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크리스틴 선 《달 마음》,

 
김 크리스틴 선 《달 마음》, 소리 없는 세계에서 언어와 관계를 다시 보다

우리는 대부분 소리를 듣고 말하는 일을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소리를 듣지 않는 사람에게 언어와 소통은 어떤 모습일까요.

김 크리스틴 선(Christine Sun Kim)의 개인전 《달 마음(Moon Mind)》은 이런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2026년 8월 26일부터 10월 18일까지 현대화랑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작가의 국내 첫 갤러리 개인전으로, 수어와 문자, 악보와 인포그래픽을 활용해 언어가 전달되고 해석되는 방식을 시각적으로 풀어냅니다. 전시는 현대화랑에서 개최됩니다.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

김 크리스틴 선의 작업을 이해하는 핵심은 소리를 시각적인 언어로 바꾼다는 데 있습니다.

그는 청각 중심의 사회에서 소리가 어떤 권력과 규칙을 만들어내는지 오랫동안 탐구해왔습니다. 누군가는 말하고, 누군가는 듣고, 누군가는 그 대화에서 자연스럽게 제외될 수도 있습니다.

작가는 이런 구조를 미국수어(ASL), 손의 움직임, 선과 문자, 기호로 옮깁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보면 악보처럼 보이는 선이 등장하기도 하고, 수어의 움직임을 연상시키는 화살표나 손짓이 화면 전체를 가로지르기도 합니다.


미국수어는 하나의 완전한 언어다

김 크리스틴 선의 작업에서 수어는 단순히 음성 언어를 대신하는 도구가 아닙니다.

수어는 손의 형태와 위치, 움직임뿐 아니라 표정과 몸의 방향까지 함께 사용하는 독립적인 언어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공간과 제도는 여전히 음성 언어를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작가는 바로 이 차이를 예술로 드러냅니다. 작품을 보고 있으면 ‘누가 정상적인 소통의 기준을 정하는가’라는 질문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달 마음》이라는 제목은 무엇을 의미할까

‘Moon Mind’, 우리말로 옮기면 ‘달 마음’이라는 제목부터 상당히 시적입니다.

달은 스스로 빛을 내기보다 다른 빛을 받아 우리에게 모습을 보여줍니다. 바라보는 위치와 시간에 따라 모양도 계속 달라집니다.

언어 역시 비슷합니다. 하나의 말도 누가 사용하고 어떤 관계에서 전달되는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집니다.

이런 점에서 《달 마음》은 고정된 의미보다 관계 속에서 변화하는 언어와 감각을 떠올리게 합니다.


선과 화살표가 만들어내는 긴장감

김 크리스틴 선의 작품에는 굵은 선과 화살표, 문자와 기호가 자주 등장합니다.

처음 보면 굉장히 단순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따라가 보면 선의 방향과 간격, 굵기가 서로 다른 속도와 감정을 만들어냅니다.

저도 김 크리스틴 선의 작업을 볼 때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그림을 ‘읽어야 할지’ 아니면 ‘보아야 할지’ 애매해지는 순간입니다.

그림처럼 보이는 문장이 있고, 문자처럼 읽히는 형태가 있기 때문입니다.


소리는 누구에게나 같은 것일까

우리는 ‘조용하다’, ‘시끄럽다’라는 말을 매우 쉽게 사용합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청각을 기준으로 한 표현입니다.

김 크리스틴 선은 바로 이런 언어의 기준을 의심합니다. 소리는 단지 귀로 듣는 물리적 현상만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와 연결돼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리고, 다른 사람의 언어는 주변으로 밀려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평소 대화할 때 상대가 어떤 방식으로 듣고 이해하는지 생각해본 적이 있으신가요? 이번 전시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던 소통의 방식을 조금 낯설게 바라보게 만듭니다.


농인이라는 정체성에서 출발하지만 거기에 머물지 않는다

김 크리스틴 선은 농인으로서 자신의 경험을 작업의 중요한 출발점으로 삼습니다.

하지만 작품의 의미를 장애 경험에만 한정해서 보면 놓치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가 이야기하는 핵심에는 소통과 권력, 접근성, 언어의 구조와 사회적 관계가 함께 놓여 있습니다.

누가 말할 기회를 얻는지, 어떤 언어가 기준이 되는지, 서로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하나의 공간을 공유할 수 있는지를 질문합니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장애와 비장애를 넘어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와 사회 구조 전체로 확장됩니다.


악보는 소리가 아니라 그림이 된다

김 크리스틴 선은 음악의 악보 체계도 자주 활용합니다.

원래 악보는 소리를 기록하는 기호입니다. 하지만 작가에게 악보는 반드시 실제 소리를 재생하기 위한 도구일 필요가 없습니다.

음높이와 리듬을 표시하는 기호를 이미지와 언어로 바꾸면 새로운 의미가 생깁니다.

이 순간 음악을 듣지 않는 사람도 악보를 하나의 시각적인 구조로 경험하게 됩니다.

소리가 이미지로 바뀌고, 언어가 그림이 되는 경계가 자연스럽게 무너집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와 함께 보면 더 흥미로운 이유

2026년에는 김 크리스틴 선의 작품을 서울에서 연이어 만날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는 《완고한 바위, 무모한 싸움들》이 7월 31일부터 11월 29일까지 열리고 있으며, 현대화랑에서는 《달 마음》이 8월 26일부터 10월 18일까지 이어집니다.

한쪽에서는 대형 설치와 공간 경험을, 다른 한쪽에서는 작가의 언어와 드로잉 세계를 좀 더 집중해서 바라볼 수 있습니다.

두 전시를 함께 본다면 김 크리스틴 선이 소리와 언어를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시각화해왔는지 더욱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듣지 못함’이 아니라 다른 방식의 감각

김 크리스틴 선의 작업이 중요한 이유는 농인의 경험을 ‘부족함’의 관점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너무 익숙하게 사용해온 음성 언어 중심의 세계를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도록 만듭니다.

《달 마음》은 소리를 보여주는 전시이면서, 우리가 서로를 이해한다고 믿는 방식 자체를 다시 질문하는 전시입니다.

그림을 읽고, 문자를 보고, 몸의 움직임을 상상하다 보면 어느 순간 ‘소통한다는 것은 정확히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남습니다.

그 질문을 안고 전시장을 나오는 것. 아마 《달 마음》을 가장 흥미롭게 감상하는 방법일 것입니다.


김 크리스틴 선 《달 마음》 전시 정보

전시명: 《달 마음(Moon Mind)》
작가: 김 크리스틴 선 Christine Sun Kim
전시 기간: 2026년 8월 26일~10월 18일
전시 장소: 현대화랑 Hyundai Hwarang
주소: 서울 종로구 삼청로 8
주요 분야: 드로잉, 텍스트, 수어, 인포그래픽, 사운드·시각언어 기반 작업
주요 키워드: 미국수어(ASL), 소리, 언어, 접근성, 관계, 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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