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동형 창작주체 현장연계 프로젝트, 《드로우 더 스페이스》가 바라본 서학동

《드로우 더 스페이스》, 학과 물·바람으로 다시 그린 전주 서학동

동네 이름을 오래 부르다 보면 그 말에 처음 어떤 뜻이 담겨 있었는지 잊을 때가 있습니다. 전주 서학동의 ‘서학(棲鶴)’은 ‘학이 깃드는 곳’이라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서학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리는 능동형 창작주체 현장연계 프로젝트 《드로우 더 스페이스(DRAW THE SPACE)》는 바로 이 오래된 지명에서 출발합니다. 고하영, 임예랑, 전소영, 전소정, 전예현, 전정은, 조성준, 한유진 8명의 작가는 학을 안내자 삼아 골목과 전주천, 식물과 사람의 시간을 하나의 풍경으로 연결합니다.




‘학이 깃드는 곳’에서 시작된 드로잉

이번 전시에서 학은 단순한 상징물이 아닙니다.

골목을 걷고 물가에 내려앉으며 바람을 타고 이동합니다. 관람자는 작품 속 학의 움직임을 따라가면서 자연스럽게 서학동 곳곳을 바라보게 됩니다.

오래된 집과 골목, 전주천 주변의 생명,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시간이 차례로 연결됩니다. 그림을 보는 일이 어느새 동네를 걷는 경험으로 바뀌는 셈입니다.


물과 바람이 장소를 연결하다

전시를 관통하는 또 다른 중요한 요소는 물과 바람입니다.

서학동 곁을 흐르는 전주천은 오랜 시간 지역의 풍경과 생태를 만들어왔습니다. 잔잔한 물결과 이슬은 생명의 이미지를 보여주지만 가뭄으로 마른 하천, 폭우로 불어난 물과 오염은 기후변화의 흔적도 함께 떠올리게 합니다.

바람은 보이지 않지만 골목과 나무 사이를 지나고 수면에 흔적을 남깁니다.

그래서 이번 전시의 물과 바람은 아름다운 자연 풍경에 머물지 않고 장소와 환경의 변화를 읽는 언어가 됩니다.


검은 선이 벽면 전체로 확장되다

작품을 자세히 보면 이미지들이 서로 독립되어 있지 않습니다.

학의 긴 다리는 물의 선이 되고, 물결은 깃털로 변합니다. 펼쳐진 날개의 곡선은 바람으로 이어지고, 흩어진 선은 다시 나무와 물고기, 식물과 집의 모습으로 바뀝니다.

이 과정이 검은 선과 반복적인 드로잉을 통해 벽면 전체로 확장됩니다.

저도 이런 설치형 드로잉을 볼 때는 작품 한 부분만 보기보다 몇 걸음 뒤로 물러서 전체를 먼저 보는 편인데요. 멀리서는 하나의 풍경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작은 생명과 골목의 이야기가 하나씩 발견되는 재미가 큽니다.


‘공간을 그린다’는 것은 무엇일까

전시 제목 DRAW THE SPACE에서 흥미로운 단어는 ‘SPACE’입니다.

여기서 공간은 건물이나 지형만 뜻하지 않습니다. 자연과 사람, 과거와 현재가 함께 쌓여 만들어진 장소에 가깝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사는 동네를 떠올릴 때 어떤 모습이 가장 먼저 생각나시나요? 건물보다 냄새나 바람, 오래된 나무처럼 사소한 기억이 먼저 떠오를 수도 있습니다.

이번 작업 역시 그런 작은 감각들을 모아 서학동이라는 공간을 다시 그립니다.


예비예술인이 현장에서 만난 장소

《드로우 더 스페이스》는 능동형 창작주체 현장연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됩니다.

작가들은 작업실 안에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장소와 관계를 맺으며 작품을 확장합니다.

현장을 관찰하고 지역의 이름과 자연, 환경 문제를 탐색한 뒤 그것을 공동의 시각언어로 바꿉니다. 이런 과정은 작품 결과만큼이나 이번 프로젝트에서 중요한 부분입니다.


학을 따라 다시 서학동으로

작품 속 흐름은 결국 다시 동네로 돌아옵니다.

학을 따라가면 물을 만나고, 물을 따라가면 바람을 만나며, 바람 끝에서는 다시 서학동의 집과 골목, 사람과 생명을 만나게 됩니다.

《드로우 더 스페이스》는 ‘학이 깃드는 곳’이라는 오래된 지명을 오늘의 시선으로 다시 펼쳐 보이며 사람과 자연, 삶과 예술이 함께 머무는 장소의 의미를 묻는 전시입니다.

전시장에서는 벽면 전체를 먼저 바라본 뒤 가까이 다가가 학과 물고기, 식물과 골목의 작은 흔적을 하나씩 찾아보세요. 하나의 선이 다른 이미지로 이어지는 과정이 이번 전시를 읽는 좋은 길잡이가 됩니다.


《드로우 더 스페이스》 전시 정보

전시명: 능동형 창작주체 현장연계 프로젝트 《드로우 더 스페이스》
부제: 학을 따라, 물과 바람을 따라
전시 기간: 2026년 9월 1일~9월 13일
관람 시간: 09:00~18:00
정기 휴관: 매주 월요일
오프닝: 2026년 9월 7일 오후 5시
전시 장소: 서학아트스페이스
주소: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서학로 7, 1층
참여 작가: 고하영, 임예랑, 전소영, 전소정, 전예현, 전정은, 조성준, 한유진
총괄기획: 이광철, 김미라
지도: 정소라, 장성환, 이민수
협력기획: 한준

※ 9월 7일은 월요일 정기 휴관일이지만 오후 5시 오프닝 일정이 별도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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