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세잔(Paul Cézanne, 1839~1906)
폴 세잔, 자연을 형태로 다시 세워 현대미술의 문을 연 화가
탁자 위에 놓인 사과와 접시, 멀리 보이는 산과 나무. 소재만 보면 특별할 것이 없다. 그런데 폴 세잔의 그림에서는 탁자가 기울고 그릇의 시점이 조금씩 어긋나며, 산과 나무는 단단한 색면처럼 쌓여간다.
폴 세잔(Paul Cézanne, 1839~1906)은 인상주의에서 출발해 자신만의 구조적인 회화를 발전시킨 프랑스 화가다. 자연을 단순히 눈에 보이는 대로 재현하기보다 색과 형태로 다시 구성했고, 이러한 실험은 훗날 입체주의와 20세기 현대미술에 중요한 영향을 주었다.
엑상프로방스에서 시작된 화가의 길
세잔은 1839년 프랑스 남부 엑상프로방스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작가 에밀 졸라와 가까운 친구로 지냈고, 아버지의 뜻에 따라 법학을 공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그림을 선택해 파리로 향했다.
초기 작품은 어둡고 두꺼운 물감, 격렬한 붓질이 특징이었다. 훗날 우리가 알고 있는 차분하고 구조적인 세잔의 그림과는 꽤 다른 모습이다.
피사로를 만나 인상주의를 배우다
세잔에게 중요한 변화는 카미유 피사로와의 만남에서 시작됐다.
피사로와 함께 야외에서 작업하면서 화면이 밝아졌고 자연의 빛과 색을 직접 관찰하기 시작했다. 1870년대에는 인상주의 전시에도 참여했다.
하지만 세잔은 순간적으로 변하는 빛만을 기록하는 데 만족하지 않았다.
빛이 바뀌어도 사물에는 변하지 않는 무게와 구조가 있다고 생각했고, 자연 속에서 더 단단하고 지속적인 질서를 찾으려 했다. 오르세미술관 역시 세잔이 인상주의를 넘어 공간과 형태를 새롭게 다루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사과 몇 개로 회화를 바꾸다
세잔을 이야기할 때 사과 정물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오랜 기간 사과와 접시, 병, 천이 놓인 정물을 반복해서 그렸다. MoMA는 세잔이 약 40년에 걸쳐 200점가량의 정물화를 제작했다고 소개한다.
그런데 그림을 자세히 보면 이상한 부분이 발견된다.
탁자의 한쪽과 다른 쪽이 서로 다른 각도로 보이고, 접시도 정확한 원근법에 맞지 않는다. 세잔은 하나의 고정된 위치에서 본 장면을 그대로 그리기보다 대상을 바라보며 경험한 여러 시점을 한 화면 안에 결합했다.
저도 세잔의 정물을 볼 때 처음에는 왜 탁자가 비뚤어졌는지부터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오래 보면 그 불안정함이 오히려 사과 하나하나를 더 단단하게 느끼게 한다.
색으로 형태를 만드는 방법
세잔의 그림에서는 검은 윤곽선을 사용해 물체를 분리하기보다 색의 차이로 형태를 만든다.
푸른색 옆에 초록을 놓고, 노랑과 붉은색을 겹치면서 사과와 나무, 산의 부피를 만들어간다.
짧고 반복적인 붓질도 중요하다. 작은 색면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대상이 화면 속에서 단단한 구조를 갖게 된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가까이에서 보면 작은 색의 조각처럼 보이고, 몇 걸음 물러나면 하나의 풍경이나 사물로 연결된다.
《생트빅투아르산》, 같은 산을 계속 그린 이유
세잔의 고향 엑상프로방스 주변에는 생트빅투아르산(Mont Sainte-Victoire)이 있다.
그는 이 산을 여러 장소와 계절, 시점에서 반복해서 그렸다. 오르세미술관도 생트빅투아르산을 세잔의 고향 프로방스와 연결된 대표적인 반복 모티프로 설명한다.
그가 관심을 가진 것은 아름다운 산의 모습만이 아니었다.
산과 나무, 집과 하늘이 어떤 형태로 연결되는지 관찰하면서 자연을 하나의 구조로 다시 조직했다. 후기 작품에서는 형태가 점차 단순해지고 색면이 강조되면서 추상회화를 예고하는 듯한 모습까지 나타난다.
여러분이라면 같은 산을 수십 번 그리면서 무엇이 달라지는지 발견할 수 있을까. 세잔에게 반복은 복사가 아니라 보는 방법을 깊게 만드는 과정이었다.
《목욕하는 사람들》, 인물과 자연을 하나로 만들다
세잔은 1870년대부터 말년까지 목욕하는 사람들(Bathers)을 반복해서 탐구했다.
특히 후기의 대형 작품에서는 인물과 나무, 강과 하늘이 하나의 구조 안에서 연결된다. 오르세미술관은 세잔이 인체와 풍경을 완전히 결합하려는 목표를 오랫동안 추구했다고 설명한다.
인물은 실제 사람처럼 자연스럽기보다 기하학적인 덩어리에 가까워진다.
이런 형태의 단순화는 훗날 피카소와 브라크가 발전시킨 입체주의와도 연결되는 중요한 지점이다.
세잔이 현대미술의 출발점으로 불리는 이유
세잔의 가장 큰 혁신은 대상을 ‘무엇처럼 보이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라는 관점에서 바라본 데 있다.
전통적인 원근법을 조금씩 흔들고 여러 시점을 한 화면에 담았으며, 색을 통해 형태와 공간을 만들었다.
그 결과 그림은 현실을 그대로 복제하는 창문이 아니라 화가가 세계를 다시 구성하는 독립적인 공간이 됐다.
폴 세잔은 인상주의와 현대미술 사이에 놓인 다리와 같은 화가다. 사과와 산처럼 평범한 대상을 끊임없이 바라보면서 회화의 구조 자체를 다시 생각했고, 그 실험은 이후 입체주의와 추상미술이 등장할 수 있는 중요한 토대가 됐다.
폴 세잔 작가 프로필
본명: Paul Cézanne
출생: 1839년 1월 19일, 프랑스 엑상프로방스
사망: 1906년 10월 22일, 프랑스 엑상프로방스
분야: 회화, 드로잉, 수채화
미술사적 흐름: 후기인상주의
주요 소재: 정물, 풍경, 인물, 목욕하는 사람들
대표 작품: 《카드놀이하는 사람들》, 《생트빅투아르산》 연작, 《사과가 있는 정물》, 《대수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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