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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 개인전 《Imperfect Construction》CN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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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 개인전 《Imperfect Construction》, 불완전함을 쌓아 올린 도자 조각 겉으로는 단단해 보이는 건물도 시간이 지나면 균열이 생기고 표면이 닳습니다. 사람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아무리 안정돼 보이는 순간에도 마음속에는 흔들림과 취약함이 남아 있지요. 서울 북촌 CN갤러리 에서 열리는 김정현 개인전 《Imperfect Construction (불완전한 설계)》 은 바로 이 불완전함을 도자 조각으로 풀어냅니다. 건축물의 질감과 구조를 흙으로 옮기고, 균열과 마모의 흔적을 숨기지 않은 채 하나의 형태로 쌓아 올립니다. 단단한 건축에서 불완전함을 발견하다 도시는 질서와 안정의 상징처럼 보입니다. 반듯하게 세워진 벽과 구조물은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 같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작은 금과 마모, 풍화의 흔적이 보입니다. 김정현은 이런 건축의 표면에서 인간과 사회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완전함을 향해 끊임없이 자신을 세우지만 그 과정에서 오히려 부족함과 흔들림이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흙 위에 건축의 시간을 새기다 작업 과정도 흥미롭습니다. 작가는 얇게 편 흙판 위에 여러 건축 재료의 패턴과 질감을 찍은 뒤 잘라내고, 서로 다른 방향으로 이어 붙입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조각은 완벽하게 정돈된 구조가 아니라 긴장과 어긋남을 품은 채 쌓입니다. 이후 소성과 연마를 거치면서 표면에는 실제 오래된 건축물처럼 시간의 흔적이 남습니다. 저도 도자 작품을 볼 때 매끈하게 완성된 표면부터 보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요. 김정현의 작품은 오히려 거칠고 닳은 흔적을 오래 바라보게 만듭니다. 균열은 실패가 아니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균열을 바라보는 방식입니다. 금이 가고 표면이 마모됐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실패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작가는 불완전함을 제거해야 할 결함이 아니라 존재가 지나온 시간의 기록 으로 바라봅니다. 완벽하게 보이기 위해 흔적을 지우기보다 그대로 드러낼 때 오히려 형태의 개성이 분명해집니다. 여러분도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감...

니콜라 푸생(Nicolas Poussin, 1594-16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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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콜라 푸생 1594-1665, 질서와 이성으로 바로크를 다시 세운 화가 17세기 바로크 미술에는 강렬한 빛과 격정적인 움직임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같은 시대 니콜라 푸생(Nicolas Poussin, 1594-1665) 은 오히려 화면을 차분하게 정리하고 감정을 절제하며 고대 미술의 질서를 되살렸습니다. 그는 프랑스에서 태어났지만 삶의 대부분을 로마에서 보냈습니다. 고대 조각과 라파엘로의 회화, 르네상스의 균형을 연구하며 프랑스 고전주의 회화의 기초 를 만든 인물입니다. 자화상 (1650) 로마에서 자신의 예술을 찾다 푸생은 노르망디 지방 레장들리 인근에서 태어났습니다. 젊은 시절 파리로 향했지만 그의 예술을 결정적으로 바꾼 곳은 로마였습니다. 1624년경 로마에 정착한 뒤 고대 유적과 조각, 라파엘로와 티치아노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연구했습니다. 푸생에게 그림은 순간적인 감정을 그대로 터뜨리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화면 속 인물의 위치와 움직임, 배경까지 치밀하게 계산해 하나의 논리적인 세계를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아르카디아의 목자들》, 이상향에도 죽음은 있다 푸생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아르카디아의 목자들》**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목자들이 무덤에 새겨진 문구 “Et in Arcadia ego” 를 읽는 장면입니다. 아르카디아는 평화롭고 이상적인 목가적 세계를 뜻하지만 그곳에도 죽음은 존재합니다. 화면에는 격렬한 사건이 없습니다. 대신 인물들은 무덤을 바라보며 조용히 생각합니다. 저도 이 작품을 볼 때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바로 그 침묵입니다. 죽음을 크게 외치지 않는데도 오히려 삶의 유한함이 더 또렷하게 느껴집니다. 푸생의 그림은 왜 연극 무대처럼 보일까 푸생의 인물들은 무작위로 배치되지 않습니다. 누가 어디를 바라보고 어떤 몸짓을 하는지가 정확하게 계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화면을 보고 있으면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역할을 수행하는 듯한 느낌도 듭니다. 《사비니 여인의 납치》 같은 작품에서는 수많은 인물이 움직이지만 혼란스럽...

조반니 바티스타 티에폴로(Giovanni Battista Tiepolo, 1696–1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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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반니 바티스타 티에폴로 1696–1770, 천장을 하늘로 바꾼 베네치아의 거장 천장을 올려다봤는데 건물의 경계가 사라지고 구름과 하늘이 끝없이 이어지는 듯 보인다면 어떤 느낌일까요? 조반니 바티스타 티에폴로(Giovanni Battista Tiepolo, 1696–1770) 의 벽화는 바로 그런 착시와 해방감을 만들어냅니다. 티에폴로는 18세기 베네치아 회화의 마지막 대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힙니다. 그는 종교화와 역사화, 신화 주제를 다루면서도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보다 밝은 빛과 공기, 우아한 인물과 극적인 공간을 선택했습니다. 베네치아에서 시작한 화가 티에폴로는 1696년 베네치아에서 태어났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그레고리오 라차리니 의 작업실에서 수학했고, 초기에는 피아체타를 비롯한 베네치아 화가들의 강한 명암과 드라마틱한 화면에서 영향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팔레트는 점점 밝아집니다. 푸른 하늘과 연한 분홍, 금빛과 크림색이 화면을 채우며 후기에 우리가 익숙하게 아는 티에폴로 특유의 가볍고 투명한 세계가 만들어집니다. 천장을 실제 하늘처럼 만들다 티에폴로의 가장 큰 장기는 대규모 프레스코였습니다. 그는 건축물의 실제 구조를 그대로 따르기보다 회화 속 원근법을 이용해 벽과 천장이 열려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습니다. 기둥과 난간은 실제 공간에서 그림 속 공간으로 이어지고, 인물들은 구름 위에 앉거나 공중을 가로지릅니다. 저도 티에폴로 작품을 볼 때 가장 놀라운 점은 인물이 많음에도 화면이 답답하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오히려 인물 사이로 빛과 공기가 흐르면서 공간이 실제보다 더 넓어 보입니다. 뷔르츠부르크 레지덴츠의 대작 티에폴로의 대표적인 업적 가운데 하나는 독일 뷔르츠부르크 레지덴츠 의 장식입니다. 1750년대 초 그는 아들들과 함께 독일로 이동해 궁전의 황제의 방과 대계단 천장을 장식했습니다. 대계단 천장의 거대한 프레스코는 유럽 각 대륙을 우화적으로 표현하면서 하늘과 구름, 인물과 건축을 한 화면 안에 결합합니다....

연남동 《2026 아트 쇼케이스》, 초기 예술기업 10곳의 새로운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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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아트 쇼케이스, 예술이 제품·공연·기술로 확장되는 3일 예술은 반드시 캔버스나 조각으로만 존재할까요? 요즘은 작품을 감상하는 방식뿐 아니라 예술을 소비하고 경험하는 방식도 빠르게 넓어지고 있습니다. 서울 연남동 스몰타운스몰 에서 열리는 **《2026 아트 쇼케이스》**는 이런 변화를 한자리에서 보여주는 행사입니다. 초기 예술기업 10곳이 참여해 물감과 라이프스타일 제품부터 공연, 미식, 아트테크, XR까지 서로 다른 결과물을 선보입니다. 전시라기보다 ‘예술의 확장’을 보는 자리 이번 행사의 가장 큰 특징은 특정 장르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회화나 조각처럼 전통적인 미술 작품만 보여주는 방식에서 벗어나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제품과 서비스, 공연 콘텐츠, 기술 기반 경험까지 함께 소개합니다. 예술가의 아이디어가 하나의 작품에 머무르지 않고 상품과 서비스, 공간과 경험으로 어떻게 확장되는지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초기 예술기업 10곳이 한자리에 이번 쇼케이스에는 수이과슈, 럭키참스, 아트핏, 유연랩, 컴퍼니 우연, 파인다이닝 씨어터, 맨다도 컴퍼니, 콘알트, 유어네스트, 식스도파민 등 10개 기업이 참여합니다. 각 기업이 다루는 분야가 서로 달라 한 공간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현재 예술산업의 폭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저도 이런 쇼케이스를 볼 때는 작품 자체보다 “이 아이디어가 실제 생활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이어질까”를 함께 보는 편인데요. 이번 행사는 바로 그 연결 과정이 핵심입니다. 물감과 라이프스타일 제품도 예술이 된다 예술기업의 활동은 작품 판매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재료와 디자인을 활용한 제품을 만들고, 사람들이 일상에서 예술을 자연스럽게 경험하도록 새로운 상품을 제안하기도 합니다. 이런 접근은 미술관이나 갤러리를 찾아야만 예술을 만날 수 있다는 기존의 경계를 조금씩 허뭅니다. 평범한 생활용품 하나도 제작자의 감각과 아이디어가 더해지면 새로운 문화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 공연과 파인다이닝까지 이어지는 예술 이번 행사에서는 ...

제주갤러리 기획전 Ⅱ, 전기숙·정은혜가 묻는 생명과 공존의 방식《날개가 한 번 펄럭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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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개가 한 번 펄럭일 때》, 인간과 자연 사이의 관계를 다시 바라보다 우리는 자연을 설명하는 데 점점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식물의 이름을 알고, 새의 생태를 기록하고, 기후와 환경 변화를 수치로 분석합니다. 그런데 자연을 많이 안다는 것이 정말 자연을 깊이 이해한다는 뜻일까요? 서울 인사동 제주갤러리에서 열리는 **2026 제주갤러리 기획전 Ⅱ 《날개가 한 번 펄럭일 때》**는 이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전기숙, 정은혜 두 작가는 자연을 인간 바깥에 놓인 풍경이 아니라 여러 생명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관계의 세계로 바라봅니다. ‘날개 한 번’이 만드는 작은 변화 전시 제목은 아주 짧은 움직임을 떠올리게 합니다. 한 마리 새가 날개를 한 번 움직이는 일은 아주 사소해 보이지만, 그 주변의 공기와 공간에는 작은 변화가 생깁니다. 자연 안에서 어떤 존재도 완전히 고립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하지요. 이번 전시는 바로 이런 관계에 주목합니다. 하나의 생명이 움직이면 다른 생명과 환경에도 변화가 이어지고, 그 영향은 다시 또 다른 관계를 만들어냅니다. 자연은 바라보는 대상만이 아니다 우리는 흔히 자연을 ‘보는 대상’으로 생각합니다. 산과 바다를 감상하고, 꽃과 새를 관찰하며 자연을 인간의 시선 안에 놓습니다. 하지만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라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물과 공기, 먹거리와 공간 모두 다른 생명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저도 자연을 주제로 한 전시를 볼 때 아름다운 풍경부터 찾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번 전시는 그보다 한 걸음 더 들어가 “나는 자연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한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전기숙과 정은혜, 서로 다른 시선의 만남 전기숙과 정은혜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자연과 생명을 바라봅니다. 중요한 것은 두 작가가 자연을 하나의 고정된 이미지로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인간의 언어로 쉽게 이름 붙이거나 의미를 단정하기보다, 관찰하고 머물며 관계를 살펴봅니다. 그래서 작품은 자연을...

구에르치노(Guercino, 1591-16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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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에르치노 1591-1666, 강렬한 명암과 감정으로 바로크를 그린 화가 17세기 이탈리아 바로크 미술을 따라가다 보면 구에르치노(Guercino, 1591-1666) 라는 이름을 만나게 됩니다. 본명은 조반니 프란체스코 바르비에리(Giovanni Francesco Barbieri)로, ‘구에르치노’는 눈의 특징에서 유래한 별칭입니다. 그의 그림은 초기에는 어둠과 빛의 강한 대비, 거친 감정과 역동적인 움직임이 두드러집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화면은 한층 밝고 정돈되며 고전주의적인 방향으로 변화합니다. 한 화가 안에서 바로크 미술의 두 얼굴을 함께 볼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센토에서 시작된 독학에 가까운 성장 구에르치노는 이탈리아 센토에서 태어났습니다. 큰 도시의 유명한 공방에서 오랫동안 수학한 화가라기보다 지역에서 여러 화가의 작업을 접하며 실력을 키운 인물에 가깝습니다. 특히 루도비코 카라치 의 작품에서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자연스러운 인물 표현과 감정 전달, 볼로냐파 특유의 안정된 구성이 구에르치노의 초기 작업에 중요한 기반이 됩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카라바조 이후 확산된 극적인 명암과 현실감 역시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초기 작품의 핵심은 강렬한 빛과 어둠 구에르치노의 초기 회화를 보면 화면 전체가 상당히 어둡습니다. 그 안에서 얼굴과 손, 천의 일부에 강한 빛이 떨어지며 인물이 갑자기 눈앞으로 튀어나오는 듯한 효과를 만듭니다. 하지만 카라바조와 똑같지는 않습니다. 카라바조가 날카로운 빛으로 현실을 극적으로 잘라냈다면 구에르치노의 명암은 조금 더 부드럽게 퍼지고, 갈색과 붉은색이 섞인 따뜻한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저도 구에르치노의 초기 그림을 보면 어둠 자체보다 어둠 속에서 인물이 서서히 드러나는 방식에 더 눈길이 갑니다. 《에트 인 아르카디아 에고》, 이상향 안의 죽음 구에르치노의 대표적인 초기작 가운데 하나가 **《Et in Arcadia ego》**입니다. 그림에는 목동들이 해골을 바라보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아르카디...

《1.5land : 새로운 섬으로의 여정》, 혼자와 함께 사이 새로운 삶을 상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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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land : 새로운 섬으로의 여정》, 혼자와 함께 사이 새로운 삶을 상상하다 혼자만의 공간은 필요하지만 완전히 고립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고 싶지만 지나친 간섭은 부담스럽죠. 요즘 우리의 관계와 생활방식은 ‘혼자’와 ‘함께’라는 두 단어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제5회 트렌디 페스타 전시 **《1.5land : 새로운 섬으로의 여정》**은 바로 그 사이에 주목합니다. 전시 제목에 등장하는 ‘1.5’는 1과 2 가운데 어딘가에 존재하는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떠올리게 합니다. 왜 ‘1.5’일까 1이라는 숫자를 완전한 개인, 2를 둘 이상의 관계라고 생각해보면 1.5는 흥미로운 위치에 있습니다.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을 지키면서 필요할 때 다른 사람과 연결되는 상태입니다. 예전에는 혼자 살거나 가족과 함께 사는 방식이 비교적 명확하게 구분됐다면 지금은 관계의 모습이 훨씬 다양해졌습니다. 전시 제목은 이런 변화에 ‘1.5’라는 이름을 붙이며 관람객에게 새로운 질문을 건넵니다. 섬은 고립이 아니라 연결의 공간 ‘land’와 ‘섬’이라는 이미지를 함께 생각해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섬은 육지와 떨어져 있기 때문에 독립적인 공간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바다와 배, 다리와 이동을 통해 다른 섬과 끊임없이 관계를 맺습니다. 사람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나만의 경계는 필요하지만 완전히 홀로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자신의 세계를 지키면서 다른 사람과 적당한 거리에서 연결될 때 오히려 편안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저도 바쁜 날에는 혼자 있는 시간이 꼭 필요하면서도, 막상 하루 종일 아무와도 대화하지 않으면 조금 허전할 때가 있는데요. ‘1.5’라는 숫자가 이런 모순된 마음을 꽤 잘 표현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익숙한 삶의 방식에서 출발하다 《1.5land》에서 ‘여정’이라는 단어도 중요합니다. 새로운 섬은 처음부터 완성되어 있는 장소가 아닙니다. 지금까지 익숙했던 생활방식에서 출발해 자신에게 맞는 관계와 공간을 찾아가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독립과 연결, 개인...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Artemisia Gentileschi, 1593-1654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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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1593-1654, 바로크 미술의 강렬한 여성 화가 17세기 바로크 미술에서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Artemisia Gentileschi, 1593-1654경) 는 특별한 위치에 있습니다. 여성에게 전문 화가의 길이 거의 열려 있지 않았던 시대에 로마와 피렌체, 나폴리, 런던을 오가며 독립적인 경력을 구축했습니다. 그녀의 작품은 카라바조를 떠올리게 하는 강렬한 명암과 현실적인 인물 표현을 보여주지만, 여성 인물에게 훨씬 적극적인 행동과 감정을 부여했다는 점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었습니다. <자화상>1630년 화가 오라치오 젠틸레스키의 딸 아르테미시아는 1593년 로마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오라치오 젠틸레스키 는 카라바조의 영향을 받은 화가였고, 아르테미시아는 그의 공방에서 그림을 배웠습니다. 당시 여성은 남성과 같은 방식으로 미술 아카데미에서 인체를 공부하거나 전문적인 교육을 받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녀에게 아버지의 공방은 사실상 중요한 미술학교였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10대 후반에는 이미 독립적인 작품을 제작할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수산나와 두 노인》, 젊은 화가의 놀라운 시작 초기 대표작 **《수산나와 두 노인》**은 아르테미시아가 매우 젊은 시기에 제작한 작품입니다. 성경 속 수산나가 두 남성의 위협을 받는 장면을 그렸는데, 여기서 수산나는 단순한 아름다운 누드로 표현되지 않습니다. 몸을 비틀어 남성들에게서 멀어지려 하고 얼굴에는 분명한 불편함과 두려움이 나타납니다. 같은 주제를 다룬 당시 여러 작품과 비교하면 여성 인물의 심리적 반응이 훨씬 직접적으로 느껴집니다. 삶을 바꾼 사건과 재판 1611년 아르테미시아는 아버지와 함께 일했던 화가 아고스티노 타시에게 성폭력을 당했고, 이듬해 재판이 진행됐습니다. 재판 과정에서 아르테미시아는 가혹한 신문까지 견뎌야 했습니다. 사건 기록이 남아 있기 때문에 오늘날 그녀의 작품은 종종 이 경험과 연결해 해석됩니다. 하지만 모든 그림을 ...

도지성 개인전, 《도시산책자-기억의 윤곽》으로 걷는 도시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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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문화예술회관 도지성 개인전, 도시의 흔적을 따라 걷는 회화 매일 걷던 길도 어느 날 다시 보면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오래된 건물이 사라지고 새로운 풍경이 들어서면서 우리가 기억하던 도시의 모습도 조금씩 변하기 때문입니다. 인천문화예술회관 대전시실에서 열리는 도지성 개인전 에서는 작가가 꾸준히 바라봐 온 도시와 기억의 관계를 만날 수 있습니다. 특히 2026년 작업 《도시산책자-기억의 윤곽》 연작을 중심으로, 변화하는 도시 속에서 무엇이 사라지고 무엇이 기억으로 남는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도시를 걷는 사람의 시선 ‘도시산책자’라는 말에는 단순히 거리를 걷는 사람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목적지를 향해 빠르게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골목과 건물, 사람들의 흔적을 바라보며 도시를 읽는 사람에 가깝습니다. 같은 장소라도 매일 조금씩 달라집니다. 간판이 바뀌고, 벽의 색이 흐려지고, 익숙했던 공간이 어느 순간 사라지기도 합니다. 도지성의 회화는 이런 변화 속에서 지나치기 쉬운 도시의 표정을 붙잡습니다. 기억은 정확한 사진처럼 남지 않는다 사람의 기억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오래된 장소를 떠올리면 정확한 건물 구조보다 그곳에서 느꼈던 공기나 색, 함께했던 사람이 먼저 생각날 때가 있습니다. 저도 예전에 자주 다녔던 골목을 다시 찾았을 때 실제 풍경보다 기억 속 모습이 훨씬 선명했던 경험이 있는데요. 도시를 바라보는 일은 결국 자신의 시간을 바라보는 일과도 닮아 있습니다. 《도시산책자-기억의 윤곽》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주요 작품들은 캔버스 위에 혼합재료 를 사용한 《도시산책자-기억의 윤곽》 연작입니다. 117×91cm부터 227×160cm에 이르는 큰 화면까지 다양한 규모의 작업이 소개됩니다.  ‘윤곽’이라는 단어도 흥미롭습니다. 기억은 모든 것을 선명하게 남기지 않습니다. 어떤 부분은 또렷하고 다른 부분은 흐려지면서 전체적인 윤곽만 남습니다. 작가는 그 불완전함을 지우기보다 회화 안에 그대로 받아들이며 도시의 시간과 개인의 기억...

정미경 개인전 《뻔한 FUN : 행복의 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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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갤러리 원 정미경 개인전, 색과 원으로 이어지는 행복의 순간 반복되는 하루는 언뜻 비슷해 보입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제와 오늘의 감정이 다르고, 같은 장소에서도 새로운 기억이 생깁니다. 아주 작은 기쁨 하나가 하루 전체의 분위기를 바꿔놓을 때도 있고요. 청주 갤러리 원 B관에서 열리는 **정미경 개인전 《뻔한 FUN : 행복의 순환》**은 이렇게 평범한 일상 속에서 이어지는 행복의 순간을 바라봅니다. 강렬한 표정과 색채를 보여주던 이전 작업에서 한 걸음 나아가, 이번에는 시간과 기억, 감정이 연결되고 순환하는 모습을 화면에 담았습니다. ‘뻔한’ 하루에서 찾은 FUN 전시 제목부터 재미있습니다. ‘뻔한’과 영어 FUN 을 연결하면서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하루 안에도 충분한 즐거움이 숨어 있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행복은 늘 큰 사건으로 찾아오지 않습니다. 좋아하는 사람과 나눈 짧은 대화, 맛있는 음식 한 끼, 익숙한 길에서 만난 햇빛처럼 작은 순간들이 오히려 오래 기억에 남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오늘 하루에서 어떤 작은 즐거움을 발견하셨나요? 강렬한 초상에서 행복의 흐름으로 정미경의 이전 작업에서는 과장된 표정과 보색의 대비를 통해 순간적인 감정을 강하게 드러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시선이 조금 달라집니다. 한순간 폭발하는 감정보다는 일상에 이어지는 행복의 온기와 그것이 반복되는 과정 에 집중합니다.  저도 하루를 돌아보면 특별한 사건보다 별것 아니었던 순간이 더 따뜻하게 남을 때가 있는데요. 그런 기억들이 하나둘 쌓이면서 결국 삶 전체의 분위기를 만든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간이 쌓이면 색이 된다 작가에게 반복되는 하루는 단순한 반복이 아닙니다. 하루가 겹치면 시간이 되고, 그 시간마다 서로 다른 기억과 감정이 생깁니다. 작품 속 다양한 색은 바로 이렇게 축적된 순간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기쁜 날과 힘든 날, 평온했던 날이 모두 다른 색으로 존재하다가 결국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됩니다. 그래서 이번 작업에서 색은 단순한 장식보다 시간과 ...

2026 인천국제현대사진전 《자각몽, 도시의 꿈꿀 권리》, 인천 전체가 사진미술관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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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 인천국제현대사진전 《자각몽, 도시의 꿈꿀 권리》 도시도 꿈을 꿀 수 있을까요? 오래된 항구의 기억과 지금의 삶, 아직 오지 않은 미래가 한 도시 안에 동시에 존재한다면 사진은 그 시간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요? 2026 인천국제현대사진전 《자각몽, 도시의 꿈꿀 권리》 는 인천을 하나의 거대한 사진미술관으로 바라보는 국제 현대사진 프로젝트입니다. 9월 26일부터 30일까지 구월동과 송도국제도시, 만석부두를 연결하며 도시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사진으로 펼쳐 보입니다. ‘자각몽’으로 바라본 인천 자각몽은 꿈을 꾸면서도 자신이 꿈속에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번 전시는 이 개념을 도시로 확장합니다. 산업화와 개항의 시간이 남아 있는 만석부두, 현재의 문화예술 공간이 자리한 구월동, 미래도시의 이미지를 지닌 송도가 하나의 서사 안에서 연결됩니다. 인천이 지나온 시간만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어떤 도시를 꿈꿀 수 있는가까지 묻는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클로드 카엉, 정체성의 경계를 흔들다 국제관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작가는 초현실주의 사진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클로드 카엉(Claude Cahun) 입니다. 카엉은 자화상과 연출사진을 통해 성과 정체성, 자아의 경계를 끊임없이 흔들었습니다. 한 사람이 하나의 고정된 모습으로만 설명될 수 있는지 질문했던 작업은 ‘자각몽’이라는 이번 전시 주제와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저도 카엉의 작업을 볼 때면 사진이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기록물이라는 생각이 금세 흔들리는데요. 카메라 앞에서 만들어진 또 다른 ‘나’ 역시 하나의 진실일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SATA와 하선영, 현실을 다시 보는 사진 한국 사진가들의 작업도 함께 만날 수 있습니다. 초현실적인 이미지로 잘 알려진 SATA 와 프랑스 아를에서 사진을 공부한 하선영 등이 참여해 현실과 환상, 도시와 개인의 기억을 서로 다른 시선으로 풀어냅니다. 사진은 눈앞의 풍경을 그대로 복제하는 것 같지만 작가가 어디에 서고 무엇을 선택...

원주 갤러리 원 한국수묵캘리협회전, 《글씨가 위로가 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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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가 위로가 되는 순간》, 먹과 여백으로 건네는 따뜻한 마음 좋은 문장 하나가 오래 마음에 남을 때가 있습니다. 복잡한 설명이 없어도 짧은 글씨 몇 자가 지금의 마음을 정확히 알아주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요. 원주 갤러리 원에서 열리는 한국수묵캘리협회전 **《글씨가 위로가 되는 순간》**은 글씨와 그림, 먹과 여백을 통해 이런 조용한 위로를 건네는 전시입니다. 전통적인 수묵의 감성과 현대적인 캘리그라피가 만나 글자가 단순히 읽는 문자를 넘어 하나의 이미지이자 감정으로 확장됩니다. 수묵과 캘리그라피가 만나다 수묵캘리그라피의 매력은 글씨와 그림의 경계가 선명하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먹의 진하고 옅은 농담, 자연스럽게 퍼지는 번짐, 붓끝의 흔들림까지 모두 작품을 이루는 요소가 됩니다. 같은 글자도 붓의 속도와 힘에 따라 전혀 다른 감정을 보여주지요. 그래서 작품을 볼 때는 문장의 뜻만 읽기보다 획의 움직임과 주변의 빈 공간까지 함께 보는 것이 좋습니다. 여백도 하나의 언어가 된다 한국 수묵 작업에서 여백은 비어 있는 공간이 아닙니다. 화면을 가득 채우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한 획과 한 문장에 시선이 더 오래 머뭅니다. 관람객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채울 공간도 자연스럽게 생깁니다. 저도 수묵 작품을 볼 때는 빽빽한 화면보다 넓은 여백 속에 놓인 짧은 글씨가 더 오래 기억될 때가 있는데요. 이번 전시는 그런 ‘비어 있음의 힘’을 느끼기에 잘 어울립니다. 좋아하는 것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시간 참여 작가들의 작업에는 거창한 사건보다 일상에서 발견한 작은 감정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 좋아하는 풍경을 바라보고, 자연의 움직임을 느끼고, 마음에 남은 문장을 붓으로 다시 써 내려갑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식물이나 지나가는 계절처럼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순간도 작가의 손을 거치면 하나의 기록이 됩니다. 창작은 특별한 영감에서만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하루를 오래 바라보는 데서 출발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글씨가 그림이 되고 그림이 마음이 되다 이번 전시에서는 문자...

부산문화회관 《미셸 앙리》, 프랑스 구상회화의 색채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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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앙리 : 위대한 컬러리스트》, 꽃과 빛으로 완성한 색의 세계 꽃을 그린 그림은 많지만, 어떤 화가의 꽃은 실제보다 더 강렬하게 기억됩니다. 붉은 장미와 튤립, 초록의 잎과 푸른 풍경이 한 화면에서 부딪히면서 현실보다 더 선명한 감정을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부산문화회관에서 열리는 **《미셸 앙리 : 위대한 컬러리스트》**는 프랑스 구상회화의 대표 작가 미셸 앙리(Michel-Henry, 1928-2016) 의 색채 세계를 집중적으로 보여주는 특별전입니다. 2026년 한불수교 140주년을 기념해 마련됐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습니다. 꽃을 그렸지만 사실은 빛을 그린 화가 미셸 앙리는 프랑스 랑그르에서 태어나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에서 공부했습니다. 그는 꽃과 정물, 풍경을 즐겨 그렸지만 대상의 형태를 정확하게 재현하는 데만 관심을 두지는 않았습니다. 꽃병 속 장미나 창가의 꽃, 여행지의 풍경도 그의 화면에서는 강렬한 빛과 색의 덩어리로 다시 태어납니다. 그래서 작품을 멀리서 보면 먼저 색이 들어오고, 가까이 다가가면 두껍게 올라간 물감과 붓질이 눈에 들어옵니다. 왜 ‘위대한 컬러리스트’일까 미셸 앙리의 작품에서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역시 색입니다. 붉은색은 더 붉고, 초록은 더욱 깊습니다. 파란색과 노란색, 분홍색도 서로 부딪히면서 화면에 강한 생명력을 만듭니다. 저도 이런 색채 회화를 볼 때는 작품 제목을 읽기 전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색을 잠시 바라보는 편인데요. 미셸 앙리의 경우에는 색 자체가 작품의 분위기를 결정한다는 점이 특히 선명합니다. 단순히 화려한 것이 아니라 빛을 색으로 번역한 듯한 화면 이 그의 매력입니다. 꽃은 가장 익숙하면서도 가장 강렬한 소재 미셸 앙리가 오랫동안 꽃을 그린 이유도 흥미롭습니다. 꽃은 누구에게나 익숙하지만 계절과 빛에 따라 끊임없이 달라집니다. 같은 장미라도 아침과 저녁의 색이 다르고, 시들어가는 순간까지도 서로 다른 표정을 보여줍니다. 미셸 앙리는 이런 순간을 붙잡아 꽃을 단순한 정물이 아니라 하나의 강렬한 색채 ...

서귀포예술의전당 《원더랜드》, 기억과 상상 속 나만의 행복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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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더랜드_당신의 원더랜드를 찾아서》, 다섯 작가가 펼치는 현실 너머의 세계 누구에게나 마음속에 하나쯤은 ‘원더랜드’가 있습니다. 어린 시절 가장 행복했던 장소일 수도 있고, 언젠가 도착하고 싶은 미래일 수도 있습니다. 바쁜 하루 중 잠깐 찾아오는 작지만 특별한 순간 역시 누군가에게는 원더랜드가 됩니다. 서귀포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원더랜드_당신의 원더랜드를 찾아서》**는 구성연, 노동식, 아트놈, 유영운, 한호 다섯 작가가 각자의 방식으로 만들어낸 이상적인 세계를 보여주는 전시입니다. 사진과 회화, 조형 등 서로 다른 매체가 한자리에서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넘나듭니다.  누구에게나 원더랜드는 다르다 원더랜드라고 하면 동화 속 신비로운 나라부터 떠올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정해진 이상향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기억과 경험, 욕망과 상상이 사람마다 다른 만큼 원더랜드 역시 하나의 모습으로 설명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가족과 함께했던 어린 시절이, 또 누군가에게는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이 가장 이상적인 세계가 될 수 있습니다. 구성연, 사탕으로 피어난 환상의 꽃 전시장에서는 익숙한 재료가 예상하지 못한 이미지로 변합니다. 구성연의 작업에서는 사탕으로 만들어진 꽃 이 등장합니다. 달콤하고 화려한 이미지는 한눈에 시선을 끌지만, 오래 바라보면 욕망과 환상이라는 또 다른 의미가 떠오릅니다. 사탕은 달콤하지만 결국 녹아 사라집니다. 아름다운 순간 역시 영원히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까지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합니다. 노동식, 솜으로 불러낸 유년의 기억 솜이라는 재료는 부드럽고 따뜻합니다. 노동식의 작업에서 솜으로 채워진 공간은 어린 시절의 기억과 가족의 온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저도 어릴 적 살았던 동네나 집을 떠올릴 때 정확한 구조보다 햇빛이나 냄새, 촉감 같은 감각부터 기억날 때가 있는데요. 유년의 기억은 사실보다 이런 감각으로 오래 남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드러운 솜은 ‘기억의 재료’처럼 다가옵니다. 아트놈, 밝은...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 1632-16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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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하네스 베르메르 1632-1675, 고요한 빛으로 일상을 영원하게 만든 화가 17세기 네덜란드 미술에서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 1632-1675) 는 가장 조용한 방식으로 강한 인상을 남긴 화가입니다. 그의 그림에는 거대한 전쟁도, 격정적인 몸짓도 거의 없습니다. 대신 창가에서 편지를 읽는 여성, 우유를 따르는 하녀,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처럼 아주 평범한 순간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장면은 쉽게 잊히지 않습니다. 이유는 바로 빛과 침묵 에 있습니다. 델프트에서 거의 평생을 보낸 화가 베르메르는 1632년 네덜란드 델프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다른 거장들처럼 유럽 여러 도시를 오가며 활동한 흔적이 많지 않습니다. 삶의 대부분을 델프트에서 보냈고, 그곳의 시민과 실내 풍경을 중심으로 작업했습니다. 미술상과 여관업을 하던 집안 환경 속에서 성장했고, 이후 화가조합인 성 루가 길드에 가입하며 전문 화가로 활동했습니다. 남긴 작품 수가 많지 않다는 점도 베르메르를 더욱 특별하게 만듭니다. 창문에서 들어오는 빛 베르메르의 그림을 보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왼쪽 창문에서 빛이 들어오고, 실내의 인물과 벽, 천과 식탁을 천천히 밝힙니다. 빛은 단순히 사물을 보이게 하는 역할을 하지 않습니다. 벽에 부딪히고 천에 반사되며 유리잔과 진주, 금속 표면에서 작은 반짝임을 만듭니다. 저도 베르메르 그림을 볼 때 인물보다 먼저 벽에 퍼지는 빛을 보게 될 때가 많습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장면이 이상할 만큼 깊어 보이는 이유가 바로 그 빛 때문입니다. 《우유 따르는 여인》, 평범한 노동의 존엄 대표작 **《우유 따르는 여인》**은 한 여성이 우유를 따르는 순간을 그린 작품입니다. 행동은 단순합니다. 하지만 빵과 우유, 벽의 질감과 여성의 옷이 세심하게 묘사되면서 장면 전체에 묵직한 존재감이 생깁니다. 베르메르는 평범한 가사노동을 가볍게 다루지 않습니다. 그 인물을 화면의 중심에...

덕성여대 프로젝트 HI5 《그대로, 안녕》, 일상 속에서 서로의 안부를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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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대로, 안녕》, 나의 안녕에서 우리의 안녕으로 “안녕?”이라는 말은 참 익숙합니다. 누군가를 만날 때도, 헤어질 때도 쓰지만 원래 의미를 들여다보면 ‘아무 탈 없이 편안한 상태’를 묻는 말이기도 합니다. 덕성여자대학교 미술사학전공 프로젝트 HI5가 기획한 《그대로, 안녕》 은 이 짧은 인사에서 시작합니다. 나의 상태를 돌아보고, 타인의 안녕을 묻고, 마지막에는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안녕까지 생각하게 하는 전시입니다. 다섯 명의 학생 기획자가 만든 전시 이번 전시는 송새린, 이은영, 전민주, 전유현, 황경민 다섯 명의 덕성여대 미술사학전공 학부생 및 졸업생이 직접 기획했습니다. 작품을 고르는 일부터 전시 구성과 공간 연출, 스토리텔링, 교육과 홍보, 현장 운영까지 전 과정에 참여했습니다. 전시는 완성된 결과만 보는 자리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수많은 조사와 선택, 협업이 쌓여 하나의 공간이 만들어집니다. 《그대로, 안녕》은 그런 ‘전시를 만드는 과정’까지 함께 품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첫 번째 챕터 ‘나에게 안녕’ 첫 번째 장은 ‘나에게 안녕’ 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안부는 자주 묻지만 정작 자신의 상태를 살펴보는 일에는 익숙하지 않습니다. 잠시 멈춰 요즘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무엇 때문에 지쳤는지, 무엇이 나를 편안하게 하는지 돌아보는 시간입니다. 저도 바쁠 때는 “잘 지내고 있다”고 습관처럼 말하다가 어느 순간 내가 정말 괜찮은지 생각하게 될 때가 있는데요. 이 첫 번째 챕터는 그런 질문을 조용히 꺼내게 합니다. 두 번째 챕터 ‘그대에게 안녕’ 두 번째 장에서는 시선이 자신에게서 다른 사람으로 이동합니다. ‘그대에게 안녕’ 은 타인의 삶과 감정에 관심을 갖고 안부를 묻는 단계입니다. 같은 공간에서 살아도 사람마다 처한 상황과 감정은 다릅니다. 누군가는 즐거울 수 있고, 다른 누군가는 같은 날을 힘겹게 지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최근 누군가에게 의례적인 인사가 아니라 정말 마음을 담아 “잘 지...

《Will You Be My Penpal?》, 부산과 라이프치히가 작품으로 주고받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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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이터와 회화가 만나는 전시, 《Will You Be My Penpal?》 예전의 펜팔은 멀리 떨어진 사람에게 편지를 보내고 답장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일이었습니다. 지금은 메시지 하나가 몇 초 만에 지구 반대편으로 이동하지만, 서로의 생각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시간까지 짧아진 것은 아닙니다. 부산 사상구 일산수지 2층 에서 열리는 《Will You Be My Penpal?》은 독일 라이프치히와 부산을 연결하는 국제 교류 프로젝트입니다. 라이프치히 시각예술아카데미(HGB)와 동아대학교 현대미술학과 작가들이 직접 만나기 전에, 먼저 작품을 통해 서로에게 말을 건넵니다. 직접 만나기 전에 작품이 먼저 도착하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교류의 순서입니다. 참여 작가들이 실제로 만나는 시점은 내년 7월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작품의 데이터가 라이프치히에서 부산으로 이동합니다. 사람보다 작품이 먼저 여행을 시작하는 셈입니다. 그래서 이번 전시는 완성된 국제교류의 결과라기보다 앞으로 이어질 만남을 미리 보여주는 프리뷰 전시 에 가깝습니다. 편지 대신 디지털 신호를 주고받다 전시 제목은 그대로 해석하면 “내 펜팔이 되어줄래?”라는 질문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오가는 것은 종이에 쓴 문장이 아닙니다. 코드와 3D 스캐닝, AI 생성 비디오, 신체 데이터, 디지털 재구성처럼 동시대 미술에서 활용되는 다양한 시각 언어가 라이프치히에서 부산으로 전송됩니다. 파일과 명령어, 렌더링 데이터가 하나의 편지가 되는 것입니다. 저도 이 부분이 상당히 흥미롭게 느껴집니다. 예전에는 작품을 해외로 보내려면 실제 물체를 포장해야 했다면, 이제는 작품의 핵심 데이터가 먼저 이동하고 도착한 장소에서 다시 형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데이터는 부산에서 다시 ‘작품’이 된다 컴퓨터 안의 파일은 손으로 만질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부산에 도착한 데이터가 일산수지 공간에 설치되는 순간 상황이 달라집니다. 영상이 화면에 나타나고, 데이터가 구조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