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현 개인전 《Imperfect Construction》CN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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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 개인전 《Imperfect Construction》, 불완전함을 쌓아 올린 도자 조각 겉으로는 단단해 보이는 건물도 시간이 지나면 균열이 생기고 표면이 닳습니다. 사람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아무리 안정돼 보이는 순간에도 마음속에는 흔들림과 취약함이 남아 있지요. 서울 북촌 CN갤러리 에서 열리는 김정현 개인전 《Imperfect Construction (불완전한 설계)》 은 바로 이 불완전함을 도자 조각으로 풀어냅니다. 건축물의 질감과 구조를 흙으로 옮기고, 균열과 마모의 흔적을 숨기지 않은 채 하나의 형태로 쌓아 올립니다. 단단한 건축에서 불완전함을 발견하다 도시는 질서와 안정의 상징처럼 보입니다. 반듯하게 세워진 벽과 구조물은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 같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작은 금과 마모, 풍화의 흔적이 보입니다. 김정현은 이런 건축의 표면에서 인간과 사회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완전함을 향해 끊임없이 자신을 세우지만 그 과정에서 오히려 부족함과 흔들림이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흙 위에 건축의 시간을 새기다 작업 과정도 흥미롭습니다. 작가는 얇게 편 흙판 위에 여러 건축 재료의 패턴과 질감을 찍은 뒤 잘라내고, 서로 다른 방향으로 이어 붙입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조각은 완벽하게 정돈된 구조가 아니라 긴장과 어긋남을 품은 채 쌓입니다. 이후 소성과 연마를 거치면서 표면에는 실제 오래된 건축물처럼 시간의 흔적이 남습니다. 저도 도자 작품을 볼 때 매끈하게 완성된 표면부터 보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요. 김정현의 작품은 오히려 거칠고 닳은 흔적을 오래 바라보게 만듭니다. 균열은 실패가 아니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균열을 바라보는 방식입니다. 금이 가고 표면이 마모됐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실패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작가는 불완전함을 제거해야 할 결함이 아니라 존재가 지나온 시간의 기록 으로 바라봅니다. 완벽하게 보이기 위해 흔적을 지우기보다 그대로 드러낼 때 오히려 형태의 개성이 분명해집니다. 여러분도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감...

니콜라 푸생(Nicolas Poussin, 1594-16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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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콜라 푸생 1594-1665, 질서와 이성으로 바로크를 다시 세운 화가 17세기 바로크 미술에는 강렬한 빛과 격정적인 움직임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같은 시대 니콜라 푸생(Nicolas Poussin, 1594-1665) 은 오히려 화면을 차분하게 정리하고 감정을 절제하며 고대 미술의 질서를 되살렸습니다. 그는 프랑스에서 태어났지만 삶의 대부분을 로마에서 보냈습니다. 고대 조각과 라파엘로의 회화, 르네상스의 균형을 연구하며 프랑스 고전주의 회화의 기초 를 만든 인물입니다. 자화상 (1650) 로마에서 자신의 예술을 찾다 푸생은 노르망디 지방 레장들리 인근에서 태어났습니다. 젊은 시절 파리로 향했지만 그의 예술을 결정적으로 바꾼 곳은 로마였습니다. 1624년경 로마에 정착한 뒤 고대 유적과 조각, 라파엘로와 티치아노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연구했습니다. 푸생에게 그림은 순간적인 감정을 그대로 터뜨리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화면 속 인물의 위치와 움직임, 배경까지 치밀하게 계산해 하나의 논리적인 세계를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아르카디아의 목자들》, 이상향에도 죽음은 있다 푸생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아르카디아의 목자들》**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목자들이 무덤에 새겨진 문구 “Et in Arcadia ego” 를 읽는 장면입니다. 아르카디아는 평화롭고 이상적인 목가적 세계를 뜻하지만 그곳에도 죽음은 존재합니다. 화면에는 격렬한 사건이 없습니다. 대신 인물들은 무덤을 바라보며 조용히 생각합니다. 저도 이 작품을 볼 때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바로 그 침묵입니다. 죽음을 크게 외치지 않는데도 오히려 삶의 유한함이 더 또렷하게 느껴집니다. 푸생의 그림은 왜 연극 무대처럼 보일까 푸생의 인물들은 무작위로 배치되지 않습니다. 누가 어디를 바라보고 어떤 몸짓을 하는지가 정확하게 계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화면을 보고 있으면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역할을 수행하는 듯한 느낌도 듭니다. 《사비니 여인의 납치》 같은 작품에서는 수많은 인물이 움직이지만 혼란스럽...

조반니 바티스타 티에폴로(Giovanni Battista Tiepolo, 1696–1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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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반니 바티스타 티에폴로 1696–1770, 천장을 하늘로 바꾼 베네치아의 거장 천장을 올려다봤는데 건물의 경계가 사라지고 구름과 하늘이 끝없이 이어지는 듯 보인다면 어떤 느낌일까요? 조반니 바티스타 티에폴로(Giovanni Battista Tiepolo, 1696–1770) 의 벽화는 바로 그런 착시와 해방감을 만들어냅니다. 티에폴로는 18세기 베네치아 회화의 마지막 대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힙니다. 그는 종교화와 역사화, 신화 주제를 다루면서도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보다 밝은 빛과 공기, 우아한 인물과 극적인 공간을 선택했습니다. 베네치아에서 시작한 화가 티에폴로는 1696년 베네치아에서 태어났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그레고리오 라차리니 의 작업실에서 수학했고, 초기에는 피아체타를 비롯한 베네치아 화가들의 강한 명암과 드라마틱한 화면에서 영향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팔레트는 점점 밝아집니다. 푸른 하늘과 연한 분홍, 금빛과 크림색이 화면을 채우며 후기에 우리가 익숙하게 아는 티에폴로 특유의 가볍고 투명한 세계가 만들어집니다. 천장을 실제 하늘처럼 만들다 티에폴로의 가장 큰 장기는 대규모 프레스코였습니다. 그는 건축물의 실제 구조를 그대로 따르기보다 회화 속 원근법을 이용해 벽과 천장이 열려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습니다. 기둥과 난간은 실제 공간에서 그림 속 공간으로 이어지고, 인물들은 구름 위에 앉거나 공중을 가로지릅니다. 저도 티에폴로 작품을 볼 때 가장 놀라운 점은 인물이 많음에도 화면이 답답하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오히려 인물 사이로 빛과 공기가 흐르면서 공간이 실제보다 더 넓어 보입니다. 뷔르츠부르크 레지덴츠의 대작 티에폴로의 대표적인 업적 가운데 하나는 독일 뷔르츠부르크 레지덴츠 의 장식입니다. 1750년대 초 그는 아들들과 함께 독일로 이동해 궁전의 황제의 방과 대계단 천장을 장식했습니다. 대계단 천장의 거대한 프레스코는 유럽 각 대륙을 우화적으로 표현하면서 하늘과 구름, 인물과 건축을 한 화면 안에 결합합니다....

연남동 《2026 아트 쇼케이스》, 초기 예술기업 10곳의 새로운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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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아트 쇼케이스, 예술이 제품·공연·기술로 확장되는 3일 예술은 반드시 캔버스나 조각으로만 존재할까요? 요즘은 작품을 감상하는 방식뿐 아니라 예술을 소비하고 경험하는 방식도 빠르게 넓어지고 있습니다. 서울 연남동 스몰타운스몰 에서 열리는 **《2026 아트 쇼케이스》**는 이런 변화를 한자리에서 보여주는 행사입니다. 초기 예술기업 10곳이 참여해 물감과 라이프스타일 제품부터 공연, 미식, 아트테크, XR까지 서로 다른 결과물을 선보입니다. 전시라기보다 ‘예술의 확장’을 보는 자리 이번 행사의 가장 큰 특징은 특정 장르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회화나 조각처럼 전통적인 미술 작품만 보여주는 방식에서 벗어나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제품과 서비스, 공연 콘텐츠, 기술 기반 경험까지 함께 소개합니다. 예술가의 아이디어가 하나의 작품에 머무르지 않고 상품과 서비스, 공간과 경험으로 어떻게 확장되는지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초기 예술기업 10곳이 한자리에 이번 쇼케이스에는 수이과슈, 럭키참스, 아트핏, 유연랩, 컴퍼니 우연, 파인다이닝 씨어터, 맨다도 컴퍼니, 콘알트, 유어네스트, 식스도파민 등 10개 기업이 참여합니다. 각 기업이 다루는 분야가 서로 달라 한 공간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현재 예술산업의 폭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저도 이런 쇼케이스를 볼 때는 작품 자체보다 “이 아이디어가 실제 생활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이어질까”를 함께 보는 편인데요. 이번 행사는 바로 그 연결 과정이 핵심입니다. 물감과 라이프스타일 제품도 예술이 된다 예술기업의 활동은 작품 판매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재료와 디자인을 활용한 제품을 만들고, 사람들이 일상에서 예술을 자연스럽게 경험하도록 새로운 상품을 제안하기도 합니다. 이런 접근은 미술관이나 갤러리를 찾아야만 예술을 만날 수 있다는 기존의 경계를 조금씩 허뭅니다. 평범한 생활용품 하나도 제작자의 감각과 아이디어가 더해지면 새로운 문화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 공연과 파인다이닝까지 이어지는 예술 이번 행사에서는 ...

제주갤러리 기획전 Ⅱ, 전기숙·정은혜가 묻는 생명과 공존의 방식《날개가 한 번 펄럭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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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개가 한 번 펄럭일 때》, 인간과 자연 사이의 관계를 다시 바라보다 우리는 자연을 설명하는 데 점점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식물의 이름을 알고, 새의 생태를 기록하고, 기후와 환경 변화를 수치로 분석합니다. 그런데 자연을 많이 안다는 것이 정말 자연을 깊이 이해한다는 뜻일까요? 서울 인사동 제주갤러리에서 열리는 **2026 제주갤러리 기획전 Ⅱ 《날개가 한 번 펄럭일 때》**는 이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전기숙, 정은혜 두 작가는 자연을 인간 바깥에 놓인 풍경이 아니라 여러 생명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관계의 세계로 바라봅니다. ‘날개 한 번’이 만드는 작은 변화 전시 제목은 아주 짧은 움직임을 떠올리게 합니다. 한 마리 새가 날개를 한 번 움직이는 일은 아주 사소해 보이지만, 그 주변의 공기와 공간에는 작은 변화가 생깁니다. 자연 안에서 어떤 존재도 완전히 고립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하지요. 이번 전시는 바로 이런 관계에 주목합니다. 하나의 생명이 움직이면 다른 생명과 환경에도 변화가 이어지고, 그 영향은 다시 또 다른 관계를 만들어냅니다. 자연은 바라보는 대상만이 아니다 우리는 흔히 자연을 ‘보는 대상’으로 생각합니다. 산과 바다를 감상하고, 꽃과 새를 관찰하며 자연을 인간의 시선 안에 놓습니다. 하지만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라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물과 공기, 먹거리와 공간 모두 다른 생명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저도 자연을 주제로 한 전시를 볼 때 아름다운 풍경부터 찾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번 전시는 그보다 한 걸음 더 들어가 “나는 자연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한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전기숙과 정은혜, 서로 다른 시선의 만남 전기숙과 정은혜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자연과 생명을 바라봅니다. 중요한 것은 두 작가가 자연을 하나의 고정된 이미지로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인간의 언어로 쉽게 이름 붙이거나 의미를 단정하기보다, 관찰하고 머물며 관계를 살펴봅니다. 그래서 작품은 자연을...

구에르치노(Guercino, 1591-16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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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에르치노 1591-1666, 강렬한 명암과 감정으로 바로크를 그린 화가 17세기 이탈리아 바로크 미술을 따라가다 보면 구에르치노(Guercino, 1591-1666) 라는 이름을 만나게 됩니다. 본명은 조반니 프란체스코 바르비에리(Giovanni Francesco Barbieri)로, ‘구에르치노’는 눈의 특징에서 유래한 별칭입니다. 그의 그림은 초기에는 어둠과 빛의 강한 대비, 거친 감정과 역동적인 움직임이 두드러집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화면은 한층 밝고 정돈되며 고전주의적인 방향으로 변화합니다. 한 화가 안에서 바로크 미술의 두 얼굴을 함께 볼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센토에서 시작된 독학에 가까운 성장 구에르치노는 이탈리아 센토에서 태어났습니다. 큰 도시의 유명한 공방에서 오랫동안 수학한 화가라기보다 지역에서 여러 화가의 작업을 접하며 실력을 키운 인물에 가깝습니다. 특히 루도비코 카라치 의 작품에서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자연스러운 인물 표현과 감정 전달, 볼로냐파 특유의 안정된 구성이 구에르치노의 초기 작업에 중요한 기반이 됩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카라바조 이후 확산된 극적인 명암과 현실감 역시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초기 작품의 핵심은 강렬한 빛과 어둠 구에르치노의 초기 회화를 보면 화면 전체가 상당히 어둡습니다. 그 안에서 얼굴과 손, 천의 일부에 강한 빛이 떨어지며 인물이 갑자기 눈앞으로 튀어나오는 듯한 효과를 만듭니다. 하지만 카라바조와 똑같지는 않습니다. 카라바조가 날카로운 빛으로 현실을 극적으로 잘라냈다면 구에르치노의 명암은 조금 더 부드럽게 퍼지고, 갈색과 붉은색이 섞인 따뜻한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저도 구에르치노의 초기 그림을 보면 어둠 자체보다 어둠 속에서 인물이 서서히 드러나는 방식에 더 눈길이 갑니다. 《에트 인 아르카디아 에고》, 이상향 안의 죽음 구에르치노의 대표적인 초기작 가운데 하나가 **《Et in Arcadia ego》**입니다. 그림에는 목동들이 해골을 바라보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아르카디...

《1.5land : 새로운 섬으로의 여정》, 혼자와 함께 사이 새로운 삶을 상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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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land : 새로운 섬으로의 여정》, 혼자와 함께 사이 새로운 삶을 상상하다 혼자만의 공간은 필요하지만 완전히 고립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고 싶지만 지나친 간섭은 부담스럽죠. 요즘 우리의 관계와 생활방식은 ‘혼자’와 ‘함께’라는 두 단어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제5회 트렌디 페스타 전시 **《1.5land : 새로운 섬으로의 여정》**은 바로 그 사이에 주목합니다. 전시 제목에 등장하는 ‘1.5’는 1과 2 가운데 어딘가에 존재하는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떠올리게 합니다. 왜 ‘1.5’일까 1이라는 숫자를 완전한 개인, 2를 둘 이상의 관계라고 생각해보면 1.5는 흥미로운 위치에 있습니다.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을 지키면서 필요할 때 다른 사람과 연결되는 상태입니다. 예전에는 혼자 살거나 가족과 함께 사는 방식이 비교적 명확하게 구분됐다면 지금은 관계의 모습이 훨씬 다양해졌습니다. 전시 제목은 이런 변화에 ‘1.5’라는 이름을 붙이며 관람객에게 새로운 질문을 건넵니다. 섬은 고립이 아니라 연결의 공간 ‘land’와 ‘섬’이라는 이미지를 함께 생각해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섬은 육지와 떨어져 있기 때문에 독립적인 공간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바다와 배, 다리와 이동을 통해 다른 섬과 끊임없이 관계를 맺습니다. 사람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나만의 경계는 필요하지만 완전히 홀로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자신의 세계를 지키면서 다른 사람과 적당한 거리에서 연결될 때 오히려 편안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저도 바쁜 날에는 혼자 있는 시간이 꼭 필요하면서도, 막상 하루 종일 아무와도 대화하지 않으면 조금 허전할 때가 있는데요. ‘1.5’라는 숫자가 이런 모순된 마음을 꽤 잘 표현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익숙한 삶의 방식에서 출발하다 《1.5land》에서 ‘여정’이라는 단어도 중요합니다. 새로운 섬은 처음부터 완성되어 있는 장소가 아닙니다. 지금까지 익숙했던 생활방식에서 출발해 자신에게 맞는 관계와 공간을 찾아가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독립과 연결, 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