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일산수지 《I ♥ ILSAN SUJI》, 장소를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I ♥ ILSAN SUJI》, 33년 된 플라스틱 공장을 다시 바라보는 네 작가
‘I ♥ NEW YORK’처럼 I ♥ ___라는 문장은 너무 익숙합니다. 도시 이름만 바꾸면 어디든 사랑하고 기념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죠.
부산 사상구의 전시공간 일산수지에서 열리는 《I ♥ ILSAN SUJI》는 이 익숙한 문장에 ‘ILSAN SUJI’를 넣으면서 시작합니다. 김현승, 박정아, 최정화, 한혜원 네 작가는 특정 장소를 사랑하고 기억한다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질문합니다.
‘I ♥ ___’라는 너무 익숙한 문장
관광지에 가면 도시 이름이 들어간 티셔츠와 머그컵, 자석을 쉽게 만납니다.
장소가 달라져도 표현 방식은 거의 같습니다. 이름 앞에 하트를 붙이는 순간 그곳은 사랑받고 기억할 만한 장소가 됩니다.
《I ♥ ILSAN SUJI》는 바로 이 익숙한 공식에 작은 틈을 만듭니다.
‘사랑한다’고 선언하기 전에 나는 이 장소를 실제로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를 먼저 생각하게 하는 것입니다.
33년 된 플라스틱 공장이 전시장이 되다
이번 전시에서 작품만큼 중요한 것은 일산수지라는 장소 자체입니다.
이곳은 약 33년 동안 플라스틱을 착색하고 재생하던 공장이었습니다. 산업 생산을 담당했던 공간이 지금은 사람들이 찾아와 예술을 보는 장소로 바뀌었습니다.
공장의 과거를 완전히 지우고 새로운 갤러리를 만든 것이 아니라, 이전의 시간과 현재의 기능이 한 장소에 겹쳐 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저도 오래된 공장이나 창고를 활용한 전시장에서는 작품뿐 아니라 벽과 바닥, 높은 천장에 남은 흔적까지 자연스럽게 보게 됩니다. 공간 자체가 하나의 기억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장소는 건물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장소를 주소나 건축물로 설명하지만 실제 기억은 훨씬 복잡합니다.
누가 그곳에서 일했고, 어떤 일이 반복됐으며, 사람들이 어떤 감정을 가지고 드나들었는지가 오랫동안 쌓여 하나의 장소가 됩니다.
일산수지 역시 과거에는 누군가의 일터였고 지금은 예술가와 관람객이 만나는 공간입니다.
건물은 그대로 있어도 사람과 사용 방식이 달라지면 장소의 의미도 변합니다.
김현승·박정아·최정화·한혜원의 네 시선
이번 전시에는 김현승, 박정아, 최정화, 한혜원이 참여합니다.
네 작가는 ‘일산수지를 사랑해야 하는 이유’를 친절하게 설명하기보다 나와 장소 사이에 존재하는 거리를 살펴봅니다.
누가 이곳을 바라보는지, 무엇을 기억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한 장소가 기념할 만한 곳으로 만들어지는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그래서 작품을 하나의 답으로 보기보다 네 작가가 장소에 던지는 서로 다른 질문으로 바라보는 편이 흥미롭습니다.
기억되는 장소와 잊히는 장소
도시는 계속 변합니다.
오래된 공장과 가게가 사라지고 새로운 건물이 들어섭니다. 몇 년이 지나면 그 자리에 무엇이 있었는지조차 기억하기 어려워집니다.
그런 점에서 오래된 산업공간을 예술공간으로 사용하는 일은 단순한 건물 재활용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과거를 그대로 보존하는 대신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고 새로운 이야기가 쌓이면서 장소의 시간이 계속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도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오래된 장소가 있으신가요?
‘사랑한다’는 말보다 중요한 것
《I ♥ ILSAN SUJI》라는 제목은 밝고 유쾌해 보이지만 그 안의 질문은 생각보다 깊습니다.
장소를 좋아한다는 것은 유명한 건축물이나 예쁜 풍경을 소비하는 일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곳의 과거를 알고, 지금의 모습을 바라보고, 앞으로 어떤 공간으로 남을 것인지 생각하는 것 역시 장소와 관계를 맺는 방식입니다.
이번 전시는 ‘일산수지를 사랑한다’고 선언하기보다 우리가 장소를 사랑하고 기억하는 방식 자체를 다시 바라보게 합니다.
전시장에 간다면 작품만 빠르게 보고 나오기보다 공장의 구조와 남아 있는 흔적도 함께 살펴보세요. 왜 하필 이곳에 ‘I ♥’라는 문장이 붙었는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I ♥ ILSAN SUJI》 전시 정보
전시명: 《I ♥ ILSAN SUJI》
참여 작가: 김현승, 박정아, 최정화, 한혜원
전시 기간: 2026년 9월 5일~9월 27일
관람일: 금·토·일요일
관람 시간: 13:00~19:00
휴관: 9월 25일·26일 포함 별도 운영일 확인 필요
전시 장소: 일산수지
주소: 부산 사상구 감전천로 58
기획·주최: 이레나, 일산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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