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호준 《생기(生ː器)_재형의 유희》

 

윤호준 《생기(生ː器)_재형의 유희》, 전통 도자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다

청자와 백자, 분청사기는 흔히 박물관 안의 완결된 유물처럼 바라보게 됩니다. 형태도 문양도 이미 정해진 전통이라고 생각하기 쉽죠.

서울 북촌 CN갤러리에서 열리는 윤호준 개인전 《생기(生ː器)_재형의 유희》는 바로 그 익숙함을 흔듭니다. 작가는 전통 도자를 그대로 복원하는 대신 문양을 밖으로 꺼내고, 그릇을 나누고 다시 결합하며 정지했던 기물에 새로운 사건을 만들어냅니다. 




전통 도자는 완성된 과거일까

윤호준에게 전통 도자는 따라 그려야 할 정답이 아닙니다.

이미 완성된 청자와 백자의 형태 안에 아직 발견하지 못한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과거의 형식을 지키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안에 작은 변화와 유희를 개입시킵니다.

익숙한 도자를 다시 보게 만드는 것. 그것이 이번 전시의 중요한 출발점입니다. 


백자에서 문양이 밖으로 탈출하다

대표적인 변화는 백자에서 선명하게 나타납니다.

《백자청화탈호작대치문호》에서는 항아리 표면에 머물던 호랑이와 까치가 평면 문양의 자리를 벗어나 실제 공간으로 몸을 내밉니다.

흥미로운 점은 빠져나간 흔적까지 남겨놓는다는 것입니다. 문양은 장식에서 입체적인 존재로 바뀌고, 항아리 주변에 하나의 장면을 만들어냅니다. 

저도 이런 작업을 보면 먼저 웃음이 나옵니다. 박물관에서 조용히 바라보던 도자 속 동물이 정말 밖으로 걸어 나온 것 같은 상상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청자에는 움직임과 이야기를 넣다

청자에서는 방식이 조금 달라집니다.

《보주를 찾아서》의 사자는 향로를 받치는 장식에 머물지 않고 잃어버린 보주를 찾아 움직입니다. 《신안사자향로보주기》에서는 사자와 향로의 발, 보주가 서로 관계를 맺으면서 하나의 짧은 이야기를 만듭니다. 

정적인 도자에 ‘행동’이 생긴 것입니다.

여러분은 오래된 도자에서 이런 유머와 움직임을 예상하셨나요? 자세히 볼수록 작은 부분에 숨겨놓은 장난이 눈에 들어옵니다.


분청은 해체하고 다시 조립한다

분청 작업에서는 변화가 한층 적극적입니다.

《분청사기탈철화어문병》에서는 물고기가 병의 표면을 벗어나고, 다른 작품에서는 병의 위아래가 분리돼 다시 맞물리면서 전혀 새로운 구조로 변합니다.

윤호준은 문양의 선을 따라 기존 형태를 해체하고 다시 연결합니다. 이를 통해 전통 기형을 변형하는 수준을 넘어 형태와 문양의 관계 자체를 새롭게 조직합니다. 


‘재형’은 다시 만드는 일

전시 제목의 재형(再形)은 기존의 도자를 단순히 부수는 의미와는 다릅니다.

이미 익숙한 형을 다시 보고, 분리하고, 관계를 바꾸어 새로운 형태로 작동하게 만드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백자에서는 문양이 탈출하고, 청자에서는 형상에 행동이 생기며, 분청에서는 기형 자체가 나뉘고 다시 조립됩니다.

같은 전통 도자라도 서로 다른 방식의 놀이가 적용되는 셈입니다. 


‘생기(生器)’는 살아 움직이는 그릇

‘생기’라는 제목도 흥미롭습니다.

여기서 살아 있다는 것은 도자가 생명체를 닮았다는 뜻만은 아닙니다. 오래된 그릇에 새로운 쓰임과 움직임, 사건을 부여해 현재의 감각 속에서 다시 작동하게 만든다는 의미에 가깝습니다. 

완결된 유물로 바라봤던 도자가 다시 열려 있는 형태로 바뀌는 것입니다.


전통을 지키는 또 다른 방법

전통을 이어간다고 하면 원형을 정확하게 복원하는 방식부터 떠올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윤호준은 다른 길을 선택합니다. 오래된 형과 문양을 충분히 이해한 뒤 일부러 움직이고, 분리하고, 장난을 겁니다.

《생기(生ː器)_재형의 유희》는 전통을 과거에 고정하지 않고 지금의 감각으로 다시 작동시키는 도예 전시입니다.

전시장에서는 멀리서 전체 형태를 본 뒤 가까이 다가가 문양과 동물의 작은 움직임을 찾아보세요.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숨어 있던 유머를 발견하는 재미가 꽤 큽니다.


윤호준 《생기(生ː器)_재형의 유희》 전시 정보

전시명: 《생기(生ː器)_재형의 유희》
작가: 윤호준
전시 기간: 2026년 9월 2일~9월 13일
관람 시간: 10:00~18:00
휴관일: 월요일 및 공휴일
전시 장소: CN갤러리
주소: 서울 종로구 북촌로5길 56-7
초대 행사: 9월 3일 18:00~21:00
프로그램: 도슨트, 케이터링, 국악 앙상블 공연
예약 및 입장료: 별도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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