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주련 《주련의 딱지: 시간을 접다》, 작은 딱지에 쌓인 기억의 풍경

  

노주련 《주련의 딱지: 시간을 접다》

어린 시절 종이를 네모나게 접어 친구들과 딱지치기를 했던 기억이 있으신가요. 그때는 손바닥만 한 놀이도구였지만 시간이 지나 다시 바라보면 유년의 친구와 골목, 그 시절의 감정까지 함께 떠오릅니다.

경남 양산 스페이스 나무 오로라 갤러리에서 열리는 **노주련 개인전 《주련의 딱지: 시간을 접다》**는 이 익숙한 딱지에서 시작합니다. 작가는 어린 시절의 ‘딱지 접기’를 하나의 조형언어로 확장하고, 접고 포개고 연결하는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기억과 시간의 흔적을 화면에 쌓아갑니다.




어린 시절의 놀이가 예술이 되다

딱지는 복잡한 재료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종이 한 장을 여러 번 접으면 작은 사각형이 완성됩니다. 하지만 노주련에게 중요한 것은 완성된 딱지 하나보다 접는 과정입니다.

종이를 접고 다시 포개는 동작이 반복될수록 그 안에는 실제 시간이 축적됩니다. 어릴 적 무심코 했던 놀이가 성인이 된 작가의 손에서는 기억을 저장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바뀝니다.

저도 오래된 물건을 다시 발견했을 때 사물 자체보다 그때 함께했던 사람이 먼저 떠오르는 경우가 있는데요. 딱지 역시 작은 종이 안에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품을 수 있습니다.


접는다는 것은 시간을 겹치는 일

종이를 한 번 접으면 보이던 면 일부가 안으로 들어갑니다.

또 접으면 다른 부분이 겹쳐지고 처음 펼쳐져 있던 모습은 더 이상 그대로 보이지 않습니다.

기억도 비슷합니다.

모든 일을 처음 모습 그대로 기억하지는 못합니다. 어떤 장면은 선명하게 남고, 다른 부분은 사라지거나 새로운 경험과 겹쳐집니다.

그래서 이번 전시에서 ‘접기’는 단순한 제작기법이 아니라 시간이 기억을 변화시키는 방식으로도 읽힙니다.


비단 딱지로 완성한 대작 《그린 그리움》

이번 전시에서 특히 주목할 작품은 **《그린 그리움》**입니다.

190×1,000cm에 이르는 대형 화면에 수많은 비단 딱지를 하나씩 접어 연결한 작품입니다. 작은 딱지 하나를 기억과 시간의 단위처럼 반복하고 쌓으면서 개인적인 기억을 거대한 풍경으로 확장합니다.

가까이에서는 각각의 딱지가 보이지만 몇 걸음 물러나면 수많은 조각이 하나의 화면으로 연결됩니다.

개인의 하루들이 모여 결국 한 사람의 삶이 되는 모습과도 닮았습니다.


왜 종이가 아니라 비단일까

비단은 일반 종이와 다른 물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빛에 따라 표면의 느낌이 달라지고, 부드러운 재료가 반복해서 겹쳐지면 색과 질감에도 깊이가 생깁니다.

특히 ‘딱지’라는 소박한 놀이의 형식과 비단이라는 재료가 만나면서 묘한 긴장이 생깁니다.

어린 시절의 평범한 놀이가 오랜 시간이 흐른 뒤 하나의 예술적 기억으로 다시 다뤄진다는 전시의 성격과도 잘 어울립니다.


반복은 같은 행동일까

수백 번, 수천 번 종이를 접는 일은 얼핏 똑같은 행동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완전히 같은 딱지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손의 힘과 접히는 방향, 재료의 상태에 따라 미세한 차이가 생깁니다.

그 차이들이 모여 하나의 큰 화면을 만듭니다.

여러분에게도 매일 반복하지만 하루하루 조금씩 다른 일이 있으신가요?

노주련의 딱지를 보다 보면 반복은 단순히 같은 일을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축적되는 과정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움’도 시간이 쌓여 만들어진다

작품 제목 《그린 그리움》도 오래 눈에 남습니다.

그리움은 현재에는 없는 무엇을 떠올릴 때 생기는 감정입니다. 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그리워지는 사람과 장소도 있습니다.

작가는 작은 딱지를 반복해서 연결하면서 사라진 시간을 실제로 만질 수 있는 형태에 가깝게 바꿉니다.

기억은 보이지 않지만 비단의 겹과 반복은 그 시간이 분명히 존재했다는 흔적을 남깁니다.


작은 딱지에서 거대한 풍경으로

《주련의 딱지: 시간을 접다》는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데만 머무르는 전시가 아닙니다.

하나의 기억이 어떻게 쌓이고 변하며, 시간이 흐른 뒤 새로운 형태로 돌아오는지를 보여줍니다.

작은 비단 딱지 하나는 아주 사적인 기억에서 출발하지만 수없이 연결되는 순간 많은 사람이 자신의 시간을 겹쳐볼 수 있는 하나의 풍경으로 확장됩니다.

전시장에서는 작품 전체부터 보기보다 딱지 하나를 가까이 살펴본 뒤 천천히 뒤로 물러서 보세요. 작은 기억들이 모여 전혀 다른 장면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더 선명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노주련 《주련의 딱지: 시간을 접다》 전시 정보

전시명: 《주련의 딱지: 시간을 접다》
작가: 노주련
전시 기간: 2026년 9월 20일~10월 1일
휴관일: 매주 화요일
전시 장소: 스페이스 나무 오로라 갤러리
주소: 경남 양산시 하북면 충렬로 1733
대표 작업: 《그린 그리움》
작품 규모: 약 190×1,000cm
주요 키워드: 딱지 접기, 비단, 기억, 시간, 반복,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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