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연》 구본창×연진영, 사라지는 것들 속에서 존재의 본질을 묻다

 

《본연》 구본창×연진영, 사라지는 것들 속에서 존재의 본질을 묻다

오래된 백자의 표면과 한때 누군가의 몸을 감싸던 패딩, 자동차의 안전을 위해 만들어진 에어백. 전혀 다른 사물처럼 보이지만 두 대상에는 공통점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기능과 형태는 달라져도 그 안에 흔적이 남는다는 것이다.

서울 PS CENTER에서 열리는 **《본연》**은 한국 현대사진을 대표하는 구본창과 산업·소비재를 조형 언어로 바꾸어온 연진영이 함께하는 2인전이다. 사진과 조각이라는 서로 다른 매체를 통해 사라지는 것과 남겨지는 것, 표면과 물성, 존재의 본질을 바라본다. 전시는 2026년 8월 28일부터 10월 2일까지 열린다.




‘본연’이라는 제목에 담긴 두 가지 의미

전시 제목부터 흥미롭다.

‘본연’은 구본창의 ‘본’과 연진영의 ‘연’을 나란히 연결한 이름인 동시에, 꾸밈이나 변화 이전의 본래 모습이라는 의미를 품고 있다. 두 작가의 이름과 전시 주제가 하나의 단어 안에서 만나는 셈이다.

하지만 이번 전시가 찾으려는 ‘본래의 모습’은 단순히 과거로 돌아가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끊임없이 변하고 낡고 사라지는 표면을 관찰하면서 그 뒤에 무엇이 남는지 질문한다.


구본창, 사물에 축적된 시간을 사진으로 바라보다

구본창의 사진에서는 대상보다 그 대상이 지나온 시간이 먼저 느껴질 때가 있다.

1953년 서울에서 태어난 구본창은 독일 함부르크에서 사진디자인을 공부하고 1985년 귀국한 뒤 한국 현대사진의 흐름을 확장해온 작가다. 《백자》, 《탈》, 《숨》, 《Vessel》 등 다양한 연작을 통해 사물의 형태보다 그 표면에 남겨진 시간과 기억을 섬세하게 포착해왔다.

특히 그의 백자 사진을 보면 화려한 장식보다 균열과 얼룩, 미세하게 다른 색과 형태가 눈에 들어온다. 완벽하게 새것인 상태보다 오랜 시간을 견딘 흔적이 오히려 사물의 존재를 더 강하게 보여준다.

저도 구본창의 사진을 볼 때는 무엇을 찍었는지 확인한 뒤 곧바로 표면을 오래 바라보게 된다. 처음에는 단순했던 사물이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의 풍경처럼 느껴지는 점이 인상적이다.


연진영, 버려질 재료에 새로운 생명을 주다

연진영은 구본창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물에 접근한다.

1993년생인 그는 패딩, 자동차 에어백, 덕트, 키링 등 산업재료와 소비재를 해체하고 재조합해 조각과 설치 작품으로 변환한다. 원래 사람의 몸을 보호하거나 특정한 기능을 위해 생산됐던 사물이 작가의 손을 거치면서 전혀 다른 존재가 된다.

중요한 것은 재료가 자신의 과거를 완전히 잃지 않는다는 점이다. 주름이나 봉제선, 사용 흔적과 산업적인 질감이 그대로 남는다.

그래서 연진영의 작업에서는 ‘새로운 조각’과 ‘과거의 사물’이 동시에 보인다. 기능은 사라졌지만 그 기능을 가졌던 시간은 표면에 남아 있는 것이다.


사진과 조각이 만나는 지점은 ‘표면’

구본창은 카메라로 사물의 표면을 바라보고, 연진영은 직접 사물을 해체하고 새로운 표면을 만든다.

작업 방식은 정반대처럼 보인다. 한쪽은 조용히 관찰하고 다른 한쪽은 적극적으로 변형한다.

그럼에도 두 작가가 만나는 지점이 있다. 바로 시간이 물질에 남긴 흔적이다.

구본창의 사진에서는 오래된 사물이 품고 있는 시간이 드러나고, 연진영의 조각에서는 현대 소비사회에서 빠르게 생산되고 폐기되는 물질의 시간이 모습을 드러낸다.

관람할 때 두 작가의 작품을 별도로 보기보다 서로 마주 보며 비교해보면 전시가 훨씬 흥미롭게 읽힌다.


사라지는 것들에서 발견하는 새로운 배니타스

이번 전시를 이해할 때 주목할 개념 중 하나가 배니타스(Vanitas)다.

서양미술에서 배니타스는 삶과 부, 아름다움이 결국 사라진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정물화 전통을 말한다. 해골이나 꺼져가는 촛불, 시든 꽃 등이 대표적인 상징이었다.

《본연》에서는 이러한 죽음과 소멸의 감각이 동시대의 방식으로 다시 나타난다. 오래된 사물과 끊임없이 소비되는 산업재료를 통해 우리가 사용하는 것 역시 결국 변화하고 사라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전시 역시 두 작가의 대화를 통해 새로운 배니타스의 가능성을 제안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소멸이 끝으로만 표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낡은 사물은 사진 속에서 새로운 존재감을 얻고, 버려질 산업재료는 조각으로 다시 태어난다.

사라짐과 생성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는 사물의 무엇을 기억할까

요즘 우리가 사용하는 물건은 대부분 빠르게 만들어지고 빠르게 교체된다.

옷과 가방, 가구와 전자제품까지 조금만 낡으면 새로운 것으로 바꾸는 일이 자연스럽다. 그래서 어떤 물건이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시간과 기억을 바라볼 기회도 줄어들고 있다.

여러분에게도 오래 사용해 기능은 거의 사라졌지만 쉽게 버리지 못하는 물건이 있는가.

《본연》은 바로 그런 질문을 떠올리게 한다. 사물의 가치는 새로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나온 시간과 사람의 흔적에서도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세대가 만들어낸 조용한 대화

구본창과 연진영은 세대도 다르고 매체도 다르다.

사진과 조각, 오래된 사물과 현대 산업재료라는 차이도 분명하다. 하지만 두 사람의 작품을 함께 놓으면 ‘무엇이 남는가’라는 하나의 질문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래서 《본연》은 두 작가의 작품을 단순히 나란히 보여주는 전시라기보다 사물과 시간, 소멸과 생성에 관한 대화에 가깝다.

화려한 이미지보다 물질의 표면과 그 안에 남겨진 시간을 천천히 바라보고 싶다면 충분히 관심을 가져볼 만한 전시다.


《본연》 구본창×연진영 전시 정보

전시명: ⟪본연⟫|구본창×연진영
참여 작가: 구본창, 연진영
전시 기간: 2026년 8월 28일~10월 2일
관람 시간: 11:00~18:00
휴관일: 일요일·월요일·추석 당일
전시 장소: PS CENTER
주소: 서울 중구 창경궁로5다길 18, 3층
관람료: 무료
오프닝 리셉션: 2026년 8월 28일 오후 5시
주최·주관: CENTER Corp.
문의: 02-6956-3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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