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신표현주의 거장 게오르그 바젤리츠, 세화미술관 대규모 회고전
독일 신표현주의 거장 게오르그 바젤리츠, 세화미술관 대규모 회고전
사람을 그렸는데 얼굴이 아래로 향하고, 독수리도 거꾸로 매달려 있습니다. 익숙한 대상을 일부러 뒤집어 놓으니 무엇을 그렸는지보다 색과 붓질, 화면의 구조가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세화미술관에서 열리는 **《게오르그 바젤리츠》**는 독일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게오르그 바젤리츠(Georg Baselitz, 1938~2026)의 60여 년 예술 세계를 조망하는 회고전입니다. 1960년대 초기작부터 말년의 작업까지 회화·조각·드로잉 46점을 통해 그의 변화와 반복을 한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왜 그림을 거꾸로 그렸을까
바젤리츠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거꾸로 선 인물’입니다.
그는 1960년대 말부터 인물과 풍경, 독수리 같은 대상을 뒤집어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충격적인 이미지를 만들려 했다는 점이 아닙니다.
형상을 뒤집으면 관람객은 인물의 표정이나 이야기보다 색채와 붓질, 화면의 리듬에 더 집중하게 됩니다.
저도 바젤리츠의 그림을 볼 때 처음에는 ‘왜 거꾸로 그렸을까’라는 질문부터 떠올랐는데, 오래 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 인물이 아니라 물감의 움직임과 화면의 긴장이 더 크게 느껴집니다.
독일 역사와 개인의 기억이 겹쳐진 회화
바젤리츠는 제2차 세계대전과 전후 독일 사회를 경험한 세대입니다.
그에게 독일의 역사적 트라우마는 쉽게 지울 수 없는 배경이었습니다. 초기 작품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파편화된 신체와 거칠게 뒤틀린 인물 역시 이런 시대적 경험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는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인간상을 보여주기보다 상처 입고 분열된 존재를 화면에 등장시켰습니다.
그 때문에 바젤리츠의 회화는 강렬하면서도 어딘가 불편합니다. 바로 그 불편함이 그의 작품을 오래 기억하게 만듭니다.
독수리, 독일의 상징을 뒤집다
전시에서는 바젤리츠 작업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독수리 도상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독수리는 독일의 역사와 국가를 떠올리게 하는 상징입니다. 하지만 바젤리츠의 화면에서는 위엄 있게 날아오르기보다 뒤집히거나 불안정한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익숙한 국가적 상징을 뒤집어 놓으면서 권위와 역사,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셈입니다.
여러분이라면 거꾸로 된 독수리를 보면서 몰락을 떠올릴까요, 아니면 기존 질서를 벗어난 새로운 시선을 떠올릴까요?
회화뿐 아니라 조각에서도 거친 흔적을 남기다
이번 전시에서는 회화와 함께 조각도 만날 수 있습니다.
바젤리츠의 조각은 매끈하게 다듬어진 전통 조각과 거리가 멉니다. 나무를 거칠게 깎고 도끼 자국과 칼자국을 그대로 남기면서 제작 과정 자체를 드러냅니다.
첨부된 전시 포스터 속 인물 조각도 이런 특징을 잘 보여줍니다.
표면은 울퉁불퉁하고 신체는 단순화되어 있지만 오히려 강한 존재감이 느껴집니다. 완벽하게 정리된 형태보다 재료와 손의 흔적이 훨씬 중요하게 다가옵니다.
엘케, 평생의 동반자를 그리다
노년기 바젤리츠의 작품에서는 아내 엘케(Elke)가 중요한 존재로 등장합니다.
젊은 시절부터 함께해온 아내를 반복해서 그리면서 초상은 단순한 인물 기록을 넘어 시간과 기억에 대한 회화로 확장됩니다.
나이가 들어 변화하는 몸과 얼굴, 함께 지나온 세월이 화면에 그대로 쌓입니다.
거친 붓질로 유명한 바젤리츠지만 엘케를 다룬 작품에서는 개인적인 애정과 시간에 대한 성찰이 느껴져 초기작과는 다른 정서를 만날 수 있습니다.
과거의 작품을 다시 그린 ‘리믹스’
2000년대 이후 바젤리츠는 자신의 과거 작품을 다시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이를 ‘리믹스(Remix)’ 연작이라고 부릅니다.
젊은 시절 제작했던 작품의 구도와 모티프를 그대로 복제하지 않고, 수십 년 뒤의 경험과 새로운 붓질로 다시 그렸습니다.
젊은 작가가 과거 거장의 그림을 재해석하는 경우는 많지만, 한 예술가가 자신의 과거 작품을 직접 다시 해석한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가 하나의 화면 안에서 만나는 셈입니다.
말년의 ‘골드 페인팅’
전시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바젤리츠가 말년에 집중했던 ‘골드 페인팅(Gold Paintings)’ 연작을 만날 수 있습니다.
초기의 무겁고 거친 색채와 비교하면 색과 화면의 분위기가 달라졌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체와 기억, 반복이라는 그의 오랜 관심은 계속 이어집니다.
작가가 60년 넘게 같은 모티프를 반복하면서도 끊임없이 다른 방식으로 변주했다는 점이 이번 회고전에서 특히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60년을 한 번에 보는 전시
이번 세화미술관 전시는 1960년대부터 2026년까지 이어지는 바젤리츠의 작업 흐름을 비교해서 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입니다.
초기의 강렬한 인물과 파편화된 신체, 거꾸로 된 형상, 독수리, 엘케의 초상, 리믹스와 골드 페인팅까지 주요 변화를 순서대로 따라갈 수 있습니다. 총 46점이 전시됩니다.
바젤리츠에게 ‘뒤집기’는 단순한 기법이 아니라 익숙한 이미지를 다시 보게 만드는 하나의 사고방식이었습니다.
그림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찾기 전에 먼저 화면을 채운 색과 붓질, 뒤집힌 형상이 만드는 낯선 감각을 경험해보세요. 회화를 보는 방식 자체가 조금 달라질 수 있습니다.
《게오르그 바젤리츠》 전시 정보
전시명: 《게오르그 바젤리츠》
작가: Georg Baselitz
전시 기간: 2026년 8월 13일~12월 27일
전시 장소: 세화미술관 제1·2·3전시실
주소: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68 흥국생명빌딩 2·3층
관람 시간: 화~일요일 11:00~19:00
입장 마감: 18:30
휴관일: 매주 월요일
문화가 있는 날: 11:00~20:00
전시 구성: 회화·조각·드로잉 46점
관람료: 일반 15,000원 / 중·고·대학(원)생 10,000원 / 만 65세 이상 7,500원
평일 화~금요일에는 오후 2시와 4시에 정규 도슨트 프로그램도 운영되며, 티켓 소지자는 현장에서 선착순 신청해 무료로 참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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