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존 Remnants》, 사라진 뒤 남겨진 흔적을 사진으로 읽다
《잔존 Remnants》, 사라진 뒤 남겨진 흔적을 사진으로 읽다
무언가 사라졌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함께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이 떠난 자리에는 흔적이 남고, 오랫동안 사용했던 공간에는 이전의 기능을 짐작하게 하는 선과 자국이 남습니다.
인천문화예술회관 미추홀전시실에서 열리는 《잔존(殘存, Remnants)》은 바로 ‘사라진 뒤 무엇이 남는가’를 사진으로 바라보는 전시입니다. 한국미학사진연구회의 첫 회원전으로, 18명의 사진가가 서로 다른 장소와 시간에서 포착한 이미지를 일곱 개의 시선으로 연결합니다.
사라진 것을 직접 보여주지 않는 사진
이번 전시는 사라진 대상을 다시 복원해 보여주는 방식과 거리를 둡니다.
대신 발자국과 반사광, 그림자, 비어 있는 건축물, 눈이나 모래 위에 남은 자국처럼 대상이 떠난 뒤 존재하는 단서를 바라봅니다.
사진 속에는 사람이 없지만 사람이 있었음을 느낄 수 있고, 어떤 사건이 직접 등장하지 않아도 이미 무언가 지나갔음을 짐작하게 됩니다.
저도 빈 의자나 오래된 벽을 찍은 사진을 볼 때 실제 인물이 등장하는 사진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상상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부분을 관람자가 채우기 때문입니다.
물리적·구조적·감각적으로 남는 것들
《잔존》은 흔적을 크게 세 가지 층으로 바라봅니다.
표면에 직접 남겨진 자국 같은 물리적 잔존, 본래 기능을 잃은 공간에서 드러나는 구조적 잔존, 그리고 안개나 빛, 수면의 파문처럼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는 감각적 잔존입니다.
특히 사진은 몇 초 뒤면 사라질 장면까지 붙잡을 수 있습니다.
눈앞에서는 순간이었던 것이 사진 안에서는 계속 머문다는 점에서 ‘잔존’이라는 주제와 사진 매체가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작가별 전시가 아닌 일곱 개의 시선
전시 구성도 일반적인 회원전과 조금 다릅니다.
작가 한 명의 작품을 한 구역에 모으는 대신 색채, 형태, 그림자, 경계, 어둠, 자연, 인간의 척도를 기준으로 작품을 다시 엮었습니다.
‘색채가 발언하는 공간’에서 시작해 ‘건축의 순수 형태’, ‘그림자가 피사체다.’, ‘이중 레이어/경계’, ‘어둠 속의 사물’, ‘자연의 미니멀리즘’, ‘공간과 인간 척도’로 이어집니다.
서로 다른 사진가의 이미지가 이웃하면서 이전에는 없던 관계가 생기는 구조입니다.
그림자도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사진을 볼 때 보통 “무엇을 찍었을까”를 먼저 찾습니다.
하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질문을 바꿔볼 필요가 있습니다.
물체보다 그림자가 중요할 수도 있고, 건물보다 그 안의 빈 공간이 더 강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사람보다 사람이 사라진 이후의 흔적이 사진의 중심이 되기도 합니다.
여러분이라면 텅 빈 장소를 보며 무엇이 있었을지 상상하시나요?
《잔존》에서는 바로 그 상상의 여백이 중요한 감상 지점이 됩니다.
사진과 사진 사이를 읽는 전시
18명의 사진은 독립적인 작품이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사진 사이의 관계도 중요합니다.
앞의 이미지에서 발견한 선이 다음 사진의 경계와 이어지고, 한 사진의 어둠이 다른 사진의 빛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작품을 한 점씩 빠르게 보기보다 앞뒤 사진을 함께 바라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잔존》은 사라진 것을 애써 되돌리는 전시가 아니라, 사라짐 이후에도 남아 있는 흔적을 통해 보이지 않는 시간과 존재를 읽어보는 사진전입니다.
사진에서 한 걸음 더, 공개 학술 세미나
전시 기간에는 사진에 관심 있는 관람객을 위한 프로그램도 마련됩니다.
9월 5일 오후 1시 인천문화예술회관 회의장에서는 〈개념 사진과 포스트포토그래피의 의미와 방법론〉을 주제로 공개 학술 세미나가 진행됩니다. 작품 감상을 넘어 동시대 사진의 개념과 제작 방식까지 함께 살펴볼 수 있는 자리입니다.
《잔존(殘存, Remnants)》 전시 정보
전시 기간: 2026년 9월 4일~9월 10일
관람 시간: 10:00~18:00
전시 장소: 인천문화예술회관 미추홀전시실
관람료: 무료
관람 연령: 전 연령
주최: 한국미학사진연구회
참여 작가: 강환산, 김상희, 김종옥, 김주일, 노국진, 박진경, 박철현, 방극두, 서순희, 신연태, 이상설, 이수정, 이재등, 이현진, 정기화, 정현숙, 지선규, 최옥희
기획: 채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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