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안용 《추억의 지층》, 사라지는 부산의 시간을 다시 세우다
《추억의 지층》, 사라진 얼굴과 장소를 사진으로 다시 기억하는 방법
도시는 계속 변합니다. 익숙했던 가게가 사라지고, 함께 걷던 사람이 떠나며, 어느 순간 골목의 표정까지 달라집니다. 그런데 그렇게 사라진 시간은 누가 기억하게 될까요?
부산 초량 낭만시간연구소에서 열리는 정안용 개인전 **《추억의 지층》**은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작가는 부산의 소멸 위기 지역을 직접 걸으며 과거 사진을 현재의 빈집과 쇠락한 거리 위에 다시 세우고, 그 장면을 다시 사진으로 기록합니다. 단순한 복원이 아니라 사라진 시간에 최소한의 존엄을 부여하는 작업입니다.
장전동에서 시작된 질문
정안용의 작업은 2022년 장전동 패션거리가 비어가는 모습을 바라본 경험에서 출발합니다.
익숙한 얼굴들이 하나둘 부산을 떠나고, 친구들이 남긴 빈자리가 도시의 변화와 겹쳐 보였습니다.
한때 사람들로 북적였던 거리가 점점 비어가는 모습은 단순한 상권의 변화가 아니라 한 세대의 기억이 사라지는 장면처럼 느껴졌을 것입니다.
저도 예전에 자주 가던 동네가 재개발이나 폐업으로 완전히 달라졌을 때, 장소보다 그곳에서 보냈던 시간이 먼저 떠오른 적이 있습니다. 도시의 변화는 결국 개인의 기억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2026년, 부산의 소멸 위기 지역을 다시 걷다
4년이 지난 2026년 2월, 정안용은 다시 부산의 여러 지역을 직접 걸었습니다.
영도와 동구, 서구, 중앙동 등 변화 속도가 빠르거나 소멸 위기에 놓인 지역을 찾아 과거와 현재의 풍경을 비교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유명한 장소를 기록하는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는 빈집과 골목, 사라져가는 생활의 흔적에 시선을 둡니다.
과거 사진을 현재의 장소에 다시 세우다
작가의 방식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먼저 과거의 자료와 사진을 조사하고, 그 장소를 직접 찾아갑니다. 그리고 예전 사진을 현재의 빈집이나 거리 앞에 다시 세운 뒤 그 장면 전체를 다시 촬영합니다.
즉, 역사 고증 → 현장 촬영 → 재-사진화의 과정을 거칩니다.
한 장의 오래된 사진이 현재의 공간 안으로 들어오면서 과거와 현재가 한 화면에 동시에 존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복원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적 사료’
정안용은 과거를 완벽하게 재현하려 하지 않습니다.
사라진 건물을 새것처럼 복원하거나 옛 풍경을 그대로 되살리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대신 “이곳에 누군가 살았고, 이런 시간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남깁니다.
그래서 작품은 예술사진이면서 동시에 미래를 위한 시각적 사료가 됩니다.
지금은 흔한 골목과 빈집처럼 보여도 수십 년 뒤에는 그 사진이 도시의 중요한 기록이 될 수 있습니다.
왜 제목은 ‘추억의 지층’일까
지층은 오랜 시간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집니다.
도시도 비슷합니다.
새 건물이 들어서고 오래된 집이 사라지더라도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기억과 흔적까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정안용은 이번 작업을 통해 만들어진 이미지 하나하나가 새로운 지층이 되어 미래 세대에게 지금의 시간을 증명하길 바랍니다.
사진 한 장이 사라진 과거 위에 또 하나의 기억층을 쌓는 셈입니다.
‘탈부산’과 개인의 빈자리
이번 전시에서는 부산을 떠나는 사람들의 문제도 중요한 배경이 됩니다.
익숙한 얼굴이 사라지고, 사람이 빠져나간 자리는 건물과 거리의 변화로 이어집니다.
도시 소멸은 단순한 인구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와 기억, 생활문화가 함께 줄어드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에게도 사람이 떠난 뒤 전혀 다른 장소처럼 느껴졌던 동네가 있으신가요?
같은 건물이 남아 있어도 함께했던 사람이 없으면 공간의 의미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미지와 영상으로 남기는 도시의 현재
이번 전시에서는 사진뿐 아니라 영상도 함께 활용됩니다.
정지된 사진이 한 순간을 붙잡는다면 영상은 도시를 걷는 시간과 변화의 흐름을 조금 더 직접적으로 보여줄 수 있습니다.
두 매체가 함께 놓이면서 부산의 현재 모습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변화 중인 시간의 기록으로 읽힙니다.
작품을 볼 때는 오래된 사진 속 배경과 현재 공간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비교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사라진 뒤에도 남겨야 할 것
《추억의 지층》은 사라지는 도시를 낭만적으로 바라보는 전시가 아닙니다.
오히려 변화하는 삶의 터전을 직접 걷고, 조사하고, 다시 촬영하면서 잊히기 쉬운 시간에 구체적인 흔적을 남깁니다.
정안용의 작업은 과거를 되돌리는 일이 아니라 사라진 것들이 완전히 잊히지 않도록 새로운 기억의 층을 만드는 일입니다.
전시장을 찾는다면 사진 속 빈집과 골목만 보지 말고 그 공간에 예전에 어떤 사람이 있었을지 상상해보세요. 작품이 단순한 도시 풍경을 넘어 훨씬 깊은 기억의 기록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정안용 《추억의 지층》 전시 정보
전시명: 《추억의 지층》
작가: 정안용
전시 기간: 2026년 9월 5일~9월 27일
관람 시간: 10:30~18:30
휴관일: 없음
오프닝: 2026년 9월 5일 오후 4시
전시 장소: 낭만시간연구소
주소: 부산 동구 초량로 79-6, 1층
기획: 낭만시간연구소
영상: RIVERUNS
주관: 부산광역시, 부산경제진흥원
연계: ‘다면적실험실, 부산’ 동구 기획전 《내가 발을 딛고 선 이곳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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