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 물건을 원래 있던 장소에서 꺼내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는 역할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의 파란 박스 안에는 보호와 노출, 정착과 이동, 소유와 폐기 처럼 서로 반대되는 상황이 공존합니다. 무엇을 담을 것인지 선택하는 순간 무엇을 남겨둘 것인지도 함께 결정됩니다. 평범한 이삿짐 박스가 생각보다 복잡한 사회적 관계를 품게 되는 이유입니다. 고방유리 너머의 흐릿한 기억 이번 전시에서는 고방유리 도 중요한 재료로 등장합니다. 표면에 요철이 있는 고방유리는 유리 너머의 존재를 볼 수는 있지만 정확한 모습까지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작가에게 이 유리는 과거 살았던 집의 기억과 연결됩니다. 집 자체는 재개발로 사라졌지만 창과 유리, 빛의 느낌 같은 작은 감각은 오히려 오래 남았습니다. 저도 예전에 살던 집을 떠올리면 방의 정확한 구조보다 창문으로 들...

김동규 《스윽, 탁: 이 움직임에 동의한다면》, 가구의 소리에서 만나는 전통 소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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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종뮤지엄갤러리 김동규 개인전, 먹빛 가구로 다시 읽는 전통 목공예 서랍을 열 때 나는 ‘스윽’, 문을 닫을 때 들리는 ‘탁’. 너무 익숙해서 평소에는 의식하지 못했던 소리가 전시의 제목이 됐습니다. 세종대학교 세종뮤지엄갤러리 1관 에서 열리는 김동규 기획초대전 《스윽, 탁: 이 움직임에 동의한다면》 은 가구를 눈으로만 바라보지 않습니다. 손으로 열고 닫으며 생기는 움직임과 소리, 사용하는 사람과 가구 사이의 관계까지 작품의 일부로 끌어들입니다. 국가무형유산 소목의 기술에서 출발하다 김동규는 국가무형유산 제55호 소목장 이수자 입니다. 소목은 건축의 큰 구조를 만드는 대목과 달리 장과 궤, 문갑, 책상처럼 생활 가까이에 놓이는 목가구를 만드는 전통 기술입니다. 나무의 성질을 이해하고 짜임과 결구를 통해 구조를 완성하기 때문에 겉모양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내부의 정확성까지 중요합니다. 김동규의 작업 역시 이런 전통적인 제작 방식을 기반으로 합니다. 전통 가구가 오늘의 집에 들어온다면 전통공예를 떠올리면 박물관이나 한옥 공간부터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작가는 소목을 과거의 양식으로 보존하는 데서 멈추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가 생활하는 아파트와 현대적인 실내에도 자연스럽게 놓일 수 있는 가구를 고민합니다. 전통의 기술은 그대로 이어가되 형태와 비례, 표면의 느낌은 오늘의 생활방식과 만나도록 조율합니다. 저도 전통가구를 볼 때 ‘아름답다’고 생각하면서도 우리 집에 놓는 모습을 상상하기는 어려울 때가 있는데요. 이번 전시는 그 거리감을 상당히 흥미롭게 좁혀줍니다. 색을 덜어낸 ‘먹빛’의 현대 가구 이번 전시에서 특히 눈여겨볼 부분은 먹빛의 현대 가구 입니다. 작가는 색을 적극적으로 강조하기보다 오히려 색을 덜어내고 빛의 반사를 최소화합니다. 그 결과 시선은 화려한 장식보다 나무의 구조와 선, 면의 비례로 향합니다. 짙은 표면은 공간 속에서 조용히 존재하지만 형태는 오히려 더 또렷하게 드러납니다. 전통 목가구의 구조미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바라보게 하는 지점...

강인구·김재연·한규원 《찰나의 연금술》, 순간을 작품으로 바꾸는 세 가지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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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찰나의 연금술》, 순간의 감각이 예술로 변하는 시간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장면을 지나갑니다. 창문으로 들어온 빛, 잠깐 스친 표정, 어느 장소에서 느꼈던 공기의 온도처럼 금세 사라질 것 같은 순간들이죠. 그런데 예술가는 그 찰나를 붙잡아 전혀 다른 형태로 바꾸기도 합니다. 2026 OIKOS8 기획전 **《찰나의 연금술: Alchemy of Moments》**은 바로 이 ‘변환’에 주목합니다. 강인구, 김재연, 한규원 세 작가는 기억과 감각, 경험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새로운 조형적 형태로 옮겨냅니다. 연금술과 예술은 어떻게 닮았을까 연금술은 오래전 물질의 성질을 탐구하며 하나의 물질을 다른 것으로 변화시키려 했던 실험적 지식체계였습니다. 연금술사들이 평범한 물질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려 했다면, 예술가 역시 일상적인 장면을 그대로 복제하는 데 머물지 않습니다. 보고, 기억하고, 해석한 뒤 자신의 경험을 더해 새로운 이미지나 물질로 바꿉니다. 그래서 이번 전시에서 ‘연금술’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예술이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 를 설명하는 중요한 단어가 됩니다. 찰나는 사라지지만 감각은 남는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가 모든 순간을 똑같이 기억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구체적인 장면은 희미해져도 색이나 소리, 감정은 오랫동안 남을 때가 있습니다. 저도 오래전 여행을 떠올리면 정확한 거리 모습보다 어느 오후의 빛이나 바람이 먼저 생각날 때가 있는데요. 그런 기억은 현실 그대로라기보다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변형된 또 하나의 이미지에 가깝습니다. 《찰나의 연금술》은 바로 그 변형된 기억과 감각을 예술의 재료로 바라봅니다. 강인구·김재연·한규원, 서로 다른 세 가지 변환 이번 전시는 세 작가가 하나의 정답을 보여주는 방식이 아닙니다. 같은 ‘찰나’라도 무엇을 발견하고 어떤 방식으로 변환하느냐는 서로 다릅니다. 한 작가는 순간에 남은 감정을 붙잡을 수 있고, 다른 작가는 물질과 형태의 변화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작업에서는 기억...

김태호 《파편화된 균열로부터 생성된 새로운 공간》, 무너진 감정에서 다시 시작되는 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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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호 개인전, 파편과 반사 속에서 다시 만들어지는 마음의 공간 사람의 마음은 늘 완전한 형태를 유지하지 않습니다. 어떤 기억은 오래 남고, 어떤 감정은 깨지고 흩어집니다. 그 과정에서 마음속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균열이 생기기도 합니다. 경남 양산 스페이스 나무 갤러리 오로라 에서 열리는 김태호 개인전 **《파편화된 균열로부터 생성된 새로운 공간》**은 바로 그 무너짐 이후를 바라봅니다. 작가는 감정과 기억, 고통과 공허가 파편화되는 순간을 다양한 조각과 반사되는 재료로 표현하고, 그 안에서 다시 새로운 질서가 생성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균열은 끝이 아니라 시작일 수 있다 ‘균열’이라는 말은 보통 부서짐이나 파괴를 떠올리게 합니다. 하지만 김태호의 작업에서 균열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구조가 시작되는 지점에 가깝습니다. 무너진 감정은 이전과 같은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대신 흩어진 조각들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연결되면서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형태를 만듭니다. 그래서 이번 전시에서 중요한 것은 파괴 자체보다 파괴 이후 무엇이 만들어지는가 입니다. 파편화된 감정을 눈앞에 세우다 마음속 감정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김태호는 이러한 감정을 물질적인 조각으로 바꿉니다. 흩어진 형태, 끊어진 구조, 반사되는 표면은 마음속에서 일어난 흔들림을 시각적으로 드러냅니다. 저도 이런 작업을 볼 때는 완벽하게 정돈된 부분보다 어긋난 경계나 끊어진 면에 더 오래 시선이 머무는데요. 오히려 그 불완전함이 실제 감정과 더 가까워 보일 때가 있습니다. 반사되는 재료가 만드는 또 다른 시선 이번 작업에서 반사되는 재료 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반사면은 주변 공간과 관람객의 모습을 작품 안으로 끌어들입니다. 작품을 바라보는 순간 자신의 모습도 함께 보이기 때문에 관람자는 단순한 관찰자에 머물지 않습니다. 같은 작품이라도 보는 위치와 빛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 변화는 감정 역시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떠올리게 합니다. 공허함도 하나의 공간이 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