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l You Be My Penpal?》, 부산과 라이프치히가 작품으로 주고받는 편지
데이터와 회화가 만나는 전시, 《Will You Be My Penpal?》
예전의 펜팔은 멀리 떨어진 사람에게 편지를 보내고 답장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일이었습니다. 지금은 메시지 하나가 몇 초 만에 지구 반대편으로 이동하지만, 서로의 생각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시간까지 짧아진 것은 아닙니다.
부산 사상구 일산수지 2층에서 열리는 《Will You Be My Penpal?》은 독일 라이프치히와 부산을 연결하는 국제 교류 프로젝트입니다. 라이프치히 시각예술아카데미(HGB)와 동아대학교 현대미술학과 작가들이 직접 만나기 전에, 먼저 작품을 통해 서로에게 말을 건넵니다.
직접 만나기 전에 작품이 먼저 도착하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교류의 순서입니다.
참여 작가들이 실제로 만나는 시점은 내년 7월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작품의 데이터가 라이프치히에서 부산으로 이동합니다.
사람보다 작품이 먼저 여행을 시작하는 셈입니다.
그래서 이번 전시는 완성된 국제교류의 결과라기보다 앞으로 이어질 만남을 미리 보여주는 프리뷰 전시에 가깝습니다.
편지 대신 디지털 신호를 주고받다
전시 제목은 그대로 해석하면 “내 펜팔이 되어줄래?”라는 질문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오가는 것은 종이에 쓴 문장이 아닙니다.
코드와 3D 스캐닝, AI 생성 비디오, 신체 데이터, 디지털 재구성처럼 동시대 미술에서 활용되는 다양한 시각 언어가 라이프치히에서 부산으로 전송됩니다.
파일과 명령어, 렌더링 데이터가 하나의 편지가 되는 것입니다.
저도 이 부분이 상당히 흥미롭게 느껴집니다. 예전에는 작품을 해외로 보내려면 실제 물체를 포장해야 했다면, 이제는 작품의 핵심 데이터가 먼저 이동하고 도착한 장소에서 다시 형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데이터는 부산에서 다시 ‘작품’이 된다
컴퓨터 안의 파일은 손으로 만질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부산에 도착한 데이터가 일산수지 공간에 설치되는 순간 상황이 달라집니다.
영상이 화면에 나타나고, 데이터가 구조물이나 이미지로 변하며 실제 공간을 점유하기 시작합니다.
비물질적인 데이터가 물질적인 전시 경험으로 바뀌는 과정 자체가 이번 전시의 중요한 관람 포인트입니다.
작품은 과연 파일일까요, 아니면 그 파일이 현실 공간에서 구현된 결과일까요? 이런 질문도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동아대학교 작가 5인은 회화로 답하다
독일 작가들이 디지털 기술을 중심으로 작품을 보낸다면 부산의 동아대학교 현대미술학과 작가들은 회화로 응답합니다.
권우재, 김서연, 김윤영, 예르몰라예바 빅토리야, 이서현이 참여합니다.
캔버스에는 실제 물감이 쌓이고 붓질의 흔적과 질감이 남습니다. 데이터처럼 순간적으로 복제하거나 전송하기 어려운 물리적인 무게가 존재하죠.
이 차이는 전시에서 매우 중요한 대비를 만듭니다.
한쪽에서는 비물질적인 데이터가 움직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캔버스라는 물질이 공간을 차지합니다.
AI와 3D 스캔 그리고 붓질이 만날 때
이번 전시에서는 새로운 기술과 전통적인 회화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우월한지 비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서로 다른 매체가 같은 공간에서 어떤 관계를 만드는지가 중요합니다.
AI 영상 옆에 회화가 놓일 수도 있고, 3D 데이터와 물감의 질감이 서로 전혀 다른 감각을 만들어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디지털 작품과 실제 캔버스를 볼 때 어느 쪽에서 더 강한 현실감을 느끼시나요?
화면 속 이미지가 더 생생할 수도 있고, 붓질과 물감이 남아 있는 회화에서 더 직접적인 감각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국경을 넘는 것은 작품만이 아니다
《Will You Be My Penpal?》은 단순히 독일 작품을 부산에서 소개하는 해외교류전과는 조금 다릅니다.
라이프치히의 작가들이 작품을 보내고 부산의 작가들이 이에 응답하면서 일종의 시각적 대화가 만들어집니다.
서로 다른 교육환경과 문화, 사용하는 매체가 작품을 통해 먼저 만나는 것입니다.
실제 만남 이전에 상대의 작업을 보고 이해하는 시간이 생긴다는 점에서 펜팔이라는 제목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오래된 공장 안에서 펼쳐지는 디지털 교류
전시장인 일산수지는 과거 플라스틱을 착색하고 재생하던 공장이었던 장소입니다.
산업 생산을 담당하던 공간 안에 AI와 3D 스캐닝, 디지털 영상과 회화가 들어온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오래된 물리적 공간과 최신 디지털 기술이 동시에 존재하면서 시간의 층이 만들어집니다.
작품만 보지 말고 전시장 벽과 구조, 설치된 디지털 작업이 어떤 관계를 만드는지도 함께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내년의 만남을 기다리는 첫 번째 편지
이번 전시는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가 아니라 앞으로 이어질 교류의 시작입니다.
작품 데이터가 먼저 이동하고, 부산에서 새로운 형태로 구현되며, 회화가 다시 응답합니다. 그리고 내년에는 작가들이 직접 만나게 됩니다.
《Will You Be My Penpal?》은 국경을 넘어 이동하는 데이터와 손으로 만들어진 회화를 통해 예술에서 ‘만난다’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하는 전시입니다.
관람할 때는 작품 하나의 의미만 찾기보다 서로 다른 작품 사이에 어떤 답장과 질문이 오가고 있는지 상상해보세요. 그러면 전시장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편지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Will You Be My Penpal?》 전시 정보
전시명: 《Will You Be My Penpal?》
전시 기간: 2026년 9월 5일~9월 27일
운영일: 금·토·일요일
관람 시간: 13:00~19:00
휴관: 월~목요일 / 9월 25~26일 별도 휴관
오프닝: 9월 5일 오후 6시
전시 장소: 일산수지 2층
주소: 부산 사상구 감전천로 58
기획: Snow Paik, 손창안
주최: 라이프치히 시각예술아카데미(HGB), 동아대학교, 일산수지
주요 참여: 권우재, 김서연, 김윤영, 예르몰라예바 빅토리야, 이서현 등 국내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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