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정 《Surface Trace》, 스마트폰 지문에서 발견한 낯선 얼굴들

 

《흔적에서 발견된 얼굴들》, 무심코 남긴 터치가 그림이 되다

스마트폰 화면을 끄고 비스듬히 바라보면 수많은 지문과 손자국이 보입니다. 대부분 닦아버리거나 신경 쓰지 않는 흔적이죠. 그런데 그 흔적을 오래 바라보다 얼굴이나 동물 같은 형상을 발견한다면 어떨까요?

강릉 소집 갤러리에서 열리는 고은정 개인전 **《Surface Trace : 흔적에서 발견된 얼굴들》**은 바로 이 사소한 발견에서 시작됩니다. 작가는 스마트폰을 터치하고 드래그하면서 남은 흔적 속에서 우연히 떠오르는 이미지를 찾아 하나의 그림으로 발전시킵니다.



지문과 터치 흔적이 작품의 출발점

고은정은 처음부터 특정한 얼굴이나 동물을 그리겠다고 계획하지 않습니다.

화면에 남겨진 지문과 손끝의 움직임을 천천히 관찰하다가 그 안에서 눈에 들어오는 형태를 발견합니다. 얼굴처럼 보이기도 하고, 동물이나 정체를 알 수 없는 생명체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후 발견한 형태를 자유롭게 스케치하고 반복해서 다듬으며 새로운 이미지로 확장합니다.


‘드래그림’이라는 재미있는 작업 방식

작가는 자신의 방식을 ‘드래그림’이라고 부릅니다.

스마트폰 화면을 움직이는 Drag(드래그)그림을 결합한 표현입니다.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는 행동에서 만들어진 흔적이 다시 손으로 그리는 이미지로 연결되는 셈입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거창한 기술로 결합하기보다 우리가 매일 반복하는 손동작에서 시작한다는 점이 재미있습니다.

저도 스마트폰 화면의 얼룩을 보면 먼저 닦아야겠다는 생각부터 하는데요. 고은정은 오히려 남들이 지우려는 흔적을 오래 들여다봅니다. 같은 흔적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그릴까’가 아니다

이번 작업을 이해하는 핵심은 발견입니다.

일반적인 그림에서는 무엇을 그릴 것인지 먼저 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은정은 반대 방향에서 출발합니다. 이미 존재하는 흔적 속에서 무엇이 보이는지를 기다립니다.

그래서 우연도 작업의 중요한 일부가 됩니다.

같은 터치 자국도 누군가는 단순한 얼룩으로 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웃는 얼굴이나 상상의 생물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보고 싶은 것을 발견한다

구름을 바라보다 동물이나 사람의 얼굴을 찾아본 경험이 있으신가요?

실제로는 불규칙한 형태일 뿐이지만 우리의 눈과 뇌는 익숙한 이미지를 끊임없이 찾아냅니다. 벽의 얼룩이나 나뭇결에서도 얼굴을 발견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Surface Trace》는 이런 인간의 시각적 상상력을 일상의 디지털 환경으로 가져옵니다.

여러분이라면 같은 스마트폰 흔적에서 어떤 이미지를 발견하실까요?


사라질 흔적을 붙잡는 그림

스마트폰의 지문은 오래 남지 않습니다.

화면을 닦으면 사라지고, 다시 사용하면 또 다른 흔적이 겹쳐집니다. 그래서 작품의 출발점이 되는 이미지는 아주 일시적입니다.

고은정은 그렇게 곧 사라질 흔적을 바라보고 그 안에서 형상을 발견한 뒤 그림으로 기록합니다.

사라질 얼룩이 하나의 작품으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평범한 일상에도 이미지가 숨어 있다

《Surface Trace》가 흥미로운 이유는 특별한 장소나 거대한 소재가 필요하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작은 화면, 무심코 움직이는 손끝, 지워버리는 흔적에서도 새로운 이미지가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작가는 이를 통해 반복되는 일상에도 우리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건넵니다.

그림은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일만이 아니라 이미 눈앞에 존재하지만 보지 못했던 것을 발견하는 데서 시작될 수도 있습니다.

이번 전시를 보고 나온 뒤 스마트폰 화면이나 낡은 벽, 길 위의 흔적을 한번 천천히 바라보세요. 평소라면 지나쳤을 얼굴 하나가 불쑥 나타날지도 모릅니다.


고은정 《Surface Trace》 전시 정보

전시명: 《Surface Trace : 흔적에서 발견된 얼굴들》
작가: 고은정
전시 기간: 2026년 9월 11일~9월 27일
관람 시간: 수~일요일 12:00~18:00
휴관일: 월요일·화요일
관람료: 무료
전시 장소: 강릉 소집 갤러리
주소: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공항길30번길 5
고은정 작가 만나는 날: 9월 27일 오후 1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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