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소 《일어나고 사라지는》, 보이는 것 너머에서 생성되는 예술

 

이강소 《일어나고 사라지는》, 보이는 것 너머에서 생성되는 예술

그림 속에 몇 번의 붓질만 남아 있는데 이상하게 새 한 마리가 떠오르기도 하고,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조금 뒤에는 그 형상이 다시 사라지고 전혀 다른 장면이 나타납니다.

2026년 8월 21일부터 롯데뮤지엄에서 열리는 이강소 개인전 《일어나고 사라지는(Lee Kang So: Emergence and Dissolution)》은 이런 ‘나타남과 사라짐’의 순간을 따라가는 전시입니다. 1970년대 실험미술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강소가 이어온 회화와 조각, 사진, 영상, 퍼포먼스를 하나의 흐름으로 살펴봅니다.



완전히 드러나는 것도, 완전히 사라지는 것도 없다

이번 전시의 중심에는 생성과 소멸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실재와 이미지, 존재와 부재는 서로 완전히 분리되지 않습니다. 하나가 사라지는 순간 또 다른 이미지가 나타나고, 관람객이 무엇을 떠올리느냐에 따라 작품의 의미도 달라집니다.

이강소는 하나의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보는 사람이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갈 수 있는 상태를 남겨둡니다.

저도 이강소의 회화를 보면 처음에는 ‘무엇을 그린 것인지’를 찾게 되는데, 오래 바라볼수록 그 질문 자체가 중요하지 않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1970년대부터 이어진 실험

이강소는 한국 현대미술에서 실험적인 작업을 일찍부터 시도한 작가입니다.

특히 1970년대에는 완성된 작품 하나를 보여주는 방식에서 벗어나 행위와 시간, 장소, 관객의 경험 자체를 작품으로 바라보는 실험을 이어갔습니다.

이번 롯데뮤지엄 전시 역시 특정 시기의 대표작만 나열하는 회고전보다 그가 오랜 시간 어떤 질문을 반복하고 확장해왔는지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춥니다.


회화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어떻게’

이강소의 회화에서는 오리나 배, 사슴처럼 보이는 형상이 자주 발견됩니다.

하지만 그것을 정확하게 묘사하는 것이 목적은 아닙니다. 빠르게 지나간 붓질 하나가 어느 순간 생명체처럼 보이고, 또 다른 관람객에게는 단순한 선의 움직임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작품이 하나의 의미로 고정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회화는 형상을 찾아내는 재미와 동시에 붓이 지나간 속도와 힘, 비어 있는 공간을 함께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붓질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의 흔적

전시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는 과정입니다.

이강소에게 작품은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시간과 행위가 축적된 상태에 가깝습니다. 화면 위에 남은 붓질 역시 무엇인가를 설명하는 선이라기보다 작가의 움직임이 지나간 흔적입니다.

그래서 한 번의 붓질에서도 속도와 방향, 망설임과 힘을 느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림에서 완성된 이미지를 먼저 찾는 편인가요, 아니면 물감과 붓의 흔적을 먼저 보는 편인가요? 이강소의 작품에서는 후자의 시선이 꽤 흥미로운 경험을 만들어줍니다.


조각에서도 이어지는 ‘되어가는 상태’

이강소의 작업은 회화에 머물지 않습니다.

조각에서도 완전히 결정된 형태보다 무언가가 만들어지는 중간 상태에 관심을 보여왔습니다. 2016년 제작된 도자 조각 《Becoming》처럼 제목 자체가 ‘되어감’을 뜻하는 작업도 있습니다.

이는 《일어나고 사라지는》이라는 이번 전시 제목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존재는 어느 순간 완성된 채 멈추는 것이 아니라 계속 만들어지고 변하며 사라집니다.


사진·영상·퍼포먼스가 하나의 흐름으로

이번 전시에서는 회화나 조각만 보는 것이 아닙니다.

사진과 영상, 퍼포먼스까지 서로 다른 매체가 하나의 흐름 안에서 연결됩니다. 관람객은 실재와 이미지가 교차하는 공간에서 시작해 여러 매체를 따라 이동하면서 이강소의 작업이 어떻게 확장되어 왔는지를 경험하게 됩니다.

매체는 달라져도 질문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무엇이 작품인가’, ‘언제 작품은 완성되는가’, ‘보는 사람은 작품에 어떤 방식으로 참여하는가’라는 질문이 계속 이어집니다.


관람객이 들어와야 작품이 다시 시작된다

이강소의 작업에서는 관람객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화면에 남겨진 최소한의 흔적은 보는 사람의 경험과 기억을 통해 다른 이미지로 변합니다. 누군가에게는 새가 되고, 다른 사람에게는 풍경이나 움직임으로 읽힐 수 있습니다.

전시가 ‘하나의 답’을 제시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작가가 작품을 끝냈다고 해서 의미까지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관람객이 만나는 순간 작품이 다시 생성되기 때문입니다.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을 함께 보는 전시

《일어나고 사라지는》은 한 작가의 작업을 소개하면서 동시에 한국 현대미술의 변화도 살펴볼 수 있는 전시입니다.

1970년대 이후 한국 미술에서는 회화와 조각이라는 전통적인 장르의 경계를 넘어 행위와 공간, 시간과 관계를 작품으로 받아들이는 실험이 본격화됐습니다.

이강소는 그 흐름을 대표하는 작가 가운데 한 명입니다.

과거의 실험을 당시의 역사로만 바라보지 않고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현대미술의 언어와 연결해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이 이번 전시의 중요한 의미입니다.


작품이 사라진 뒤 무엇이 남을까

전시 제목 《일어나고 사라지는》은 작품만을 이야기하는 표현처럼 보이지만 조금 더 넓게 읽을 수 있습니다.

사람의 기억도 생겨났다 흐려지고, 관계 역시 만들어졌다 변화합니다. 우리가 같은 작품을 몇 년 뒤 다시 보더라도 이전과 똑같이 느끼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강소의 예술은 사라지는 것을 붙잡으려 하기보다, 나타나고 변화하고 다시 사라지는 과정 자체를 바라보게 합니다.

전시장에서 작품의 의미를 빨리 찾으려 하기보다 붓질 하나와 빈 공간 앞에 잠시 머물러보세요. 처음에는 없었던 이미지가 어느 순간 눈앞에서 ‘일어나는’ 경험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이강소: 일어나고 사라지는》 전시 정보

전시명: 《이강소: 일어나고 사라지는》
영문명: Lee Kang So: Emergence and Dissolution
작가: 이강소
전시 기간: 2026년 8월 21일~11월 1일
전시 장소: 롯데뮤지엄
주소: 서울 송파구 올림픽로 300 롯데월드타워 7층
관람 시간: 매일 10:30~19:00
입장 마감: 18:30
휴관: 매월 1회, 별도 공지 확인
관람 연령: 전체관람가
정상 관람료: 성인 20,000원 / 청소년·어린이 13,000원 / 만 3세 미만 무료
문의: 1544-7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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