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환민 《Transcribed Breath》, 숨결이 사라진 자리에 무늬가 남다
진환민 《Transcribed Breath》, 숨결이 사라진 자리에 무늬가 남다
숨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들이마시고 내쉬는 순간 분명 존재하지만 곧 사라지고, 그 자리에 형태도 남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사라지는 숨을 도자기 표면에 붙잡아 둘 수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진환민 개인전 《Transcribed Breath》**는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작가는 청색 안료를 섞은 비눗방울에 직접 숨을 불어넣고, 거품이 터지면서 만들어내는 불규칙한 흔적을 도자기와 회화에 남깁니다. 전시는 2026년 8월 20일부터 9월 5일까지 서울 마포구 AOD뮤지엄에서 열립니다.
숨을 하나의 재료로 사용하다
진환민의 작업에서 가장 독특한 재료는 흙이나 안료만이 아닙니다.
바로 작가 자신의 숨입니다.
작가는 비눗방울을 만들어 도자기 표면에 불어냅니다. 거품은 잠시 부풀었다가 터지지만, 청화 안료는 표면에 원형과 얼룩, 겹쳐진 흔적을 남깁니다. 하나하나의 결과는 미리 정확하게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손으로 붓질해 그리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입니다. 작가가 시작은 통제하지만 마지막 형태는 재료와 우연에 맡기는 셈입니다.
천식의 기억에서 시작된 ‘호흡’
진환민에게 호흡은 단순한 조형 아이디어가 아닙니다.
어린 시절 천식을 경험하면서 그는 다른 사람에게는 무의식적인 호흡을 자신의 몸 상태를 확인하는 감각으로 인식하게 됐습니다. 숨이 원활하지 않은 순간을 반복해서 경험하면서 ‘내가 지금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게 됐고, 이 기억이 작업의 중요한 출발점이 됐습니다.
저도 그의 작업을 처음 보면 비눗방울의 시각적인 재미가 먼저 눈에 들어오지만, 이런 배경을 알고 다시 보면 작은 거품 하나가 전혀 다르게 느껴집니다.
숨을 한 번 내쉬는 행위 자체가 존재를 확인하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비눗방울은 왜 중요한가
비눗방울은 숨이 가장 직접적으로 형태를 얻는 순간입니다.
입에서 나온 공기가 얇은 막을 밀어내면서 둥근 형태가 만들어집니다. 그러나 그 존재는 아주 짧습니다. 조금만 지나도 터지고 사라집니다.
진환민은 바로 이 생성과 소멸이 동시에 존재하는 상태에 주목합니다.
일반적인 비눗방울은 터지면 흔적이 거의 남지 않지만, 그의 작품에서는 오히려 터지는 순간 새로운 무늬가 만들어집니다. 사라짐이 작품의 끝이 아니라 또 다른 형상의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전통 포도문이 비눗방울로 다시 태어나다
진환민의 대표적인 작업 가운데 ‘청화백자 거품포도문’ 연작이 있습니다.
한국 도자기에서 포도문은 오랫동안 사용돼온 친숙한 전통 문양입니다. 하지만 작가는 붓으로 포도송이를 정교하게 그리는 대신 청화 안료를 섞은 비눗방울의 흔적을 모아 포도와 같은 형상을 만들어냅니다.
전통적인 청화백자의 색과 문양은 유지하면서 제작 방식은 완전히 현대적으로 바뀐 셈입니다.
여러분은 일정하게 그려진 포도문과 우연히 터진 거품이 만든 포도문 가운데 어느 쪽에서 더 생명력을 느끼시나요?
달항아리도 완벽한 원형일 필요가 없다
작가의 관심은 표면의 무늬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달항아리 역시 그의 작업에서 중요한 형태로 등장합니다. 하지만 완벽하게 좌우 대칭을 이루는 항아리보다 기울거나 조금 뒤틀린 형태도 받아들입니다.
작가는 잘 부풀지 않은 비눗방울이나 터져 흐른 흔적을 제거하지 않는 것처럼, 제작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완전성을 작업 안에 남깁니다.
이러한 태도는 작품을 ‘완벽하게 만들어진 물건’보다 생성되는 과정의 기록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실패한 흔적도 작품이 된다
비눗방울을 원하는 위치에 똑같은 크기로 만들어내는 것은 어렵습니다.
어떤 거품은 예상보다 크게 부풀고, 어떤 것은 바로 터집니다. 안료가 아래로 흘러내리기도 합니다.
보통 제작 과정에서는 이런 흔적을 실패로 보고 지워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환민은 제거하지 않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결과까지 작품의 일부로 받아들이면서 작가의 통제와 재료의 우연성이 하나의 화면에서 공존하게 합니다.
이 부분은 진짜 흥미롭습니다. 작품을 자세히 볼수록 규칙적인 패턴처럼 보였던 표면이 사실은 서로 전혀 다른 사건들이 모여 만들어졌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Transcribed Breath》, 숨을 옮겨 적는다는 의미
전시 제목 ‘Transcribed Breath’를 직역하면 ‘옮겨 적힌 숨’ 정도로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말을 받아 적듯 작가는 자신의 호흡을 도자기 표면에 기록합니다.
다만 글자나 문장으로 기록하는 대신 거품의 크기와 형태, 터진 흔적과 번진 안료가 숨을 대신합니다.
그래서 작품 하나하나는 일종의 호흡 기록처럼 볼 수도 있습니다.
똑같은 숨이 존재하지 않듯 완전히 동일한 무늬도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도자기에서 회화와 설치로 확장되는 숨
진환민의 작업은 전통 도자기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그는 비눗방울의 흔적을 캔버스에 적용한 혼합매체 작업과 설치 작품도 함께 진행해왔습니다. 비석의 비문을 대신해 거품의 흔적을 배치하는 작업처럼, ‘사라진 존재가 어떤 흔적을 남기는가’라는 질문을 다른 매체로 확장하기도 합니다.
전통적인 도예 기술을 기반으로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회화와 조각, 설치의 경계까지 자연스럽게 넘어갑니다.
사라진 숨은 정말 사라진 것일까
《Transcribed Breath》에서 중요한 것은 비눗방울 자체가 아닙니다.
비눗방울은 결국 사라집니다. 하지만 그것이 만든 흔적은 도자기 표면에 남습니다.
진환민은 사라짐을 ‘없어짐’으로 끝내지 않고, 존재했던 것이 다른 형태로 영향을 계속 남길 수 있다는 가능성으로 바라봅니다.
그래서 이번 전시에서는 완성된 문양만 보기보다 거품 하나가 만들어지고 터졌을 순간을 상상해보면 좋습니다.
그 순간 보이지 않던 숨이 잠깐 형태를 얻고, 사라진 뒤에는 하나의 무늬가 됩니다. 전시 제목처럼 숨이 표면 위에 ‘옮겨 적힌’ 순간입니다.
진환민 《Transcribed Breath》 전시 정보
전시명: 《Transcribed Breath》
작가: 진환민 JIN HWAN MIN
전시 기간: 2026년 8월 20일~9월 5일
전시 장소: AOD Museum
지역: 서울 마포
오프닝 리셉션: 2026년 8월 20일 17:00~19:00
주요 키워드: 호흡, 비눗방울, 청화백자, 달항아리, 생성과 소멸,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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