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혜선 개인전 《월하연희》, 재즈와 회화가 깨우는 강원감영의 밤
장혜선 개인전 《월하연희》, 재즈와 회화가 깨우는 강원감영의 밤
낮 동안 사람들로 북적이던 오래된 공간에 밤이 찾아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사람들이 모두 돌아간 뒤 달빛이 내려앉고, 오래된 나무와 꽃, 작은 동물들이 하나둘 깨어난다면 그 공간은 낮과는 전혀 다른 세계가 될지도 모른다. 원주 갤러리 원에서 열리는 장혜선 개인전 《월하연희》는 바로 이런 상상에서 출발한 전시다.
2026년 8월 7일부터 10일까지 열리는 이번 개인전은 재즈의 자유로운 리듬과 회화의 색채를 결합해 강원감영의 밤을 새로운 시각으로 풀어낸다. 평면 작품 16점과 전통 목기인 함지박을 활용한 입체 작업 4점, 총 20점이 소개된다.
재즈에서 시작된 회화의 리듬
이번 전시의 출발점은 의외로 재즈다.
장혜선 작가는 재즈를 단순히 귀로 듣는 음악으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즉흥적으로 이어지는 선율과 예상하지 못한 리듬의 변화, 연주자들이 서로의 소리에 반응하며 만들어내는 자유로운 흐름을 시각적인 색과 선으로 옮기고자 했다.
음악을 들으며 느낀 감정은 화면 위에서 강렬하거나 부드러운 색채로 바뀌고, 붓의 움직임은 마치 즉흥연주처럼 일정한 규칙에서 벗어난다. 그림을 바라보면서 리듬을 상상하고, 색을 따라가며 음악을 떠올리는 경험이 이번 전시의 중요한 특징이다.
강원감영의 밤을 상상하다
재즈의 리듬을 담을 무대로 작가가 선택한 곳은 원주 강원감영이다.
낮의 감영은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역사 공간이지만, 깊은 밤에는 전혀 다른 시간이 시작될 것이라는 상상을 더했다. 달빛이 비추면 꽃이 다시 피어나고, 바람은 오랫동안 쌓여 있던 시간을 흔든다. 동물과 이름을 붙이기 어려운 상상의 존재들도 하나둘 등장한다.
《월하연희》는 실제 강원감영의 밤 풍경을 그대로 재현한 작품은 아니다. 역사적 공간을 출발점으로 현실과 환상을 겹쳐 만든 또 하나의 세계다.
저도 익숙한 장소를 밤에 다시 찾았을 때 전혀 다른 공간처럼 느껴졌던 경험이 있다. 낮에 보이지 않던 그림자와 소리가 선명해지면서 장소에 숨어 있던 이야기를 새롭게 상상하게 되는데, 이번 전시 역시 그런 감각을 회화로 확장한다.
달빛 아래 깨어나는 생명들의 축제
전시 제목의 ‘월하(月下)’는 달 아래를 뜻하고, ‘연희’는 여러 존재가 함께 어우러져 펼치는 놀이와 축제를 떠올리게 한다.
작품 속에서는 동물과 꽃, 달빛과 오래된 공간이 현실의 논리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관계를 맺는다. 인간이 중심이 되는 세계가 아니라 작은 생명과 상상의 존재가 동일한 무대 위에서 노래하고 움직이는 세계다.
강원감영이라는 역사적인 공간에 이러한 환상적 장면을 겹치면서 오래된 장소 역시 고정된 과거가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공간으로 바뀐다.
여러분은 사람이 모두 사라진 깊은 밤의 오래된 건물에서 어떤 존재가 움직이고 있을 것 같다고 상상하는가. 작품을 보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보는 것도 《월하연희》를 즐기는 방법이다.
평면에서 함지박까지 확장된 작품
이번 전시는 캔버스 회화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출품작 20점 가운데 4점은 전통 목기인 함지박을 활용한 입체 작업이다.
함지박은 음식을 담거나 곡식을 다룰 때 사용했던 생활도구로, 한국인의 일상과 오랜 시간을 품은 물건이다.
작가는 이러한 전통적인 물성을 현대적인 색과 이미지와 결합한다. 평면 작품에서 이어진 생명과 달빛, 환상의 이미지가 입체적인 표면으로 확장되면서 작품은 그림과 사물의 경계를 넘나든다.
전통 공간인 강원감영을 상상 속 무대로 삼고, 오래된 생활도구를 현대미술의 재료로 다시 사용한다는 점도 흥미롭게 연결된다.
그림과 음악이 하나의 무대에서 만나다
《월하연희》는 그림을 벽에 걸어놓고 감상하는 데서 끝나는 전시가 아니다.
작가는 음악 역시 자신의 또 다른 표현 언어라고 이야기한다. 오프닝 프로그램에서는 재즈 피아니스트와 함께 직접 노래하며 회화와 음악을 하나의 무대에서 연결한다.
음악은 순간이 지나면 사라지지만 그때 느낀 감정은 기억에 남는다. 그림은 화면에 머물지만 관람객이 바라보는 순간마다 다른 감정을 만들어낸다. 서로 다른 예술처럼 보이지만 결국 감정을 전달한다는 점에서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셈이다.
음악이 그림이 되고 그림이 다시 음악으로 이어지는 순간, 《월하연희》라는 상상의 축제도 비로소 완성된다.
달빛 아래 잠시 현실의 시간을 내려놓다
《월하연희》는 강원감영의 역사 자체를 설명하기보다 익숙한 장소를 상상으로 다시 바라보게 하는 전시다.
재즈의 즉흥적인 리듬, 화려한 색채, 달빛과 동물, 오래된 공간이 한데 섞이며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밤의 풍경을 만들어낸다. 작품의 의미를 정확하게 해석하려 애쓰기보다 화면의 색과 선을 음악처럼 따라가며 감상해보는 것이 잘 어울린다.
잠시 현실의 속도를 늦추고 달빛이 내려앉은 감영의 밤을 상상하고 싶다면, 원주에서 만나는 《월하연희》에 머물러볼 만하다.
장혜선 개인전 《월하연희》 전시 정보
전시명: 월하연희
작가: 장혜선
전시 기간: 2026년 8월 7일~8월 10일
관람 시간: 오전 11시~오후 8시
휴관일: 없음
관람료: 무료
전시 작품: 평면 16점, 입체 4점 등 총 20점
전시 장소: 원주 갤러리 원
주소: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능라동길 59, 4층 갤러리 원
문의: 033-745-99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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