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선 사진전 《MORENDO》, 이탈리아 건축에 새겨진 시간의 흔적
이남선 사진전 《MORENDO》, 이탈리아 건축에 새겨진 시간의 흔적
오래된 건축물을 바라볼 때 우리는 흔히 아름다운 외관과 역사적인 가치에 먼저 주목합니다. 하지만 건축은 완성된 순간의 모습으로 영원히 머물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기능이 달라지고 주변 도시가 변하며, 한 시대를 대표했던 건축의 권위 역시 조금씩 희미해집니다.
건축사진가 이남선의 개인전 《MORENDO — Architecture Photography In Italy》는 바로 그 변화의 순간을 바라보는 사진전입니다. 2026년 8월 12일부터 17일까지 서울 인사동 갤러리 인덱스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이탈리아 건축을 단순한 관광 명소가 아니라 도시와 역사 속에서 변화하는 존재로 기록합니다.
‘MORENDO’, 서서히 사라져가는 것들
전시 제목인 ‘MORENDO’는 음악 용어로 점점 여리게, 사라지듯 연주하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희미해지는 건축의 존재감과 시대의 힘을 떠올리게 합니다.
한때 도시의 중심이었던 건축물이 세월이 흐르면서 새로운 건물 사이에 놓이고, 본래의 역할이 바뀌는 장면은 도시 어디에서나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남선은 그러한 변화를 낡음이나 쇠퇴로만 바라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건물이 지나온 시간과 현재의 도시가 만나는 지점에 주목하며, 건축이 어떻게 기억되고 다시 해석되는지를 사진으로 보여줍니다.
이탈리아 건축을 바라보는 다른 시선
이탈리아는 로마 시대부터 르네상스, 근현대 건축에 이르기까지 여러 시대의 건축이 한 도시에 공존하는 곳입니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유명 건축물을 멋있게 보여주는 여행 사진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건축물 자체를 화면의 주인공으로 고립시키기보다 도로와 주변 건물, 사람의 흔적과 도시 구조를 함께 담습니다.
그래서 사진 속 건축은 하나의 조형물이라기보다 도시 속에서 살아온 역사적인 존재로 읽힙니다. 건물 주변의 공간까지 살펴보다 보면 그 장소가 어떤 시간을 지나왔는지 자연스럽게 상상하게 됩니다.
저도 건축사진을 볼 때는 먼저 대칭이나 형태처럼 눈에 띄는 요소에 집중하는 편인데요. 이번 작업처럼 건물 주변까지 함께 바라보면 같은 건축도 전혀 다르게 느껴집니다. 아름다움보다 시간이 먼저 보인다는 점이 꽤 인상적입니다.
가브리엘레 바질리코에서 시작된 시선
이번 작업의 중요한 출발점 가운데 하나는 이탈리아 건축사진가 가브리엘레 바질리코입니다.
바질리코는 건축물을 독립된 대상처럼 촬영하기보다 그것이 자리한 도시의 구조와 관계를 함께 바라본 사진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남선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영향을 받아 이탈리아 건축과 도시의 관계를 자신만의 시선으로 기록합니다.
중요한 것은 유명한 건축물을 ‘얼마나 아름답게 촬영했는가’가 아닙니다. 건축물이 현재 도시에서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으며, 과거의 권위와 의미가 시간 속에서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를 읽어내는 것이 이번 전시의 핵심입니다.
건축사진은 시간의 기록이다
건축사진은 움직이지 않는 건물을 촬영하기 때문에 정적인 장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시간과 깊은 관계를 맺습니다.
건물이 처음 세워진 시대와 촬영하는 현재 사이에는 수십 년, 때로는 수백 년의 간격이 존재합니다. 그동안 도시의 환경과 사람의 생활방식은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이남선의 사진은 이러한 시간의 겹을 한 화면에 담습니다. 건축물 표면에 남은 흔적과 주변 공간의 변화는 사진 속에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단서가 됩니다.
사진을 감상할 때 건축물의 형태만 보지 말고 주변에 무엇이 함께 찍혀 있는지도 살펴보면 좋습니다. 도로와 창문, 벽의 흔적과 건물 사이의 간격까지도 작가가 바라본 도시를 이해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남선 작가
이남선은 건축사진을 중심으로 상업사진과 개인 작업을 함께 이어온 사진가입니다. 경원전문대학 사진영상과를 졸업하고 상명대학교에서 광고사진 석사 과정을 마쳤으며, 건축물의 외형적인 아름다움보다 건축과 도시, 시간이 맺는 관계에 관심을 두고 작업해 왔습니다.
이번 《MORENDO》에서는 이탈리아 도시를 통해 건축이 지닌 역사적 의미와 현재의 모습을 함께 바라보며 건축사진의 기록성과 해석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전시 정보
전시명: MORENDO — Architecture Photography In Italy
작가: 이남선
전시 기간: 2026년 8월 12일~8월 17일
관람 시간: 오전 11시~오후 6시
장소: 갤러리 인덱스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길 45, 3층
《MORENDO》는 이탈리아의 유명 건축물을 감상하는 데서 끝나는 사진전이 아닙니다. 한 시대를 상징했던 건축이 시간이 지나며 어떻게 도시 속에 남아 있는지 바라보게 합니다. 인사동을 찾는다면 사진 속 건물을 천천히 따라가며 건축의 표면에 켜켜이 남겨진 도시와 시간의 흔적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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