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 무비: 1945년 이후 한·일 미술》, 80년 교류의 길을 따라가다
《로드 무비: 1945년 이후 한·일 미술》, 80년 교류의 길을 따라가다
한국과 일본의 현대미술은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수많은 예술가가 국경을 오가며 연결점을 만들어왔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열리는 **《로드 무비: 1945년 이후 한·일 미술》**은 광복과 일본의 패전이 있었던 1945년부터 오늘날까지 약 80년에 걸쳐 이어진 양국 미술의 교류를 살펴보는 전시다.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을 계기로 국립현대미술관과 일본 요코하마미술관이 공동 기획했으며, 40여 명의 작가가 참여해 약 200점을 선보인다.
왜 전시 제목이 ‘로드 무비’일까
로드 무비는 주인공이 길을 떠나 낯선 사람과 사건을 만나고, 그 과정에서 변화하는 이야기를 뜻한다.
이번 전시는 한일 미술의 관계 역시 하나의 직선적인 역사로 보지 않는다. 예술가들은 정치적 갈등과 냉전, 분단과 국교정상화 같은 거대한 역사 속에서도 개인적인 만남과 전시, 유학과 이동을 통해 서로에게 영향을 주었다.
때로는 관계가 끊어졌고 오해와 긴장도 생겼다. 그런 우회와 단절까지 포함해 두 나라 예술가가 만들어온 길을 ‘로드 무비’라는 개념으로 바라본다는 점이 흥미롭다.
1945년 이후, 국경을 건넌 예술가들
전시 초반에서는 해방 이후 한국과 일본 사이를 이동했던 작가들의 삶과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조양규와 곽인식이다. 조양규는 일본에서 활동하며 노동자와 도시의 현실을 회화에 담았고, 곽인식은 일본 현대미술계에서 오랫동안 활동하며 물성과 사물에 대한 독자적인 작업을 전개했다.
조양규의 1957년작 《밀폐된 창고》 같은 작품을 보고 있으면 미술의 교류가 단순히 양국의 전시장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개인의 삶과 이동 속에서 만들어졌다는 점을 실감하게 된다.
백남준과 일본 실험미술이 만난 시대
1960년대에 들어서면 양국의 실험적인 미술 활동이 더욱 활발해진다.
이번 전시에서는 일본의 전위예술 그룹 하이 레드 센터가 1964년 백남준을 촬영한 《인체전개도사진(백남준)》도 만날 수 있다. 한 장의 사진이지만 당시 동아시아 실험예술가들의 관계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기록이다.
저도 이런 자료를 볼 때는 유명한 작품 자체보다 작가들이 어디에서 만나고 누구와 교류했는지를 살펴보는 편이다. 작품 뒤에 숨어 있던 인간적인 네트워크가 보이기 시작하면 미술사의 흐름이 훨씬 생생하게 느껴진다.
이우환을 통해 연결된 한국과 일본의 미술
1970년대 한일 현대미술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이우환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일본으로 건너간 이우환은 일본의 ‘모노하’와 깊은 관계를 맺으며 동아시아 현대미술의 중요한 작가로 자리 잡았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선으로부터》를 비롯해 박서보, 서승원, 이강소, 다카마쓰 지로 등 양국 작가들의 작업을 함께 살펴볼 수 있다.
서로 다른 국가의 작품을 나란히 보면 비슷한 시대적 문제를 얼마나 다른 방식으로 풀어냈는지 비교하는 재미가 크다.
교류는 항상 평등하지 않았다
이번 전시가 흥미로운 이유는 한일 미술 교류를 아름다운 우정의 역사로만 설명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식민지 경험과 전쟁, 냉전과 분단이라는 역사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두 나라의 문화적 관계에는 늘 긴장과 비대칭이 존재했다.
1993년 나카무라 마사토의 《한국과 일본》, 곽덕준의 《10개의 계량기》와 같은 작품에서는 국가와 정체성, 사회적 관계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을 발견할 수 있다.
여러분이라면 한국과 일본의 미술을 ‘교류’라는 한 단어만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번 전시는 바로 그 단순한 정의를 계속 흔든다.
오늘의 작가들이 다시 바라보는 역사
전시의 시선은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
정연두의 《마술사와의 산책》, 다나카 고키의 《다치기 쉬운 역사들(로드 무비)》을 비롯해 이불, 남화연, 무라카미 다카시 등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까지 이어진다.
특히 다나카 고키의 작업 제목에 등장하는 ‘다치기 쉬운 역사’라는 표현은 이번 전시 전체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처럼 느껴진다. 역사는 하나의 이야기로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시대와 사람에 따라 계속 다시 해석되기 때문이다.
미술 작품으로 읽는 한일 관계의 80년
《로드 무비》는 단순히 한국 작가와 일본 작가의 작품을 한 공간에 모은 전시가 아니다.
1945년 이후 두 나라 사이에서 이동한 사람과 작품, 전시와 사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우리가 알고 있던 한일 현대미술사를 다시 연결한다. 공식적인 교류뿐 아니라 개인적인 만남과 연대, 단절과 갈등까지 함께 다룬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작품 한 점씩 보기보다 시대의 흐름을 따라 천천히 이동해보길 권한다. 전시장을 나설 무렵에는 한국과 일본 현대미술이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긴밀하게 이어져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로드 무비: 1945년 이후 한·일 미술》 전시 정보
전시명: 로드 무비: 1945년 이후 한·일 미술
전시 기간: 2026년 5월 14일~9월 27일
전시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1층 1·2전시실, 중앙홀 및 조각공원
참여 작가: 곽인식, 남화연, 다나카 고키, 나카무라 마사토, 무라카미 다카시, 박서보, 서승원, 이불, 이우환, 정연두, 조양규 등 40여 명
작품 수: 약 200점
관람료: 과천 전시관람권 3,000원
주최: 국립현대미술관, 요코하마미술관
#로드무비 #1945년이후한일미술 #국립현대미술관 #MMCA과천 #과천전시 #한일현대미술 #한국현대미술 #일본현대미술 #이우환 #백남준 #박서보 #이불 #무라카미다카시 #미술전시추천 #아트공간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