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나정 개인전 《사라지는 영원: 생성과 소멸 사이》

 

김나정 개인전 《사라지는 영원: 생성과 소멸 사이》, 섬유에 남겨진 시간과 기억

우리가 오래 바라본 장면은 시간이 지나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일까?

눈앞의 형상은 흐려져도 당시의 분위기와 감정, 빛의 온도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분명 존재했지만 손으로 붙잡을 수 없는 흔적들은 과거와 현재를 조용히 연결한다.

서울 종로구 부암동 하랑갤러리에서 열리는 김나정 개인전 《사라지는 영원: 생성과 소멸 사이》는 이처럼 생성되고 변화하며 사라지는 시간의 감각을 탐색하는 전시다.

김나정 작가는 투명한 오간자와 바느질, 드로잉, 혼합재료를 겹쳐 하나의 고정된 이미지가 아닌 계속해서 달라지는 풍경을 만들어낸다. 이번 전시는 2026년 7월 15일부터 7월 26일까지 진행된다.



사라지는 것과 영원한 것은 반대일까?

전시 제목인 《사라지는 영원》에는 서로 대립하는 듯한 두 개념이 함께 놓여 있다.

우리는 영원한 것을 변하지 않고 계속 유지되는 상태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소멸은 존재하던 것이 사라지는 현상을 의미한다.

그러나 자연과 인간의 삶을 살펴보면 영원히 같은 모습으로 머무는 것은 거의 없다. 꽃은 피고 시들며, 계절은 반복되지만 매번 다른 모습으로 돌아온다. 기억 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흐려지고 변형되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이번 전시에서 영원은 고정된 상태가 아니다. 생성과 변화, 소멸이 반복되는 과정 자체에 가깝다.

김나정 작가는 선명한 형상을 완성해 보여주기보다 흐릿한 흔적과 겹쳐진 표면을 통해, 사라지는 순간 속에서도 계속 남아 있는 감각을 표현한다.

오간자에 겹쳐진 시간의 층

김나정 작가의 작품에서 중요한 재료는 오간자다.

오간자는 얇고 투명한 섬유로, 빛과 보는 위치에 따라 색과 깊이가 달라진다. 한 장만 놓았을 때는 가볍고 희미하지만 여러 겹이 중첩되면 새로운 색과 공간이 만들어진다.

작가는 오간자 위에 선을 그리고 바느질하며 이미지를 겹친다. 각각의 선과 흔적은 서로를 완전히 가리지 않고 투명하게 스며든다.

가까이에서 작품을 바라보면 바늘이 지나간 자리와 섬세한 손의 움직임, 실의 질감이 드러난다. 한 걸음 떨어져 보면 각각 분리돼 있던 선과 이미지가 하나의 풍경처럼 연결된다.

이러한 표현 방식은 현재의 기억 위에 과거의 기억이 겹치고, 다시 새로운 감정이 더해지는 인간의 경험과 닮아 있다.

김나정 작가에게 섬유는 단순한 표현 재료가 아니라 시간과 감각이 머무는 공간이다. 투명한 표면은 하나의 명확한 해석보다 관람자의 시선에 따라 달라지는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둔다.

꽃의 형상으로 바라보는 생성과 소멸

이번 전시에서는 꽃을 연상시키는 형상도 중요한 조형 요소로 등장한다.

꽃은 피어나는 순간과 시드는 순간을 동시에 품고 있다. 생명의 아름다움을 상징하지만, 가장 화려한 순간부터 이미 소멸을 향해 변화하기 시작한다.

김나정 작가의 작품 속 꽃은 식물도감처럼 사실적으로 묘사된 대상이 아니다. 여러 겹의 섬유와 흔들리는 선, 희미한 이미지로 표현되며 나타났다 사라지는 기억처럼 보인다.

꽃의 형상은 반복해서 돌아오지만 매번 같은 모습으로 머물지 않는다. 같은 자리를 지나가는 선도 조금씩 흔들리고 어긋난다. 이러한 반복과 차이는 시간의 순환과 변화를 보여준다.

대표 작품인 「Oval Bloom」은 오간자와 손바느질, 혼합재료를 활용한 작품이다. 꽃이 피어나는 장면을 떠올리게 하지만, 형상이 완전히 닫히거나 고정되지 않아 생성 중인 모습과 사라지는 흔적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바느질은 시간을 기록하는 행위

바느질은 천과 천을 연결하는 실용적인 기술이지만 김나정의 작품에서는 시간을 기록하는 행위로 확장된다.

바늘이 섬유를 통과할 때마다 표면에는 작은 구멍과 실의 흔적이 남는다. 같은 동작을 반복하더라도 손의 움직임과 힘, 방향에 따라 선의 모습은 달라진다.

작가가 반복적으로 바늘을 움직이는 시간은 작품에 그대로 축적된다. 완성된 이미지만 보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 만들어진 과정과 작가의 신체적인 움직임까지 상상하게 한다.

이러한 느린 작업 방식은 이미지를 빠르게 보고 넘기는 오늘날의 시각문화와 대비된다.

관람객은 작품 앞에서 천천히 시선을 움직이며 겹쳐진 선과 표면을 따라가게 된다. 바로 보이지 않던 작은 흔적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발견된다.

하나로 고정되지 않는 풍경

김나정의 작품은 정면에서 한 번 바라보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오간자의 투명성과 중첩된 구조 때문에 빛의 방향과 관람자의 위치에 따라 이미지가 달라진다. 가까이 다가갈 때와 멀리 떨어져 볼 때도 전혀 다른 장면이 나타날 수 있다.

이는 작가가 하나의 완결된 이미지나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작품 속 희미한 흔적을 보고 누군가는 꽃과 숲을 떠올릴 수 있고, 다른 누군가는 오래된 기억이나 사라진 사람을 떠올릴 수 있다.

관람자는 작품을 수동적으로 바라보는 데 머물지 않고 자신의 기억과 경험을 화면에 투영하며 새로운 이미지를 완성하게 된다.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존재와 부재, 과거와 현재의 경계가 관람자의 시선 속에서 계속 바뀌는 것이다.

직선이 아닌 순환으로 흐르는 시간

일반적으로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를 지나 미래로 흐르는 직선적인 구조로 이해된다.

그러나 자연의 시간은 순환한다. 계절이 반복되고 식물이 피고 지며, 소멸한 생명은 또 다른 생명의 재료가 된다.

김나정의 작품에서도 시간은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겹쳐진 섬유와 반복되는 꽃의 형상, 같은 위치를 지나면서도 조금씩 어긋나는 선들은 과거와 현재가 동시에 존재하는 듯한 감각을 만든다.

작품에서 소멸은 완전한 끝이 아니다. 사라진 형상은 흔적과 기억으로 남고, 그 흔적은 다시 새로운 이미지가 생성되는 출발점이 된다.

전시 제목의 ‘사라지는 영원’은 변화하지 않는 영원이 아니라, 끊임없이 생성되고 소멸하는 순환이 계속된다는 의미로 읽을 수 있다.

전시를 깊이 감상하는 4가지 방법

첫 번째는 작품을 가까이에서 살펴보는 것이다. 바느질의 방향과 실의 두께, 오간자의 미세한 질감에서 작가의 손과 작업 시간을 발견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작품에서 몇 걸음 떨어져 전체 이미지를 바라보는 것이다. 가까이에서 분리돼 보이던 선과 표면이 하나의 풍경으로 연결되는 과정을 경험할 수 있다.

세 번째는 이동하면서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다. 보는 위치와 빛에 따라 이미지가 어떻게 겹쳐지고 사라지는지 비교해보는 것이 좋다.

네 번째는 작품을 보며 떠오르는 개인적인 기억에 집중하는 것이다. 특정한 형태를 찾기보다 작품이 불러오는 감정과 장면을 따라가면 전시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다.

부암동 하랑갤러리에서 만나는 조용한 시간

《사라지는 영원: 생성과 소멸 사이》는 강한 색과 선명한 메시지를 앞세우는 전시가 아니다.

투명한 섬유와 섬세한 바느질, 희미하게 겹쳐진 이미지로 관람객이 천천히 머물 수 있는 시간을 만든다.

빠르게 지나가는 일상 속에서 우리는 사라진 것을 쉽게 잊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떤 기억은 형태를 잃은 뒤에도 감정과 감각으로 남아 현재의 삶에 영향을 준다.

김나정 작가의 작품은 사라짐이 완전한 부재가 아니며, 소멸한 것들이 새로운 형태와 기억으로 다시 생성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서울 부암동에서 차분하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를 찾고 있다면, 하랑갤러리에서 열리는 이번 개인전을 방문해볼 만하다.

《사라지는 영원: 생성과 소멸 사이》 전시 정보

전시명: 사라지는 영원: 생성과 소멸 사이

작가: 김나정

전시 기간: 2026년 7월 15일~7월 26일

관람 시간: 오전 11시~오후 5시

휴관일: 매주 월요일, 화요일

전시 장소: 하랑갤러리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자하문로38길 45, 1층

전시 분야: 섬유 설치, 드로잉, 혼합재료

전시 일정과 관람시간은 갤러리 운영 상황에 따라 변경될 수 있으므로 방문 전 공식 안내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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