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 솔라 《어느 한 해-완벽한 날들》
자비 솔라 《어느 한 해-완벽한 날들》, 화려한 색채 뒤에 숨은 불완전한 감정
완벽했던 하루를 떠올리라고 하면 어떤 장면이 먼저 생각날까.
눈부시게 맑았던 여행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했던 시간, 특별한 사건 없이 평온했던 어느 오후일 수도 있다. 그런데 기억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행복한 순간 안에도 설명하기 어려운 불안과 외로움이 함께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에서 열리는 자비 솔라 특별전 **《어느 한 해-완벽한 날들》**은 바로 이런 인간의 복합적인 감정을 회화로 풀어낸 전시다. 스페인 작가 자비 솔라(Xevi Solà)를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첫 대규모 개인전으로, 한국 전시를 위해 제작한 신작 50여 점을 포함해 약 80점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시작되는 회화
자비 솔라의 작품을 처음 마주하면 강렬한 색채가 먼저 시선을 붙잡는다.
밝은 초록의 풀밭과 선명한 하늘,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들은 패션 화보나 오래된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인다. 하지만 인물의 얼굴을 천천히 살펴보면 화면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누군가는 먼 곳을 바라보고 있고, 함께 있는 사람들의 시선은 묘하게 어긋난다. 아름다운 공간에 있지만 인물들은 완전히 편안해 보이지 않는다. 작가는 패션 이미지와 고전 할리우드 영화 같은 대중문화의 시각적 언어를 회화로 가져오면서 매끄럽게 꾸며진 장면 뒤에 감춰진 심리적 긴장을 드러낸다.
완벽한 풍경 속에서 발견하는 ‘심리적 초상’
이번 전시를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 가운데 하나는 심리적 초상이다.
일반적인 초상화가 인물의 외모와 특징을 보여준다면 자비 솔라의 인물은 표정과 자세, 주변 인물과의 거리까지 이용해 보이지 않는 심리를 상상하게 만든다.
그림 속에서 정확히 어떤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그래서 관람객은 화면에 놓인 단서를 따라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게 된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인지, 막 다툰 사이인지, 아니면 우연히 같은 공간에 머물고 있는 사람인지 확신할 수 없다. 바로 그 모호함이 자비 솔라 회화의 매력이다.
저도 이런 작품을 볼 때 처음에는 ‘무슨 상황일까’를 빨리 알아내려고 하는 편인데, 오히려 답을 찾지 못했을 때 그림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작품이 끝난 뒤에도 이야기가 계속되는 느낌이 꽤 인상적이다.
어느 한 해를 따라 이어지는 장면들
이번 전시는 한 사람이 통과하는 일 년의 시간처럼 서로 다른 장면과 감정을 이어간다.
우리의 한 해 역시 특별한 사건으로만 기억되지 않는다. 아무 일도 없었던 오후와 우연히 마주친 사람, 설명할 수 없이 우울했던 날과 기대하지 않았던 행복이 뒤섞여 하나의 시간이 된다.
자비 솔라의 작품도 비슷하다. 하나의 화면을 완결된 이야기로 제시하기보다 서로 다른 인물과 장소를 조각처럼 펼쳐놓는다.
관람객은 작품 사이를 이동하면서 자신의 기억을 자연스럽게 겹쳐보게 된다. 여러분에게 지난 1년을 대표하는 장면은 무엇인가. 가장 행복했던 날일까, 아니면 이상하게도 평범했던 어느 하루일까.
12m 대형 회화에서 느끼는 시간의 흐름
이번 전시에서 특히 눈여겨볼 작품은 약 12m 길이로 이어지는 대형 회화 연작이다.
작은 그림은 한눈에 전체 장면을 파악할 수 있지만, 긴 화면 앞에서는 관람객도 직접 움직여야 한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걸으며 인물과 풍경을 따라가다 보면 그림을 보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시간 경험이 된다.
가까이에서는 붓의 움직임과 인물의 표정을 살펴보고, 멀리 물러나서는 화면 전체의 색채와 장면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비교해보는 것이 좋다.
작가는 작업에 앞서 작은 드로잉을 반복해서 만들고, 이를 캔버스로 옮기는 과정에서는 첫 아이디어의 즉흥성과 신선함을 유지하기 위해 비교적 빠르게 작업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화려한 색을 조금 천천히 바라보는 방법
자비 솔라의 작품은 사진으로 볼 때와 실제 전시장에서 만났을 때의 인상이 꽤 다를 수 있다.
처음에는 밝은 색과 독특한 인물이 강하게 들어오지만, 조금 오래 머무르면 인물 사이의 거리와 시선, 손의 위치 같은 작은 요소가 보이기 시작한다.
특히 인물의 표정을 하나씩 살펴본 뒤 주변 풍경과 연결해보면 좋다. 아름다운 자연과 세련된 인물이 왜 묘하게 불편하게 느껴지는지를 찾다 보면 작가가 만들어놓은 심리적 서사에 자연스럽게 들어가게 된다.
화려한 색채 때문에 가볍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 안에 숨어 있는 감정은 꽤 복잡하다. 이 대비가 이번 전시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이다.
완벽하지 않은 날들이 모여 만드는 한 해
《어느 한 해-완벽한 날들》이라는 제목에는 묘한 역설이 있다.
우리의 모든 날이 완벽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날에도 걱정이 있고, 힘든 하루에도 예상하지 못한 작은 기쁨이 있다. 결국 완벽하지 않은 수많은 시간이 쌓여 한 사람의 한 해가 완성된다.
자비 솔라의 작품도 행복이나 불안을 하나의 감정으로 분리하지 않는다. 화려함과 외로움, 아름다움과 불편함을 같은 화면에 놓으면서 인간의 감정이 얼마나 복잡한지 보여준다.
전시장을 나설 때쯤에는 작품 속 인물보다 자신의 지난 시간이 먼저 떠오를지도 모른다. 강렬한 구상회화와 영화적인 장면, 이야기의 여백이 많은 작품을 좋아한다면 천천히 둘러볼 만한 전시다.
자비 솔라 특별전 전시 정보
전시명: 자비 솔라 특별전 《어느 한 해-완벽한 날들》
작가: 자비 솔라(Xevi Solà)
전시 기간: 2026년 7월 10일~10월 17일
관람 시간: 오전 10시~오후 7시
입장 마감: 오후 6시
휴관일: 매주 월요일
관람 연령: 전체 관람
전시 장소: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 제1전시실
관람료: 성인 15,000원 / 청소년·어린이 10,000원 / 미취학 아동 5,000원 / 경로 7,500원 / 36개월 미만 무료
주최: 주식회사홍서희
주관: 라콜렉션H, 팀커넥티브
문의: 02-793-7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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