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모 개인전, 파편과 흔적 사이에서 떠오르는 기억의 풍경
정수모 개인전, 파편과 흔적 사이에서 떠오르는 기억의 풍경
지나간 기억은 한 장의 사진처럼 온전하게 남아 있지 않다.
어떤 얼굴은 선명하지만 그날의 장소는 흐릿하고, 오래 잊고 지낸 장면이 낯선 색이나 소리를 통해 갑자기 떠오르기도 한다. 인천문화예술회관 소전시실에서 열리는 정수모 개인전은 이렇게 흩어지고 겹쳐지는 기억의 성질을 추상적이면서도 서사적인 화면으로 보여주는 전시다.
전시는 2026년 8월 7일부터 8월 13일까지 진행된다. 《파편》, 《흔적》, 《흑월도》, 《몽유도》, 《기억의 소리》 등 작품을 통해 현실과 꿈, 과거와 현재가 한 화면 안에서 충돌하고 다시 연결되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형태가 무너진 자리에서 시작되는 이미지
정수모의 화면에서는 인물과 사물의 형태가 완전하게 고정되지 않는다.
사람의 얼굴이나 몸처럼 보이는 형상이 나타났다가 거친 붓질과 번진 색채 속으로 사라진다. 검은 선과 문자, 물감 자국과 작은 이미지가 여러 층으로 겹치며 어느 하나의 장면으로 단정하기 어려운 공간을 만든다.
작품 《파편21》과 《흔적34》에서는 중앙의 인물 형상이 주변의 수많은 흔적과 뒤섞인다. 가까이 다가가면 섬세한 선과 문자, 불규칙한 점과 얼룩이 보이고, 멀리 물러나면 하나의 인체나 기억 속 초상처럼 화면이 다시 모인다.
이러한 구성은 우리가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과 닮았다. 기억은 빠진 부분을 상상으로 채우고, 서로 다른 시기의 감정을 한 장면처럼 결합한다.
《몽유도》, 현실과 꿈 사이를 걷는 회화
2025년작 《몽유도 Dream Journey》는 제목처럼 현실과 꿈의 경계에 머문다.
화면 속에는 사람의 얼굴과 몸을 연상시키는 이미지가 존재하지만 윤곽은 계속 흔들린다. 드로잉과 문자, 어두운 색면과 붉은색·보라색의 흔적이 겹치면서 인물이 어느 공간에 서 있는지 쉽게 판단하기 어렵다.
‘몽유’는 꿈속을 거니는 일이다. 작품을 감상하는 시선 역시 한곳에 머무르지 않는다. 인물의 얼굴을 따라가다가 화면 아래의 작은 드로잉으로 이동하고, 다시 뒤편의 희미한 문장과 얼룩에 붙잡힌다.
저도 처음에는 화면 속 인물의 정체를 찾으려 했지만, 오래 볼수록 무엇을 그렸는가보다 이미지들이 어떻게 나타나고 사라지는지가 더 흥미롭게 느껴졌다.
문자와 선이 만드는 기억의 소리
정수모의 작품에는 회화적 붓질과 함께 손으로 쓴 듯한 문장과 낙서, 가느다란 드로잉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문자는 내용을 또렷하게 전달하기보다 기억의 잔향처럼 화면에 머문다. 일부는 읽을 수 있지만 다른 부분은 겹치거나 번져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마치 오래된 편지에서 몇 개의 단어만 남았거나, 누군가의 목소리를 완전히 듣지 못한 상태와 비슷하다.
작품 제목 《기억의 소리》도 이러한 특징을 잘 드러낸다. 기억은 눈으로 보는 장면뿐 아니라 말과 음악, 주변의 소리와 함께 돌아온다. 작가는 서로 다른 감각의 흔적을 선과 색, 문자로 변환해 화면에 쌓는다.
여러분에게 오래 남아 있는 기억은 선명한 이미지인가, 아니면 특정한 목소리나 소리에 가까운가.
완성보다 과정이 드러나는 화면
작품에는 지우고 덧칠한 흔적과 긁힌 자국, 흘러내린 물감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일반적으로 그림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가려질 수 있는 흔적이 오히려 화면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작가는 형태를 만들었다가 지우고, 그 위에 다시 선과 색을 더하면서 시간이 축적된 표면을 완성한다.
이 때문에 작품은 한순간에 만들어진 이미지가 아니라 여러 시기의 판단과 감정이 남아 있는 기록처럼 보인다. 화면의 거친 부분과 비어 있는 여백, 강한 색과 희미한 선이 함께 존재하며 기억의 불완전함을 보여준다.
오랜 작업이 축적된 33번째 개인전
정수모 작가는 경희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홍익대학교 대학원 회화과를 졸업했다. 이후 프랑스 베르사유 에콜 데 보자르에서 드로잉을 공부했으며 최고상을 받았다.
1981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국내외에서 꾸준히 작품을 발표해왔다. 이번 인천문화예술회관 전시는 그의 33번째 개인전이며, 국립현대미술관 기획전과 부산비엔날레 프로젝트 특별전, 해외 국제교류전 등 다수의 전시에 참여했다.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한 여러 공공기관에 소장돼 있다.
오랜 시간 이어진 작업의 흐름을 알고 나면 화면에 반복되는 선과 인물, 파편의 의미도 조금 다르게 보인다. 한 작품의 흔적이 다음 작품으로 이동하며 작가의 긴 시간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흩어진 기억을 따라 걷는 전시
정수모 개인전은 하나의 명확한 이야기를 설명하는 전시가 아니다.
관람객은 화면 속 인물과 문자, 색채의 조각을 따라가며 자신만의 기억을 연결하게 된다. 작품을 가까이에서 볼 때는 드로잉과 물질의 흔적에 집중하고, 몇 걸음 물러나서는 파편이 하나의 형상으로 모이는 순간을 살펴보면 좋다.
낯설고 복잡해 보였던 화면이 어느 순간 오래된 기억처럼 익숙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인천에서 추상회화와 드로잉, 인간의 내면을 함께 탐색하는 전시를 찾고 있다면 천천히 머물러볼 만하다.
정수모 개인전 전시 정보
전시명: 정수모 개인전
작가: 정수모
전시 기간: 2026년 8월 7일~8월 13일
관람 시간: 오전 10시~오후 6시
관람료: 무료
관람 연령: 전 연령
전시 장소: 인천문화예술회관 소전시실
주소: 인천광역시 남동구 예술로 149
문의: 010-5387-0573
전시 첫날과 마지막 날은 작품 반입·반출에 따라 관람 시간이 조정될 수 있다.
#정수모 #정수모작가 #정수모개인전 #인천문화예술회관 #인천전시 #구월동전시 #인천무료전시 #몽유도 #기억의소리 #파편 #흔적 #현대회화 #추상회화 #미술전시추천 #아트공간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