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하고도 먼 것》, 한국과 몽골이 함께 기록하는 집단 기억

 

《영원하고도 먼 것》, 한국과 몽골이 함께 기록하는 집단 기억

기억은 과거에 일어난 일을 그대로 보관하는 창고가 아니다.

같은 사건도 누가 기억하고 어디에서 다시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갖는다. 개인의 경험이 공동체의 역사로 이어지기도 하고, 오래된 기억이 오늘의 사회를 바라보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제주 서귀포 뒤샹 갤러리에서 열리는 《영원하고도 먼 것: 집단 기억과 현대의 도전》은 한국과 몽골의 예술가들이 기억의 현재적 의미를 탐구하는 국제 교류전이다. 제16회 광주비엔날레 몽골관에서 제기된 문제의식을 제주라는 새로운 장소로 옮겨, 역사와 공동체,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다시 바라본다. 전시는 2026년 8월 31일부터 9월 6일까지 이어진다.



과거를 보존하는 기억에서 미래를 만드는 기억으로

이번 전시는 집단 기억을 지나간 사건의 기록으로만 다루지 않는다.

한 사회가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잊는가는 현재의 정체성과 미래의 방향에 영향을 준다. 예술가는 역사적 사건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개인의 경험과 지역의 이야기, 자연환경에 남은 흔적을 각자의 언어로 다시 해석한다.

전시의 영문 제목인 ‘Eternal and Distant’에는 오래 지속되면서도 쉽게 닿을 수 없는 기억의 성질이 담겨 있다. 먼 과거의 일처럼 느껴지는 사건도 현재의 삶 속에 흔적을 남기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 역시 오늘 만들어지는 기억과 연결된다.

저도 오래된 장소를 다시 찾았을 때 건물보다 그곳에서 있었던 사람과 감정이 먼저 떠오르는 경험이 있다. 기억은 사라지지 않고 새로운 상황을 만날 때마다 다른 모습으로 되살아난다는 점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광주와 제주, 몽골을 연결하는 세 개의 장소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광주와 제주, 몽골이라는 서로 다른 장소가 하나의 전시 안에서 만난다.

광주는 민주주의와 시민 공동체의 기억을 품고 있다. 제주는 이동과 경계, 자연환경과 역사적 상처가 겹쳐진 섬이다. 몽골은 유목문화의 오랜 전통과 급격한 현대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공간이다.

세 지역은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역사와 자연, 공동체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많은 질문을 공유한다. 예술가들은 특정 장소의 이야기를 고립된 지역사로 다루지 않고, 동아시아와 유라시아가 함께 고민할 문제로 확장한다.

전시는 광주비엔날레의 내용을 그대로 반복하는 방식이 아니다. 비엔날레 이후에도 질문이 다른 지역과 관람객을 만나면서 어떻게 변화하고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내는지 보여주는 연계 프로젝트다.


회화와 조각, 설치와 문학이 만나는 전시

참여 작가는 광주비엔날레 몽골관 작가들을 비롯해 권기철, 김미지, 석점덕, 진해주, 전홍식, 임희정, 허종하와 시인 이재영 등으로 구성된다.

회화와 조각, 설치미술, 문학처럼 서로 다른 장르가 한 공간에 놓이면서 기억을 표현하는 방식도 다양하게 펼쳐진다. 어떤 작품은 개인의 경험을 색과 형상으로 기록하고, 또 다른 작품은 자연의 재료와 공간 구성을 통해 장소에 축적된 시간을 드러낼 수 있다.

문학 작품이 함께 소개된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시는 구체적인 사건을 길게 설명하지 않으면서도 한 시대의 감정과 기억을 압축해 전달하는 언어다. 시각예술과 문학을 함께 감상하면 같은 주제가 이미지와 문장 속에서 어떻게 다르게 번역되는지 비교해볼 수 있다.


‘7일간의 기록’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시간

이번 전시의 세부 주제는 ‘7일간의 기록’이다.

전시 기간은 일주일에 불과하지만 그 안에 여러 지역과 세대, 예술가의 시간이 겹쳐진다. 관람객이 작품을 보고 나누는 대화와 감상 역시 전시 이후에 남는 새로운 기록이 된다.

기억은 이미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계속 생성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짧은 전시 기간 자체가 하나의 실험처럼 느껴진다. 누가 작품을 보고 어떤 경험을 떠올렸는지에 따라 전시의 의미도 달라질 수 있다.

여러분은 공동체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장면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반대로 오래된 기억 가운데 오늘의 시선으로 다시 살펴봐야 할 것은 무엇인지 작품 앞에서 천천히 생각해볼 수 있다.


국제 교류가 지역에 남기는 것

이번 전시는 뒤샹 갤러리와 칠곡문화예술위원회, 몽골 블루선 현대미술센터가 함께 마련했다.

두 나라의 작가를 한자리에 모으는 데서 끝나지 않고 공동 기획과 연구, 지속적인 작가 교류를 통해 지역과 국제 미술계를 연결한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국제전은 규모가 큰 미술관에서만 가능한 행사가 아니라, 지역의 공간과 예술가가 장기적인 관계를 만들며 성장하는 과정이 될 수 있다.

9월 6일 오전 11시에는 작가와의 만남도 진행된다. 작품의 배경과 집단 기억에 대한 작가들의 생각을 직접 듣고 싶다면 전시 마지막 날 프로그램을 함께 살펴보는 것도 좋다.


기억을 통해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전시

《영원하고도 먼 것》은 과거를 돌아보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서로 다른 역사와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무엇을 함께 기억할 수 있는지, 예술이 국가와 지역의 경계를 넘어 어떤 대화를 만들 수 있는지를 질문한다. 작품을 감상하는 동안 관람객 역시 자신의 개인적인 기억이 더 큰 공동체의 이야기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돌아보게 된다.

제주에서 한국과 몽골의 현대미술을 함께 만나고, 역사와 생태, 장소와 공동체에 관한 생각을 넓혀보고 싶다면 주목할 만한 국제 교류전이다.


《영원하고도 먼 것》 전시 정보

전시명: 제16회 광주비엔날레 몽골관 연계 프로그램 《영원하고도 먼 것: 집단 기억과 현대의 도전》
영문명: Eternal and Distant: Collective Memory & Contemporary Challenges
주제: 7일간의 기록(7-Day Record)
참여 작가: 광주비엔날레 몽골관 참여 작가, 권기철, 김미지, 석점덕, 진해주, 전홍식, 임희정, 허종하, 시인 이재영 등
전시 기간: 2026년 8월 31일~9월 6일
관람 시간: 오전 11시~오후 5시
작가와의 만남: 2026년 9월 6일 오전 11시
전시 장소: 뒤샹 갤러리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서광서문로 59
주최·주관: 뒤샹 갤러리, 칠곡문화예술위원회, 몽골 블루선 현대미술센터
문의: 010-6433-3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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