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종 개인전 《황혼 속 기어오는 자》
김선종 개인전 《황혼 속 기어오는 자》, 해양 폐기물이 미래의 생명체로 되살아나다
바닷가에 버려진 물건은 어디로 사라질까?
쓸모를 다한 플라스틱과 부표, 그물과 산업 잔해는 파도에 깎이고 햇빛에 바래며 오랜 시간을 떠돈다. 인간의 손을 떠난 폐기물은 자연 속에서 사라지는 대신, 본래의 용도를 알 수 없는 낯선 형태로 변해간다.
김선종 작가의 개인전 《황혼 속 기어오는 자 The Creeper in the Dusk》는 해양 폐기물과 오래된 사물을 새로운 생명체처럼 재구성하며 인간 이후의 세계를 상상하는 전시다.
전시는 2026년 8월 8일부터 8월 22일까지 수원 고색뉴지엄에서 열린다. 폐수처리장으로 사용되던 공간을 재생한 고색뉴지엄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물과 폐기물, 시간과 생명의 순환이라는 주제를 장소의 역사와 연결한다.
황혼 속에서 기어오는 존재는 무엇일까?
전시 제목의 ‘황혼’은 낮과 밤이 교차하는 시간이다.
빛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이지만 이미 어둠이 시작된 순간이며, 하나의 세계가 끝나고 다른 세계가 다가오는 경계이기도 하다.
김선종 작가가 말하는 황혼은 단순히 하루 중 특정한 시간에 머무르지 않는다. 인간 중심의 문명이 저물고, 우리가 버린 사물과 새로운 존재가 등장하는 전환의 시간으로 확장된다.
전시장에는 바닷가에서 수집한 물건과 산업 폐기물로 만들어진 낯선 형상들이 낮게 엎드리거나 수평으로 뻗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 모습은 깊은 바다에서 살아가는 생명체의 촉수나 척추, 해안으로 밀려온 정체불명의 생물, 먼 미래의 유기체를 떠올리게 한다.
이들은 갑자기 나타난 괴물이 아니다.
우리가 생산하고 사용한 뒤 버린 물건이 오랜 시간을 지나 다른 존재로 변화한 결과다. 따라서 황혼 속에서 기어오는 것은 인간과 무관한 외부의 위협이 아니라, 인간의 생활방식이 만들어낸 또 다른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해양 폐기물에 다시 시간을 부여하다
김선종 작가는 해변에서 발견한 폐기물과 버려진 사물을 작업의 재료로 사용한다.
대부분의 폐기물은 본래의 기능을 잃은 상태다. 어디에서 만들어졌고, 어떤 용도로 사용됐으며, 어떤 경로를 거쳐 바닷가에 도착했는지 알기 어렵다.
그러나 바닷물에 닳고 햇빛에 변색된 표면에는 오랜 이동의 흔적이 남아 있다.
작가는 이러한 물건을 깨끗한 새 제품처럼 복원하지 않는다. 긁히고 깎인 표면, 변형된 색과 형태를 그대로 살리면서 서로 다른 잔해를 묶고 연결한다.
그 과정에서 버려진 사물은 다시 시간을 얻는다.
과거에는 인간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제품이었지만, 작품 안에서는 미래의 생명체나 주술적인 물체처럼 새로운 역할을 갖게 된다.
폐기물을 재사용한다는 것은 단순히 자원을 절약한다는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사용이 끝난 사물에도 계속 시간이 흐르고 있으며, 인간의 시선에서 사라진 뒤에도 물질은 다른 방식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심해 생명체를 닮은 낯선 조각
김선종의 작품은 가로로 길게 이어지거나 바닥 가까이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
위로 솟아오르는 기념비적인 조각과 달리, 작품은 전시장 바닥을 따라 기어가거나 공간에 낮게 웅크린 모습으로 관람객에게 다가온다.
작품에 이어진 촉수와 척추 같은 구조, 매끄럽게 반사되는 표면과 희미한 움직임은 심해 생명체를 연상시킨다.
빛이 거의 닿지 않는 깊은 바다의 생물은 제한된 환경에 적응하며 독특한 감각기관과 형태를 갖는다. 김선종의 작품 역시 익숙한 동물의 모습과 닮았지만 정확히 어떤 생명체인지 특정하기 어렵다.
이러한 불분명함은 작품을 과거의 폐기물과 미래의 생명체 사이에 놓는다.
관람객은 작품을 보며 이것이 오래전에 버려진 사물인지, 아직 등장하지 않은 미래의 생명체인지 판단하기 어려워진다.
이때 과거와 미래는 분리되지 않는다. 인간이 남긴 폐기물이 먼 미래의 환경과 생명에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두 시간은 하나의 물질을 통해 연결된다.
‘초개체’로 바라보는 인간과 사물
이번 전시를 이해하는 중요한 개념 가운데 하나는 ‘초개체’다.
초개체는 하나의 독립된 개체보다 여러 존재가 연결돼 하나의 시스템처럼 작동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개미나 벌의 군집처럼 각각의 개체가 모여 더 큰 생명체처럼 움직이는 현상을 떠올릴 수 있다.
김선종의 작업에서 초개체는 생물 집단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사람이 만든 물건과 그것을 버리는 행위, 바다의 흐름과 기후 변화, 폐기물에 영향을 받는 생명체와 미래 세대까지 서로 연결된 하나의 연쇄로 바라본다.
우리가 버린 작은 플라스틱 하나도 생산과 소비, 이동과 폐기, 해양 생태계와 미세플라스틱 문제로 이어진다.
따라서 인간 역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개체가 아니다. 수많은 사물과 생명, 환경과 관계를 맺고 그 결과에 영향을 받는 초개체의 일부가 된다.
작품에 서로 다른 폐기물이 묶이고 엮이는 방식은 이러한 관계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각각의 사물은 원래 서로 관계가 없었지만, 바다와 작가의 손을 거치며 하나의 새로운 존재로 결합한다.
풀리고 묶이고 엮이는 시간
이번 전시의 서문 제목은 「남겨진/남은 시간: 풀(리)고 묶(이)고 엮(이)기」다.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폐기물은 분해되고, 다시 묶이고, 다른 사물과 엮인다. 물질의 결합 과정은 동시에 여러 시간의 결합이기도 하다.
한 물건에는 생산된 시간, 사용된 시간, 버려진 시간, 바다를 떠돈 시간과 작품으로 다시 만들어진 시간이 중첩돼 있다.
전시장에 놓인 작품은 완성된 하나의 순간만을 보여주지 않는다.
오래된 과거가 남아 있으면서도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모습을 함께 품는다.
콘노 유키는 전시 서문에서 김선종의 작품에 사물뿐 아니라 여러 시간이 엮여 있다고 설명한다. 인간이 남긴 잔여물은 과거의 흔적이지만, 그것이 분해되고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시간은 현재와 미래에도 계속된다.
우리는 폐기물이 수백 년 후까지 남는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하지만 너무 긴 시간은 오히려 현실감 없이 느껴질 수 있다.
김선종의 작품은 반사되는 표면과 낯선 촉감, 미세한 움직임을 통해 추상적인 미래의 시간을 눈앞의 감각으로 바꾼다.
폐수처리장에서 열린다는 의미
전시가 열리는 고색뉴지엄은 과거 폐수처리장으로 사용됐던 공간이다.
물이 들어오고 정화돼 다시 나가던 산업시설은 현재 문화예술 공간으로 바뀌었다.
한때 물과 오염물질을 처리하던 장소에서 해양 폐기물과 물질의 순환을 다루는 전시가 열린다는 점은 이번 전시의 의미를 더욱 확장한다.
전시장 벽과 바닥에는 기존 산업시설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러한 공간에 놓인 김선종의 작품은 일반적인 화이트큐브 갤러리에 설치됐을 때와 다른 분위기를 만든다.
낡은 구조물과 어두운 지하 공간, 오래된 산업의 흔적은 작품 속 폐기물이 실제 환경에서 이동해온 과정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관람객은 완전히 새롭게 정리된 전시장보다 시간의 흔적이 남아 있는 장소에서 작품을 만나게 된다.
공간과 작품 모두 이전의 기능을 잃었지만, 새로운 용도와 의미를 얻었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폐수처리장이 미술관으로 바뀌고, 폐기물이 작품으로 변하는 과정은 버려진 것이 반드시 소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인류 이후의 세계는 먼 미래일까?
인류 이후의 세계는 과학소설이나 영화에서 자주 등장한다.
인간이 사라진 도시, 폐허가 된 산업시설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새로운 생명체의 모습은 먼 미래의 상상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김선종의 전시는 인류 이후의 세계가 이미 가까운 곳에서 시작되고 있다고 말한다.
바다에 쌓이는 폐기물과 변화하는 기후, 인간이 만든 물질에 적응하는 생명체의 모습은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은 현재의 사건이다.
작품 속 존재는 종말 이후 갑자기 등장한 생명체가 아니라 지금의 환경 속에서 이미 만들어지고 있는 징조에 가깝다.
따라서 전시는 극적인 재난의 장면을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작은 움직임과 느린 변화, 물질 표면에 남은 흔적을 통해 위기가 이미 우리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을 전달한다.
미래의 문제를 수백 년 뒤의 이야기로 미루기보다 현재의 생활방식과 연결해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디스토피아를 넘어선 새로운 상상
폐기물과 인류 이후의 세계를 다루는 전시는 쉽게 어둡고 비관적인 결론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황혼 속 기어오는 자》는 미래를 완전히 파괴된 디스토피아로만 그리지 않는다.
쓸모를 잃은 물건은 작가의 손을 거쳐 새로운 형상으로 변한다. 완벽하게 복원된 상품이 아니라 동물적이고 주술적인 존재로 다시 태어난다.
이러한 변화는 폐기물이 사라진다는 낙관적인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 남긴 물질은 형태를 바꾸면서 계속 존재하고, 다른 생명과 환경에 새로운 관계를 만든다는 점을 보여준다.
작품은 인간이 사라진 뒤에도 세계가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상상을 가능하게 한다.
그 세계는 인간에게 익숙하거나 편리한 모습은 아닐 수 있지만, 물질과 생명이 새로운 방식으로 얽히며 계속 움직이는 장소다.
황혼 이후에는 어둠이 오지만, 어둠 역시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빈 공간은 아니다.
작가는 황혼이라는 경계의 시간을 통해 끝과 시작이 동시에 존재하는 미래를 보여준다.
전시를 깊이 감상하는 5가지 방법
첫 번째는 작품의 원래 재료를 상상해보는 것이다.
현재의 형상만 보는 것이 아니라 어떤 물건이 바다에서 발견됐고, 어떤 방식으로 변형됐는지 생각해보면 작품 안에 축적된 시간을 발견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작품을 위에서만 내려다보지 않는 것이다.
가능하다면 작품과 비슷한 높이에서 바라보며 촉수와 척추처럼 이어지는 구조를 살펴보는 것이 좋다. 낮게 놓인 작품이 관람객에게 기어오는 듯한 감각을 더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세 번째는 작품 표면의 흔적을 관찰하는 것이다.
바닷물에 깎인 부분과 인공적으로 가공된 부분, 매끄러운 표면과 거친 표면을 비교하면 자연과 인간의 시간이 어떻게 겹치는지 볼 수 있다.
네 번째는 고색뉴지엄의 공간과 작품을 함께 보는 것이다.
과거 폐수처리장이었던 장소의 구조와 작품 속 해양 폐기물이 어떤 관계를 만드는지 살펴보면 전시의 장소성이 더욱 선명해진다.
다섯 번째는 작품이 과거의 유물인지 미래의 생명체인지 스스로 질문해보는 것이다.
하나의 답을 정하기보다 두 시간이 동시에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전시가 말하는 ‘남겨진 시간’과 ‘남은 시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수원 고색뉴지엄에서 만나는 가까운 미래
김선종 개인전 《황혼 속 기어오는 자》는 해양 폐기물을 재활용한 조각 전시이면서, 인간과 사물, 생태계와 미래의 관계를 탐색하는 전시다.
작가는 버려진 물건을 단순히 아름다운 작품으로 바꾸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인간이 남긴 물질이 얼마나 오랫동안 존재하는지, 그 물질이 다른 생명과 어떤 관계를 만드는지, 우리가 상상하는 인류 이후의 세계가 정말 먼 미래인지 질문한다.
전시장에 기어오는 낯선 존재들은 외부에서 침입한 괴물이 아니다.
우리의 소비와 폐기, 산업과 환경이 오랜 시간 엮여 만들어낸 또 다른 모습이다.
황혼은 아직 완전한 어둠이 아니다. 사라지는 빛 속에서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존재와 관계를 발견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환경과 미래, 해양 폐기물과 현대조각에 관심이 있다면 수원 고색뉴지엄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를 천천히 살펴볼 만하다.
김선종 개인전 《황혼 속 기어오는 자》 전시 정보
전시명: 황혼 속 기어오는 자
영문명: The Creeper in the Dusk
작가: 김선종
전시 기간: 2026년 8월 8일~8월 22일
오프닝: 2026년 8월 8일 오후 4시
관람 시간: 오전 10시~오후 6시
입장 마감: 오후 5시 30분
휴관일: 매주 월요일
관람료: 무료
전시 장소: 고색뉴지엄 지하 1층 기획전시실
주소: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산업로 85
서문: 콘노 유키
주최·주관: 김선종
후원: 수원특례시, 수원문화재단
지원: 수원문화재단 2026 유망예술가 지원사업 선정
대중교통 이용 시 들바람공원 정류장에서 하차한 뒤 고색뉴지엄까지 도보 약 5분이 소요된다. 평일에는 전시장 앞 도로, 주말에는 고색뉴지엄 주차장을 이용할 수 있다. 전시 일정과 주차 안내는 운영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므로 방문 전 공식 안내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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