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섭 《The same place, Another space》, 같은 도시를 다르게 바라보는 법

 

《The same place, Another space》, 여행의 기억을 장지와 분채로 그리다

같은 거리를 걸어도 누구에게나 똑같은 풍경으로 남지는 않습니다. 누군가는 건물의 형태를 기억하고, 다른 사람은 햇빛이 내려앉던 골목이나 창문 하나를 오래 기억하기도 합니다.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H. art LAB에서 열리는 강병섭 개인전 《The same place, Another space》는 바로 이런 시선의 차이에서 출발합니다. 작가는 여행 중 마주한 도시를 장지와 분채로 다시 그리며 현실에 존재하는 장소를 자신만의 또 다른 공간으로 바꿔놓습니다.



같은 장소인데 왜 다르게 보일까

전시 제목을 그대로 옮기면 ‘같은 장소, 또 다른 공간’입니다.

장소가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위치라면 공간은 그곳을 경험하는 사람의 기억과 감정까지 포함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같은 카페에 앉아 있어도 한 사람에게는 즐거운 여행의 기억이 되고, 다른 사람에게는 평범한 오후로 지나갈 수 있습니다.

강병섭은 바로 이 차이에 관심을 둡니다. 도시를 객관적으로 기록하기보다 자신의 경험과 시선을 거쳐 새로운 풍경으로 바꿉니다.


여행에서 만난 도시가 회화가 되기까지

강병섭의 작업에는 여행에서 마주한 도시 풍경이 중요한 출발점으로 등장합니다.

여행을 하면 평소라면 무심하게 지나쳤을 건물과 거리도 유난히 자세하게 바라보게 됩니다.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작은 간판이나 창문, 건축물의 색까지 눈에 들어오죠.

저도 낯선 도시에서는 평범한 골목을 오래 바라보게 되는데요. 돌아온 뒤 사진을 보면 유명 관광지보다 그런 장면이 더 선명하게 기억될 때가 있습니다.

강병섭의 회화 역시 이런 여행자의 시선을 품고 있습니다.


장지와 분채가 만드는 따뜻한 색

작가는 장지에 분채를 여러 겹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화면을 완성합니다.

장지는 한국화에서 널리 사용하는 질긴 한지이고, 분채는 안료를 곱게 만들어 사용하는 전통적인 채색 재료입니다.

한 번에 강한 색을 만드는 대신 안료를 겹쳐 올리면서 깊이와 부드러운 색감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강병섭의 도시 풍경은 차갑고 복잡한 현대 도시의 인상보다 밝고 따뜻하게 다가옵니다.


현실 그대로가 아닌 ‘기억 속 도시’

도시를 그린다고 해서 실제 건물의 위치와 구조를 정확하게 복제하는 것은 아닙니다.

작가의 화면에는 현실에서 보았던 풍경과 기억, 그리고 상상이 함께 들어갑니다.

이 과정에서 실제 도시는 조금씩 변형됩니다.

어떤 부분은 더 강조되고, 필요하지 않은 요소는 사라지며, 색도 실제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화면에는 현실과 이상 사이에 존재하는 새로운 도시가 만들어집니다.


익숙한 건물에 낯선 감각을 더하다

도시 생활을 오래 하면 건물은 점점 배경처럼 느껴집니다.

출근길에 매일 지나치는 건물의 창문이 몇 개인지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회화 속에서 다시 만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작가가 특정한 구도를 선택하고 색을 다시 입히는 순간 평범했던 건물이 하나의 주인공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자주 지나면서 한 번도 자세하게 바라보지 않았던 건물이 있으신가요? 이번 전시를 보고 나오면 익숙한 거리의 모습이 조금 달라 보일지도 모릅니다.


여행은 새로운 장소보다 새로운 시선을 남긴다

우리는 여행을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강병섭의 작업을 따라가다 보면 여행의 의미를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먼 곳을 갔는지가 아니라 그곳에서 평소와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봤다는 사실일 수 있습니다.

그 경험을 다시 일상에 가져오면 매일 보던 도시에서도 이전과 다른 장면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백화점 속에서 만나는 도시 풍경

이번 전시는 일반적인 미술관이나 갤러리가 아니라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H. art LAB 8층에서 열립니다.

쇼핑과 식사, 이동이 이어지는 일상적인 공간에서 도시를 주제로 한 작품을 만난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전시장 밖으로 나오면 다시 실제 서울의 도심 풍경이 펼쳐집니다.

작품 속 도시를 보고 난 뒤 현실의 건물과 거리까지 이어서 바라보면 전시 제목의 의미가 더욱 자연스럽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일상에서도 ‘Another space’를 발견하는 방법

《The same place, Another space》는 멀리 떠나야 새로운 풍경을 만날 수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미 존재하는 장소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느냐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강병섭은 장지와 분채를 통해 익숙한 도시를 다시 바라보고, 현실과 기억 사이에 자신만의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냅니다.

전시를 본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는 스마트폰을 잠시 내려놓고 주변 건물과 하늘, 창문의 색을 한번 바라보세요. 매일 지나던 길에서도 자신만의 ‘Another space’를 발견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강병섭 《The same place, Another space》 전시 정보

전시명: 《The same place, Another space》
작가: 강병섭
전시 기간: 2026년 9월 1일~11월 2일
관람 시간: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운영시간에 따름
전시 장소: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H. art LAB 8F
주소: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517, 8층
전시 분야: 회화
주요 재료: 장지, 분채
기획·문의: HEDWIG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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