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하 개인전 (관계는 흔들리며 존재한다)

 

관계는 흔들리며 존재한다, 먹으로 기록한 인간관계의 민낯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한 번 만들어진 모습 그대로 유지되지 않습니다. 가까웠던 사람이 멀어지고, 불편했던 관계에서 뜻밖의 위로를 얻기도 하죠. 우리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진심을 감추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 괜찮은 얼굴을 만들어냅니다.

인천문화예술회관 중앙전시실에서 열리는 **〈관계는 흔들리며 존재한다.―먹으로 그린 인간관계 보고서〉**는 이러한 현대인의 관계를 한지와 먹이라는 전통 재료로 들여다보는 개인전입니다. 전시는 2026년 7월 31일부터 8월 6일까지 진행되며,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무료로 관람할 수 있습니다.



한지와 먹으로 기록한 현대인의 얼굴

이번 전시는 인간관계를 따뜻한 교감만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관계 안에서 발생하는 권력과 불안, 보호받고 싶은 욕망, 고립과 연대의 구조를 풍자적이면서도 철학적인 시선으로 풀어냅니다.

먹은 번지고 스며들며 예측하기 어려운 흔적을 남깁니다. 한지 역시 먹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농담과 경계가 끊임없이 달라집니다. 이런 재료적 특성은 가까워졌다가 멀어지고, 선명해졌다가 흐려지는 인간관계와 자연스럽게 맞닿습니다.

작품 속 인물들은 특정한 누군가의 초상이 아닙니다. 단순한 캐릭터처럼 보이지만 그 얼굴 안에는 불안, 체제 속 위치, 인정받고 보호받고 싶은 마음이 응축돼 있습니다. 전시는 이를 전통적인 붓과 먹으로 기록한 현대인의 사회학적 드로잉 아카이브로 제시합니다.

위선과 침묵 뒤에 감춰진 감정

작품 제목도 관람객의 마음을 날카롭게 건드립니다. 〈위선의 초상〉, 〈위선의 깊이〉, 〈안 괜찮아서 괜찮다고 말했다〉, 〈아름다운 거짓말, 추한 진실〉, 〈붉은 침묵〉은 우리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자주 선택하는 태도를 떠올리게 합니다.

“괜찮다”는 말은 때로 상대를 안심시키기 위한 배려지만,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가면이 되기도 합니다. 아름답게 포장한 말이 관계를 지켜주기도 하지만, 진실을 더 깊이 감추기도 하죠. 작품들은 누가 옳고 그른지 판단하기보다 그 복잡한 마음을 한 화면에 머물게 합니다.

저도 작품 제목을 따라가다 보면 평소 무심코 건넸던 말과 표정을 돌아보게 됩니다. 솔직함만으로는 유지하기 어렵고, 가면만으로는 오래 버틸 수 없는 것이 관계라는 사실이 꽤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익숙한 상징을 비트는 풍자적 시선

〈큐피드는 천사가 아니다〉, 〈인어〉, 〈내일은 악마가 될 거야〉처럼 익숙한 상징을 새롭게 해석한 작품도 눈길을 끕니다. 사랑과 순수함, 욕망과 변신을 상징하던 존재들은 화면 안에서 단순한 선악의 경계를 벗어납니다.

사랑은 언제나 선하지 않고, 보호는 때로 통제가 됩니다. 관계를 지키려는 행동이 상대를 억압할 수도 있으며, 상처받은 사람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를 남기기도 합니다. 작가는 이런 모순을 직접 설명하기보다 낯선 인물과 상징을 통해 질문으로 남겨둡니다.

여러분은 관계 안에서 어떤 얼굴을 가장 자주 보여주고 계신가요? 상대를 위한 얼굴인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얼굴인지 작품 앞에서 천천히 생각해볼 만합니다.

기록자이자 질문하는 예술가

이번 전시의 작가는 국민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방송 제작 현장에서 약 30년간 활동했습니다. 사진과 영상, 기획과 미술을 넘나들며 지역 문화 프로젝트와 인천의 근현대사를 다룬 전시도 꾸준히 기획해왔습니다. 현재는 사단법인 서해문화 대표이자 시민교육과 인문미술 분야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 카메라와 화면을 통해 사람과 사회를 관찰해온 경험은 이번 작업에도 이어집니다. 인물을 그리지만 개인의 외형보다 그를 둘러싼 관계와 구조에 집중한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흔들리기 때문에 계속되는 관계

〈먹으로 그린 인간관계 보고서〉는 관계를 안정된 상태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먹물이 한지 위에서 번지듯 관계도 감정과 상황에 따라 모양을 바꿉니다. 때로는 멀어지고 상처를 남기지만, 다시 연결될 가능성 또한 그 흔들림 안에 존재합니다.

이번 전시는 타인의 얼굴을 바라보는 동시에 자신의 가면을 돌아보게 하는 자리입니다. 관계에 지쳤거나 말로 정리하기 어려운 감정을 품고 있다면, 먹의 농담 속에 담긴 현대인의 초상을 천천히 마주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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