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혜자 《천지에 마음의 빛 뿌리며 간다》
방혜자 《천지에 마음의 빛 뿌리며 간다》, 평생 빛을 그린 화가
빛을 그린다는 것은 단순히 밝은 색을 사용하는 일과는 다르다.
어둠을 통과한 뒤 마주한 빛, 마음 깊은 곳에서 퍼져 나오는 빛, 생명을 품고 있는 우주의 빛까지. 방혜자(1937~2022)는 평생 ‘빛’을 자신의 예술과 삶을 연결하는 중심 언어로 삼았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에서 열리는 **《방혜자-천지에 마음의 빛 뿌리며 간다》**는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독자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한 방혜자의 약 60년 작업을 돌아보는 회고전이다. 2026년 한불수교 140주년을 기념해 마련됐으며,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던 프랑스 소재 작품을 포함해 약 80점이 전시된다.
어린 시절부터 마음에 자리한 빛
방혜자에게 빛은 눈으로 바라보는 자연현상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어린 시절의 아픔을 위로하고 마음을 정화하는 경험에서 시작된 빛은 시간이 지나면서 치유와 생명, 정신적인 수행을 상징하는 존재로 확장됐다. 그래서 그의 그림에는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장면보다 화면 안쪽에서부터 번져 나오는 듯한 색과 에너지가 더 중요하게 자리한다.
이번 전시 제목인 ‘천지에 마음의 빛 뿌리며 간다’ 역시 작가의 시 「빛을 찾아서」에서 가져왔다. 평생 빛을 향해 걸어온 작가의 삶과 작업을 잘 압축하는 문장이다.
1960년대 추상회화에서 시작된 여정
전시에서는 초기작부터 후기 작품까지 방혜자의 변화 과정을 차례로 살펴볼 수 있다.
1961년작 《지심(地心)》에서는 땅과 생명의 근원을 탐색했던 초기 추상회화의 특징이 나타난다. 이후 《햇님 나들이》, 《정관묘오》, 《우주의 빛》, 《하늘의 땅》으로 이어지면서 관심은 점차 자연에서 우주와 존재의 근원으로 확장된다.
저도 방혜자의 작품을 볼 때 처음에는 부드럽게 번지는 색채부터 눈에 들어오지만, 오래 바라보면 화면에 중심과 주변이 뚜렷하지 않다는 점이 흥미롭게 느껴진다. 빛이 특정 장소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화면 전체로 퍼지는 듯하다.
한지와 천연안료가 만드는 빛의 깊이
방혜자는 캔버스에 유화만 사용하는 데 머물지 않았다.
한지를 붙이고 천연안료를 사용했으며, 부직포처럼 빛이 통과할 수 있는 재료에도 관심을 가졌다. 재료 자체가 작품의 의미를 만들어내는 중요한 요소가 된 것이다.
한지는 색을 표면에만 올려놓지 않고 안쪽으로 스며들게 한다. 부직포 역시 빛을 받아들이면서 앞과 뒤의 경계를 흐린다. 이런 특성은 방혜자가 추구했던 ‘내부에서 발산되는 빛’을 표현하는 데 잘 어울렸다.
작품을 가까이에서 보면 안료의 입자와 스며든 흔적이 보이고, 몇 걸음 물러나면 수많은 흔적이 하나의 빛처럼 연결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동양과 서양 사이에서 만들어진 독자적인 회화
방혜자의 작업에서 중요한 또 하나의 특징은 한국과 프랑스라는 두 문화의 만남이다.
1960년대 프랑스로 건너간 이후 그는 서구 추상미술을 가까이에서 경험하면서도 동양적인 명상과 자연관을 놓지 않았다. 어느 한쪽의 미술 방식을 그대로 따르기보다 두 세계를 자신의 감각으로 연결했다.
그래서 작품에는 서양 추상회화의 색면과 물질적인 실험이 존재하면서 동시에 동양화에서 느껴지는 여백과 호흡, 자연과 인간을 하나의 흐름으로 바라보는 태도가 함께 나타난다.
여러분은 추상회화를 볼 때 무엇을 그렸는지부터 찾는 편인가. 방혜자의 그림에서는 구체적인 대상을 찾기보다 색이 어디에서 시작해 어디로 퍼져 나가는지 따라가 보는 편이 더 잘 어울린다.
‘우주의 빛’으로 넓어진 후기 작업
시간이 흐르면서 방혜자의 빛은 개인의 내면을 넘어 우주적인 차원으로 확장된다.
《우주의 노래》, 《별들의 노래》, 《우주의 빛》, 《빛의 기쁨Ⅰ》 같은 작품 제목에서도 이러한 변화를 읽을 수 있다. 인간과 자연, 하늘과 땅을 분리된 존재로 보지 않고 하나의 에너지와 생명의 흐름으로 연결하려는 시선이다.
특히 원형 화면이나 중심에서 퍼져나가는 구성은 별과 행성, 세포와 생명의 탄생을 동시에 떠올리게 한다. 작은 입자에서 거대한 우주까지 하나의 빛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마음속의 빛을 천천히 발견하는 전시
《천지에 마음의 빛 뿌리며 간다》는 화려한 사건을 따라가는 전시가 아니다.
대신 한 작가가 60년 동안 같은 질문을 얼마나 깊고 다양하게 탐구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초기의 땅과 생명에서 시작된 관심은 하늘과 우주로 확장됐고, 유화와 한지, 천연안료와 부직포를 넘나든 실험은 결국 ‘빛’이라는 하나의 세계로 이어졌다.
작품 앞에 조금 오래 머물러보면 색과 형태를 넘어 고요한 호흡이 느껴질 때가 있다. 빠른 이미지에 익숙해진 일상에서 잠시 속도를 늦추고 싶다면, 방혜자가 평생 화면에 쌓아 올린 빛을 천천히 따라가 볼 만하다.
《방혜자-천지에 마음의 빛 뿌리며 간다》 전시 정보
전시명: 방혜자-천지에 마음의 빛 뿌리며 간다
작가: 방혜자
전시 기간: 2026년 4월 24일~9월 27일
전시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5층 기획전시실
전시 규모: 작품 약 80점
관람료: 2,000원
주최: 국립현대미술관
협력: 영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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