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근택 개인전 《숨(Breath)》, 30년 회화의 호흡을 한자리에서


유근택 개인전 《숨(Breath)》, 30년 회화의 호흡을 한자리에서

숨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살아 있다는 사실을 가장 분명하게 알려주는 움직임이다.

들이쉬고 내쉬는 단순한 반복 속에는 시작과 끝, 안과 밖, 생성과 소멸이 함께 존재한다. 서울 강서구 겸재정선미술관에서 열리는 유근택 개인전 《숨(Breath)》은 이러한 ‘숨’의 개념을 통해 작가가 지난 30여 년간 이어온 회화의 흐름을 돌아보는 전시다.

이번 전시에서는 1995년 초기작부터 2026년 신작까지 총 106점을 선보인다. 회화에서 영상에 이르는 다양한 작업을 통해 일상과 기억, 풍경과 시간, 개인과 사회를 바라봐온 유근택의 시선을 폭넓게 살펴볼 수 있다. 



일상을 낯설게 바라보는 유근택의 회화

유근택의 작품은 특별한 사건보다 우리가 매일 지나치는 일상에서 출발한다.

수영장, 집 안의 풍경, 나무와 길, 사람의 움직임처럼 익숙한 장면이 화면에 등장하지만 작품 속에서는 현실 그대로 머물지 않는다. 먹과 채색, 반복되는 붓질이 겹쳐지면서 평범했던 공간이 기억과 감정이 스며든 낯선 장소로 바뀐다.

유근택은 전통 수묵의 언어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확장해온 한국화 작가다. 화면에는 현실에서 본 장면과 개인의 기억, 시간이 지나며 변형된 이미지가 동시에 나타난다. 그래서 작품을 오래 바라보면 지금 보고 있는 것이 실제 풍경인지, 기억 속 장면인지 쉽게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첫 번째 공간 ‘연기’,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는 순간

이번 전시는 크게 세 개의 공간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 공간인 ‘연기’에서는 초기작인 ‘할머니’ 연작 31점을 비롯해 ‘분수’의 순간과 순환을 영상으로 표현한 작업 등을 만날 수 있다. 

분수에서 솟아오른 물은 가장 높은 지점에 도달한 뒤 다시 아래로 떨어진다. 눈앞에서는 짧은 순간이지만 같은 움직임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숨 역시 들이쉬고 내쉬는 동작이 계속 이어지면서 삶의 시간을 만든다.

저도 반복되는 장면을 다룬 작품을 볼 때 처음에는 변화가 적다고 생각했는데, 오래 바라보면 같은 움직임 안에서도 미세한 차이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번 전시 역시 그런 작은 변화와 시간의 흐름을 발견하는 재미가 크다.


‘안과 밖’, 익숙한 세계가 뒤집히는 순간

두 번째 공간은 ‘안과 밖’이다.

여기에서는 《수영장》과 《항해-기적을 향하여》 등 유근택의 대표적인 작업을 통해 내부와 외부,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바라보게 한다. 

안과 밖은 서로 반대되는 개념처럼 보이지만 실제 삶에서는 끊임없이 연결된다. 창문을 통해 외부 풍경이 실내로 들어오고, 개인의 감정은 바깥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영향을 준다.

유근택의 화면에서도 공간은 하나로 고정되지 않는다. 익숙한 방이나 수영장이 어느 순간 낯선 풍경처럼 바뀌고, 현실의 장면이 기억과 상상 속 이미지와 겹쳐진다.

여러분도 자주 보던 장소가 어느 날 갑자기 전혀 다르게 느껴진 경험이 있는가. 유근택의 작품은 바로 그런 순간을 붙잡는다.


겸재 정선과 유근택, 300년을 건너 만나는 시선

이번 전시가 겸재정선미술관에서 열린다는 점도 흥미롭다.

겸재 정선은 실제 풍경을 직접 바라보고 자신의 시선으로 재구성한 진경산수의 대표적인 화가다. 유근택 역시 오늘의 일상과 자연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다시 해석한다는 점에서 서로 다른 시대의 두 시선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정선이 산과 강을 바라보며 조선의 풍경을 새롭게 그렸다면, 유근택은 도시와 집, 일상적인 사물을 통해 동시대의 풍경을 기록한다.

두 작가 사이에는 약 300년의 시간이 있지만, 눈앞의 세계를 그대로 복사하기보다 자신의 경험과 감각을 더해 새로운 회화를 만든다는 점에서는 흥미로운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30년의 작업이 하나의 호흡으로 이어지다

유근택은 1965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 동양화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91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국내외에서 꾸준히 작업을 발표해왔으며 현재 성신여자대학교 동양화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과 서울시립미술관, 삼성미술관 리움 등 여러 기관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30년이 넘는 작업을 한자리에서 바라보면 작품의 스타일 변화뿐 아니라 작가가 계속 붙잡아온 질문도 보인다.

사람은 어디에 머무는가, 기억은 어떻게 변하는가, 일상은 왜 어느 순간 낯설게 보이는가. 이러한 질문은 작품마다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결국 하나의 긴 호흡처럼 이어진다.


숨을 고르듯 천천히 바라보는 전시

《숨(Breath)》은 빠르게 작품 수를 확인하고 지나가기보다 천천히 머무는 방식이 잘 어울리는 전시다.

가까이에서는 먹과 색이 겹쳐진 표면을 살펴보고, 몇 걸음 뒤에서는 화면 전체의 공간과 흐름을 바라보면 좋다. 같은 작품도 거리와 시선에 따라 전혀 다른 장면처럼 느껴질 수 있다.

전통 한국화의 재료가 동시대의 일상과 만나 어떻게 새로운 회화로 확장되는지 보고 싶다면 주목할 만하다. 겸재 정선의 시선과 유근택의 오늘이 한 공간에서 만나는 이번 전시는 한국화가 현재에도 끊임없이 변화하며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보여준다.


유근택 개인전 《숨(Breath)》 전시 정보

전시명: 숨(Breath)
작가: 유근택
전시 기간: 2026년 8월 4일~10월 22일
전시 작품: 1995년 초기작부터 2026년 신작까지 총 106점
전시 구성: 연기 / 안과 밖 / Two Conversation
전시 장소: 겸재정선미술관
주소: 서울특별시 강서구 양천로47길 36
관람 시간: 오전 10시~오후 6시
관람료 및 휴관일은 방문 전 겸재정선미술관 최신 안내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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