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순옥 《예술은 이미 당신의 마음속에 있다》, 삶과 예술 사이를 걷다
우순옥 《예술은 이미 당신의 마음속에 있다》, 삶과 예술 사이를 걷다
빈 방과 낡은 의자, 천천히 녹스는 철판,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연기. 우순옥의 작품에서는 미술을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재료보다 우리가 일상에서 무심코 지나쳤던 사물들이 자주 등장한다.
성곡미술관에서 열리는 **《우순옥_ 예술은 이미 당신의 마음속에 있다》**는 2023년 세상을 떠난 우순옥(1958~2023)의 예술 세계를 총체적으로 살펴보는 첫 회고전이다. 1981년 초기 작업부터 작고 직전까지 회화와 드로잉, 설치, 영상 등을 통해 40여 년에 걸친 작업의 흐름을 되짚는다.
기억과 시간, 존재를 바라본 작가
우순옥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회화를 공부한 뒤 독일 뒤셀도르프 쿤스트아카데미에서 귄터 우커에게 수학했다. 귀국 후에는 1995년부터 2022년까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후학을 가르치면서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그가 평생 탐구한 것은 눈앞에 보이는 형태보다 기억과 시간, 공간 그리고 인간의 존재에 가까웠다.
작품도 한 가지 재료에 머물지 않았다. 종이와 캔버스뿐 아니라 빛과 연기, 녹슨 철판, 식물과 옷, 오래된 가구, 영상과 소리까지 작업 안으로 들어왔다.
《방》, 나 자신으로 돌아가는 공간
우순옥의 작업에서 ‘방’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방》은 천장에서 바닥까지 내려오는 열두 장의 검은 면천 사이를 관람객이 직접 걸어 다니도록 만든 설치 작품이다. 검은 천은 공간을 나누고 시선을 차단하지만 동시에 관람객이 새로운 길을 찾아 움직이도록 만든다.
저도 이런 설치 작품을 볼 때는 작품을 밖에서 바라보는 것보다 그 안을 직접 걷는 순간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한두 걸음만 옮겨도 시야가 달라지고 공간의 감각까지 바뀌기 때문이다.
우순옥에게 방은 세상과 단절된 장소라기보다 자신에게 다시 돌아갈 수 있는 내면의 공간에 가까웠다.
사라지는 연기도 하나의 드로잉이 된다
2000년 제작된 **《연기드로잉》**에서는 뜨거운 금속판 위로 물방울이 떨어진다.
물은 금속 표면에 흔적을 남기고 곧 수증기로 변한다. 빛을 받은 연기는 잠시 형태를 드러내지만 다시 공기 속으로 사라진다.
여기서 작품은 고정된 결과물이 아니다.
생겨나고 변화하고 사라지는 과정 전체가 작품이 된다. 눈앞에 오래 남아 있는 것뿐 아니라 사라지는 것 역시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따뜻한 벽》, 작품을 몸으로 느끼다
우순옥의 작품은 눈으로만 감상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따뜻한 벽》에는 내부 발열 장치가 설치돼 있어 관람객이 벽에 몸이나 손을 가까이하면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다. 둥글게 부풀어 오른 벽은 어머니의 품이나 몸을 떠올리게 하며 생명과 죽음, 접촉과 기억을 함께 환기한다.
차갑고 단단해야 할 벽에서 온기가 전해지는 순간, 우리가 가지고 있던 ‘벽’이라는 사물의 의미도 달라진다.
오래된 사물에는 기억이 남는다
《이동하는 빛》에서는 오랫동안 한 가족이 사용했던 샹들리에가 작품이 된다. 《아주 작은 집》에서는 거울과 비누, 장난감과 책 등 작가가 발견하거나 선물 받은 108개의 작은 사물이 등장한다.
우순옥은 이런 물건을 단순한 레디메이드로 취급하지 않았다.
사물에는 그것을 사용했던 사람의 시간과 기억이 축적되어 있다고 바라봤다. 그래서 오래된 물건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물건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삶 전체를 떠올리게 하는 존재가 될 수 있다.
여러분에게도 버리지는 못하지만 특별한 이유를 정확히 설명하기 어려운 물건이 하나쯤 있지 않은가.
《무위예찬》, 만들지 않고 기다리는 예술
후기 작업을 이해할 때 중요한 개념은 무위(無爲)다.
우순옥에게 무위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작가가 모든 것을 계획하고 통제하기보다 자연과 사물이 스스로 변화하도록 기다리는 태도에 가까웠다. 이러한 생각은 2016년 개인전 《무위예찬》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녹은 자연스럽게 번지고 식물은 성장하며 오래된 사물은 계속 시간의 흔적을 쌓는다.
작가는 그 변화를 억지로 완성하지 않고 바라본다. 예술가의 역할 역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에서 이미 존재하는 것을 발견하는 사람으로 바뀐다.
예술은 어디에 있는가
이번 전시 제목은 우순옥이 2011년 제작한 영상 작품 **《예술은 이미 당신의 마음속에 있다》**에서 가져왔다.
영상 속 작가는 자신의 작업실을 천천히 걸으며 작품과 식물, 사물을 바라보고 오래전 발견한 불교 시를 조용히 읊는다. 작품은 예술이 미술관이나 특별한 오브제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과 침묵, 일상의 경험 안에서 계속 만들어질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이 전시를 보고 나면 ‘이것이 예술인가’를 묻기보다 다른 질문이 남는다.
나는 일상의 무엇을 예술처럼 바라보고 있는가.
빠른 이미지와 정보에 익숙한 시대에 잠시 속도를 늦추고 공간과 사물, 자신의 기억을 돌아보고 싶다면 오래 머물러볼 만한 전시다.
《우순옥_ 예술은 이미 당신의 마음속에 있다》 전시 정보
전시명: 우순옥_ 예술은 이미 당신의 마음속에 있다
영문명: Art is already in your mind
작가: 우순옥(U Sunok, 1958~2023)
전시 기간: 2026년 8월 12일~10월 3일
관람 시간: 10:00~18:00
휴관일: 매주 월요일
전시 장소: 성곡미술관 전관
주소: 서울 종로구 경희궁길 42
관람료: 성인 7,000원 / 중·고등학생 및 65세 이상·장애인 등 5,000원 / 초등학생 이하 무료
주최·주관: 성곡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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